<타짜> 이후 15년, 그동안 이 작품이 내게 미친 영향은.
최동훈 원래 그렇게 리얼리즘적이지 않은 감독인데 <타짜>는 내가 했던, 할 수 있었던 리얼리즘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음껏 놀아도 되겠다며 바로 유턴을 해서 <전우치>를 찍었다. 이후 홍콩에서 해외 배우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며 <도둑들>을 찍었고, 원래 <타짜> 이후에 찍으려고 했던 <암살>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도둑들> 다음에 도전했다. 15년 전에 <타짜>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 <타짜>를 만들었을 것이다.
조승우 원작 캐릭터를 전혀 다른 이미지의 배우가 연기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는데, 허영만 선생님의 만화를 봤던 팬들이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또 하나의 캐릭터로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나만의 성취감이 있었다. 앞으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이만큼 파급력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또 만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김혜수 어릴 때부터 늘 비슷한 캐릭터를 반복해서 연기하고 있었다. 굳이 김혜수가 아니어도 누구나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들어오는 작품 수는 많았지만 매력을 느끼거나 깊게 고민할 만한 작품이 많지 않았다. 이 말이 굉장히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항상 그 지점에서 배우로서 갈증이 있었다. <타짜>를 기점으로 내게 찾아오는 캐릭터들이 완전히 달라졌다. 배우로서 좀더 진지하게 의욕적으로 임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진 계기가 되었다.
유해진 <타짜>는 내게 굉장히 큰 디딤돌이었다. 냇가를 건너려고 하지만 너무 막막했을 때 크고 튼튼한 디딤돌이 되어줬다.
백윤식 커리어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해준 작품. <타짜>의 평경장을 연기하면서 배우 인생이 또다시 세워지고 구축됐다.
김윤석 <타짜> 이전에는 주로 고뇌하는 지식인을 연기했었다. 아귀로 알려지고 난 후에는 악역을 맡아달라는 의뢰가 쏟아졌다. <타짜>는 여러모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제외하고) <타짜>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꼽는다면.
최동훈 감독이 이런 생각을 하면 영화를 망치는데. (웃음) 그런데 실제로 영화의 분위기를 만든 건 평경장이다. 한때 고수였지만 쓸쓸히 사라져간 인물의 비극. 평경장 캐릭터가 없으면 다른 강렬한 캐릭터가 있어도 이전투구처럼 보일 텐데 그가 있음으로 해서 낭만적인 서사가 생겼다.
조승우 아우,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평경장이나 정 마담, 짝귀, 아귀, 고광렬 중 누구 하나를 꼽는 건 의미 없을 거 같고…. <신라의 달밤>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조상건 선배님이 연기한 너구리를 꼽고 싶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다.
김혜수 김상호 배우가 연기한 박무석.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처음 볼 때부터 박무석이 그렇게 좋았다. ‘폭력은 박력이다’라는 자막이 뜨면서 박무석이 곽철용(김응수)에게 끌려와 <불나비>를 부르는 장면에서 표정을 찌그러트리는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들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캐릭터에게 눈길을 줄 수 있었다.
유해진 <타짜>에는 좋은 캐릭터가 정말 많다. 그래도 한명을 꼽는다면 역시 윤석 형이 연기한 아귀가 아닐까.
백윤식 그래도 평경장이다. 아무래도 다른 캐릭터를 얘기하기는 좀…. 물론 다들 잘하는 연기자들이고 좋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놓고 보면 평경장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김윤석 숨은 보석 같은 캐릭터가 많은 영화다. 나는 너구리를 꼽겠다. 극중 너구리는 궂은일을 하는 해결사 역할이다. (성대모사를 하며) 그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묵직하고 편안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타짜>의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동훈 그때 그 배우들을 만나서 굉장히 좋았다. 나이 든 감독이 젊은 배우를 만나서 느낄 수도 있고 젊은 감독이 나이 든 배우를 만나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만, <타짜>는 그때 그 자리에서 만났어야 한다. 그때 만나서 너무 고맙습니다!
조승우 어, 말하고 싶었던 건 감독님한테 다 말했는데. 현장에서 감독님과 빨리빨리 친해져서 모든 말을 다 하는 성격이라 못했던 말은 없다. 그냥 영화를 자주 찍어주셨으면 좋겠다. 아마 감독님도 내게 똑같은 말을 하겠지만. (웃음) 관객으로서 감독님 영화를 계속 보고 싶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영화를 찍어주셨으면 좋겠다.
김혜수 오랫동안 연기했지만 배우로서 내 정체성을 고민하며 오래 방황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타짜>를 통해 내가 영화를 제대로 만나고 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감독님에게 정말 많이 고맙다. 예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도 못했고,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유해진 대사를 빨리 하라고 그렇게 다그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그러시나? 그러시는 거 같은데. (웃음) 사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그렇게 대화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빨리 하라고 주문하시는 건 알고 있지만 대사가 많을 때는 너무 힘들다.
백윤식 최동훈 감독과 일할 때는 언제나 즐겁다. 이제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드는 훌륭한 감독이 됐는데 앞으로는 글로벌하게 국제 무대에 진출할 단계가 되지 않았나 싶네. 그런 바람이 있다.
김윤석 아직도 그 체력이 남아 있을까? 남아 있으면 좋을 텐데. (웃음) <타짜>는 비록 원작이 있긴 했지만 상당한 각색이 들어간 작품이다. 데뷔작부터 최근 <외계인>까지 모두 최동훈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다. 그런 감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가 건강을 유지해서 오래 영화를 찍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