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웃음과 진지함의 균형
2021-12-01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타짜> 유해진

고광렬은 <타짜>의 밀도를 높이는 인물이다. 첫 등장부터 쉴 새 없이 고니(조승우)의 옆에서 조잘대는 그는 긴박한 사건이 터지지 않을 때에도 영화를 가속하고, 장면의 빈곳을 꼼꼼하게 채워간다. 도박판에서는 상대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귀가 따갑도록 딴소리를 하지만, 고광렬의 촐랑대는 혀는 139분 러닝타임을 쏜살처럼 흐르게 보는 이를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타짜>에서 누구보다 많은 웃음을 책임졌던 유해진은 이후 <타짜> 시리즈를 관통하며 유기성을 책임진 장본인이기도 하다.

데뷔 이래 5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해온 유해진에게도 고광렬은 특히 각별한 존재다. 유해진은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광렬을 꼽아왔다. 관객이 정말 사랑했고 배우 유해진에게도 큰 변화를 줬던 그는 단순히 재미있는 감초가 아니다. 고니의 가족이 그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어설프게 둘러대는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고, 도박판에서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손목을 크게 다쳐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를 때 고니와 나누는 감정엔 깊은 페이소스가 녹아 있다. “플랫한 인물들은 크게 재미는 없다. 고광렬처럼 변주가 있는 캐릭터들이 재밌다. 운이 좋아야 <타짜>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웃는 모습 속에 슬픔이 담겨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지 않았나. <타짜>의 고광렬을 만난 건 내게 정말 ‘럭키’였다.”

유해진은 최동훈 감독과 걸출한 배우들이 포진했던 <타짜>를 “프라이팬에 콩을 볶을 때 파바바박 튀는 것처럼 굉장히 에너지 있는 현장”으로 기억한다. 스스로도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자문하며 자신을 들들 볶았다. 특히 고광렬이 집 나간 고니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족들을 만나 그가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며 거짓말하는 장면은 감독의 기본적인 설정하에 유해진의 순발력을 통해 완성됐다. “그냥 우리가 많이 하는 말의 습관과 사실적인 행동이 있다. 식탁 위에 있는 간장과 식초통을 갖고 이런저런 대사를 치면 좀더 살아 있는 게 나오겠다 싶어서 현장에서 만든 거다. 배우는 누구나 너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끔 계산을 한다. 웃음을 전하되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말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일상에서 눈과 귀를 열고 진짜 같은 표현을 수집하던 유해진의 아이디어는 다른 캐릭터에게도 반영됐다. 정 마담의 “마음이 딸랑딸랑~” 같은 대사는 유해진이 찾아낸 “살아 있는 말” 중 하나다. 촬영이 없을 때 세트장 밖에서 어떤 노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유해진은 그 표현이 너무 재미있다며 잊지 않고 최동훈 감독에게 전한 것이다.

2006년 <타짜>를 만난 이후 유해진이 걸어온 궤적은 굳이 상술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 <전우치> <이끼> <부당거래>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베테랑> <럭키> <공조> <택시운전사> <1987> <완벽한 타인> <봉오동 전투> <승리호> 등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코미디와 스릴러, 선인과 악인, 원톱 주연과 멀티 캐스팅의 절묘한 앙상블을 오가며 유해진 활용법의 범주를 넓혔고, 일상의 노동으로 편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준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로 범대중적인 호감을 얻었다. 하지만 유해진은 자신의 매 선택에 근사한 의미를 부여하는 전략가보다는 흘러가는 시간에 자신을 내맡기는 타입이다. “해가 지날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변화다.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어린 에너지를 가졌고, 지금은 지금의 에너지를 가지고 연기한다. 배우라는 직업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좋은 작품과 감독, 동료 배우를 만나지 못하면 표현할 길이 없다. 특별히 어떻게 성장하겠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결과가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니 <타짜>는 유해진의 표현대로 운 좋은 분기점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필연적이다. 단 몇초만 등장해도 자신만의 인장을 남기던 배우가 만날 수밖에 없었고 만났기에 만개한, 승률 100%의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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