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이 꼽은 명장면: 역 앞에서 고니를 기다리는 정 마담
고니와 아귀가 배에서 마지막 화투판을 벌이기 직전, 정 마담이 역 앞에 고니를 마중나가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정 마담이 “우리는 무조건 돈만 챙긴다”고 하면 빨치산은 “고니는요?”라고 묻는다. 그때 카메라는 정 마담의 고민이 담긴 표정을 3, 4초간 보여주며 정 마담의 뒤로 빠져 트랙아웃한다. “그게 하나도 명장면은 아닌데… 그때 정 마담은 아마 갈등하고 있었을 거다. 내가 원하는 건 돈이지만 고니를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다는 느낌이 나길 바랐다. 그 아무렇지 않은 트랙아웃, 카메라가 정 마담에게서 멀어지며 뒤로 빠지는 순간이 자주 생각난다. 그 순간을 더 잘 표현했으면 좋았을걸, 카메라가 좀더 천천히 빠졌으면 어땠을까, 더 멀리 빠졌어야 하나 더 들어갔어야 하나.” 최동훈 감독은 <타짜>가 개봉한 이후에도 “그때의 정 마담을 어떻게 하면 더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었을까” 계속 생각했다고 한다.
배우 백윤식이 꼽은 명장면: 평경장 집에서 고니와 평경장이 함께하는 장면
타짜가 되고 싶은 고니는 최고의 타짜 평경장에게 한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어렵게 평경장의 집에 발을 들인 고니는 눈보다 빠른 타짜의 손기술을 목도하는데, 백윤식은 이때 평경장의 집에서 고니와 평경장이 함께했던 장면을 <타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다른 연기자들도 소름 끼치게 잘했지만 나는 평경장 집에서 고니와 평경장이 함께 나왔던 장면이 아주 뇌리에 박혀 있다. 아직도 삼삼하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아수라 발발타. 돈을 벌고 싶니? 부자가 되고 싶니? 이거이 정주영이고 이병철이야. 같은 명대사가 줄줄이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배우 조승우가 꼽은 명장면: 비닐하우스 도박판의 하산 장면
곽철용(김응수)의 대형 비닐하우스 도박판에 경찰이 떴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고니와 고광렬은 돈을 챙겨 잽싸게 뒷문으로 빠져나오고, 수백명의 노름꾼들은 경광봉을 든 관리자들을 따라 “천천히, 천천히”라는 구호를 외치며 질서 있게 하산한다. “시사회에서 보고 소름 돋았던 장면이다. <오징어 게임>에 나올 법한 큰 돈통을 앞에 두고 일확천금을 노리며 도박하던 사람들이 경찰이 떴다고 하자 ‘천천히, 천천히’를 외치면서 흩어진다. 또 다른 날을 기약하며 하우스를 빠져나가는 그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본성과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단순함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 천재인가? 감독님 천재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다.”
배우 김혜수가 꼽은 명장면: 배 안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도박 장면
영화 후반부, 아귀와 고니, 정 마담은 배 위에서 억 단위의 도박을 한다. 아귀와 고니가 마주보고, 정 마담과 호구가 마주 보고 앉아 도박을 시작한다. “아귀와 고니가 배 위에서 게임을 하면서 강렬하게 대립하는데, 이때 인물의 구도가 두 사람(고니와 아귀)을 양쪽에 두고 정 마담이 가운데에 앉아 있는 구도다. 그때의 경험은 배우로서 너무 특별했다. 엄청난 배우들이 내 눈앞에서 합을 겨루는 걸 지켜보면서 숨이 막힐 정도의 시너지를 느꼈고,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안되겠다.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조승우와 김윤석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김혜수는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 큰 자극이 됐다”고 이 장면을 회상했다.
배우 유해진이 꼽은 명장면: 기차에 매달린 고니
아귀와의 승부에서도 이기고 고광렬도 구하고 돈가방도 챙긴 고니는 기차를 타고 떠난다. 모든 게 끝났다 싶은 순간, 고니를 쫓던 곽철용의 부하가 나타난다.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다 기차에서 떨어질 뻔한 고니는 기차에 걸린 돈가방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버티는데, 가방에 들어 있던 돈들이 사방으로 날린다. “고니가 기차에 매달려 있는 그 장면이 그렇게 인상적이더라. 돈에 관한, 도박에 관한 모든 게 압축적으로 담긴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