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더 찍으라면 더 찍을 수 있겠다 싶었다"
2021-12-01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타짜> 최동훈 감독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감독 최동훈의 역사는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최동훈 감독의 영화적 에너지가 거침없이 폭발한 첫 작품은 <타짜>이지 않을까. 영화를 만드는 게 고된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품이 <타짜>라는 최동훈 감독은 기분 좋은 추억으로 가득한 과거의 사진첩을 들추듯 두눈을 반짝이며 <타짜>에 관한 기억들을 소환했다. <암살> 이후 4년간 신작 <외계인>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최동훈 감독을 <타짜> 재개봉을 앞두고 만났다.

<타짜>가 15년 만에 재개봉한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 외 새로 편집을 하기도 했나.

그렇진 않다. 201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김혜수 배우 특별전을 했을 때 혜수씨랑 가서 영화를 봤는데 필름을 그대로 스캔해서 튼 거라 화질 상태가 좋지 않더라. 이걸 오래 남기려면 빨리 리마스터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개봉 15주년 때 리마스터링해서 재개봉하면 좋겠다고 이야기가 진행됐다. <타짜>는 (2006년) 8월에 촬영을 끝내고 9월 말 추석 시즌에 개봉했다. 한달 반 만에 후반작업을 끝내야 했다. 편집은 2주 했다. 그때는 30대 중반이어서 하루에 2시간씩 자고 편집하는 게 가능했다. 따로 디렉터스컷은 안 만들고 싶었다. 36살의 에너지가 좋았고, 그걸 다시 손보고 싶지 않았다.

<타짜>는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나.

<타짜> 연출 제의를 받고 이건 못하겠다 싶어 안 한다고 거절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만들면서 쾌감이 있었다. 10명 정도의 캐릭터가 나오고, 그들의 욕망은 모두 결이 다르고, 시간 순서도 마구 뒤섞여 있는 쉽지 않은 작품인데, 그 수많은 요소를 영화에서 하나로 풀어냈을 때 쾌감이 있었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그런 얘기를 했다. ‘영화를 만드는 건 친구들과 소풍을 가는 것과 같다.’ 에이, 그럴 리가. 영화를 만드는 건 댐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거 아닌가? 그런데 <타짜> 때 처음으로 펠리니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 때는 댐을 만드는 기분이었나.

<범죄의 재구성> 때는 어우~. (웃음) 나는 단편도 몇편 안 찍어보고 장편 데뷔를 했다.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어보니 모든 감독들이 위대해 보이더라.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타짜> 때는 너무 재밌었다. 마지막 촬영 때, 더 찍으라면 더 찍을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실제로 (김)혜수씨는 뭐라도 만들어서 하루이틀 더 찍고 싶다 그랬고.

<타짜>에는 무수히 많은 명대사들이 있다. 기가 막히게 생생한 대사가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뭐였나.

술상을 봐놓고 친구들을 부른 적이 있다. 영화아카데미 동기들을 불러서 “자, 오늘 2만원씩 가져와. 나랑 화투 치자. 술은 내가 살게”, 그러면서 화투를 치고, 그 자리에서 나온 얘기들을 기억해둔다. 또 배우들이 하는 말, 술 먹다가, 사석에서, 현장에서 하는 말들을 대사로 만들어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고치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고쳐 쓰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중복되는 대사다. 이미 한 얘기는 다시 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말 한마디가 서사적으로 중요한 재미없는 한마디보다 더 중요하다. 의미 없는 말이라도 그것이 캐릭터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면 쓴다. 사실 서사에 도움되는 대사는 별로 없다. 캐릭터들이 다 자기를 드러내는 대사를 하지. 그런 대사가 정말 좋은 대사라 생각한다.

2년 전엔 곽철용(김응수)의 “묻고 떠블로 가”라는 대사가 갑자기 소환되며 유행하기도 했다.

그 대사는 원작 만화에 있는 대사다. 이게 15년 전 영화니까, 지금의 20대들에겐 <타짜>가 옛날 영화일 텐데, 젊은 친구들이 캐릭터를 소비하고 놀이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 재밌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웃음)

로케이션도 정말 다양하다. 촬영한 도시만 15곳이 넘는 것으로 아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영화 속 공간이 있나.

도박하는 분들한테 “어디 가서 치세요?” 하고 물어보면 바다 위 배에서 치기도 하고, 이동하는 봉고차 안에서 친다고도 하고. “혹시 냉동창고 같은 데서도 치시나요?”라고 물어보면, 쳐본 적은 없지만 거기서 쳐도 안 걸릴 것 같네, 그러시고. 인물들이 어디서 화투를 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우시장 트럭 위, 냉동창고, 배 안은 취재와 상상으로 나온 것이다. 역시 영화의 마지막, 배 안에서 치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는데 그 장면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치는 설정으로 찍었다면 지금의 분위기는 안 살았을 거다. 밤 항구, 안개가 자욱한데 아무도 오지 않는 배 안,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무척 어려운 타클라마칸 사막 같은 그런 곳에서 시나리오 7페이지 분량을 찍어야 했다. 처음엔 그게 가능할까 싶더라. 7페이지 분량이면 영화로 15분인데. 그것도 한 장소에서, 고요히 화투 치며 대결하는 장면을 찍는다? 그 마지막 15분을 어떻게 찍을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계속 장면을 시뮬레이션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배 안 장면이 가장 어렵고 재밌었다. 실제로 배 내부는 시골의 어느 창고를 빌려 그 안에 세트를 지어서 찍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현장에서 아침저녁으로 스탭, 배우들과 ‘섰다’를 했다던데.

스탭들이 섰다를 잘 모른다. 그래서 키스탭, 각 팀 대장들을 모아서 만원씩 걸고 섰다를 했다. 그러면 각 팀 스탭들이 와서 본다. 처음엔 이걸 왜 하나 싶기도 했을 텐데, 그 안에 <타짜>의 분위기 같은 게 있다. 옆에서 보면서 아 저게 섰다군, 저렇게 하는 거군,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찍어야겠군, 그런 걸 자연스럽게 보고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촬영감독이 따면 그 돈은 촬영팀 몫이 되니, 스탭들이 좋아했다. 난 승률이 좋지 않았지만.

아니, 감독님은 <타짜> 현장에서 최고의 밑장 빼기 달인이 아니었나. 고니의 손 대역까지 했는데.

그땐 기술을 배우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지금은 다 잊어버렸고.

고니 역은 처음부터 배우 조승우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아는데, 어떤 확신이 있었나.

원작 만화에서 고니는 덩치가 크고 곰처럼 움직이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한 고니는 겉은 유하지만 속에는 화산이 이글거리고 있는, 그걸 언제 폭발시켜야 할지 모르거나 꾹 참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상의학으로 따지면 태양인 같은 사람.

겉보기에 조승우 배우는 태양인 느낌은 아닌데.

속으로 태양인. <타짜>의 서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니가 도박을 시작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들 모두가 고니를 얕잡아보거나 신참으로 봐주길 바랐다. 마지막에 가서는 과연 저들이 고니를 이길 수 있을까 싶은 캐릭터로 변화하길 바랐고. 에너지를 잘 감추다가 확 터뜨리는 배우가 필요했다. 능수능란하지 않은 소년이 멋진 캐릭터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싶었다. 그러기엔 조승우만 한 에너지의 배우가 없었다.

김윤석 배우와는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까지 끈끈한 관계를 이어온 관계다.

연극하던 김윤석 배우를 보고 ‘와 너무 연기 멋있게 한다, 나중에 감독이 되면 저 배우랑 같이 해야지, 감독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웃음), 그런 생각을 했었다. <타짜>에선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저 사람 뭐지?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저 불안한 에너지는 뭐지?’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윤석 선배가 아귀를 하면 사람들이 아귀라는 캐릭터에 대해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보겠군, 싶었다. 실제로 촬영 현장에 윤석 선배가 잠바 입고 오면 다들 ‘어떤 형이 왔나보다’ 하는데, 의상을 갈아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면 스탭들이 옆에 가지 않았다. 무서운 기운이 흘러나와서. (웃음)

아귀는 화장실에서의 첫 등장부터 특별한 기운을 뿜었다.

용무를 마치고 나온 사람 중에 제일 멋있지 않았을까. (웃음)

정 마담 없는 <타짜>도 상상할 수 없다.

촬영 전 고사 뒤풀이 자리에서 혜수씨가 그런 얘길 했다. ‘근데 정 마담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인가요, 늑대의 탈을 쓴 양인가요?’ 정 마담한테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강해 보이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내가 이걸 언제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늑대의 탈을 쓴 사슴이라고 해두죠,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혜수씨의 그 질문이 재밌었다.

<타짜>에서 고니와 고광렬 커플이 사랑받는 걸 봤기 때문에 <전우치>에서 전우치(강동원)와 초랭이(유해진) 커플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유해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봤나.

<범죄의 재구성> 땐 (떠벌이 얼매 역으로 출연한 이문식 배우 대신) 유해진 배우와 같이하고 싶었고, <타짜> 때는 이문식 배우와 하고 싶었다. (웃음) 나는 말을 아주 빨리 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모두 드러내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잠깐 고광렬의 대사를 빠르게 읊으며) 고광렬은 사랑스러운 타짜이고, 유해진 배우는 훌륭한 짝패다. 관객이 고광렬의 끝이 비극이 아니기를 바랄 수 있게, 저런 친구 한명쯤 있으면 즐겁지 하고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타짜>의 후속편인 <타짜-신의 손>을 만든 강형철 감독, <타짜: 원 아이드 잭>의 권오광 감독과도 소통이 있었나.

강형철 감독하곤 친하니까 술 마시며 얘기를 나누긴 했다. 화투 장면 찍는 거 굉장히 어렵다고 얘기했지. 이건 마치 김 한장을 놓고 젓가락으로 싸우는 가족을 찍는 것과 같은 거라고. (웃음) 찍어봤자 포숏, 투숏, 원숏이고, 김을 클로즈업으로 찍는다고 생각해보라고. 화투 장면 찍기가 만만치 않다. 한장 한장 나올 때마다 드라마가 있어야 된다. 관객은 숫자 7이 나왔는지 6이 나왔는지 신경 쓰지 않지만 만드는 사람은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도 하고 <타짜>의 특성이 활극인지 모험극인지 리얼 드라마인지 경계선이 모호한 측면이 있다. <타짜>가 가진 장르적 불균질성이 있다. 영화엔 만든 사람의 삶의 경험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섞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자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가 나온 것 같다. 시리즈의 공통점은 <타짜>에서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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