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패틴슨은 배트맨이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제까지의 배트맨들과 구분되는 그만의 배트맨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었다는 의미로 읽혔다. 단 몇줄뿐인 대사지만 예고편에 들어갈 장면을 위해 목소리를 만들고, 그가 해석한 배트맨의 보디랭귀지가 코스튬과 어울릴 수 있도록 촬영 전부터 열정을 다했다. 그러는 동안 모호하게 느껴졌던 배트맨이 차츰 뚜렷해졌다는 로버트 패틴슨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 배트맨의 목소리는 캐릭터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준비했나.
= 배트맨의 목소리를 낼 자격이 충분하다고 스스로 느끼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특별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지는 않았지만 나만의 배트맨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연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크리스찬 베일의 목소리가 왜 자꾸 쉬는지 알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지금까지 새로운 캐릭터에 접근할 때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지를 먼저 상상해왔다. 그 뒤에 나머지가 따라오는 편이다. 그리고 배트맨은 슈트를 입기 때문에 목소리도 그에 맞춰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슈트를 입고 범죄 현장을 조사하거나 긴 대화를 할 때 움직임이 경직되기보다는 우아해 보이기 원했고, 보디랭귀지도 위협적이지 않기를 원했다.
- 첫 배트맨에 대한 기억은 무엇이었나.
= <배트맨2>였다. 아마 나의 최애작일 것이다. 배트맨들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른 이유로 좋아할 수밖에 없다. 영국은 미국과 다르게 코믹스를 문화로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 그래서 어려서 코믹스를 보러 서점에 간 기억은 없다. 하지만 영화산업에서 일하게된 뒤로 거의 모든 메이저 코믹스, 그래픽 노블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사실 코믹스 캐릭터 배역을 위해 오디션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배트맨을 두고 사람들은 20세기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딱 적당한 모호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러면서도 그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다층적이고 강렬하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게 배트맨이라는 아이코노그래피가 가진 기본적인 힘이며, 그 요소들이 사람들의 깊은 곳과 통했다고 생각한다. 배트맨을 연기하는 유산을 따르게 됐다는 건 배우로서 영광이다. 마치 어떤 정신을 계승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압도적인 경험인지는 촬영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 영화에서 셀리나와 브루스가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 둘 다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외에는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두 사람이 정의라는 하나의 목표로 만난다. 그리고 이 둘의 접근 방법이나 해결 방법은 일반적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과는 꽤 다르다. 평생을 정말 외롭게 살아온 두 사람이, 내면의 분노가 가득한 두 사람이,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던 두 사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같이 닮은 서로를 찾게 된다. 하지만 막상 거울을 마주하게 되면 놀라움과 감탄만큼이나 거울을 부숴버리고 싶은 욕망도 생기지 않나. 그런 흥미로운 역학 관계가 둘 사이에 존재한다. 엄청나게 설레는 동시에 두려운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