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김병규 평론가의 '오마주'
2022-09-01
글 : 김병규 (영화평론가)
연출자, 탐정, 번역가

2022년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와 요나스 메카스의 탄생 100주년이다.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상영과 행사가 열렸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언급은 드물었다. 그들의 영화는 이미 논의가 끝나버린 지나간 작업들로 받아들여지는 걸까? 하지만 두 사람의 영화가 동시에 도착한 사건을 단순히 의례적 행사로만 여기는 건 부당하기 짝이 없는 처사다. 그들이 추구하고 성취한 영화적 형식은 흔히 ‘시적 영화’(파솔리니)와 ‘일기체 영화’(메카스)라는 글쓰기의 양식으로 비유되곤 하는데, 두 연출자가 제작한 폭넓은 경력의 궤적을 살핀다면 이들의 영화를 엄격한 의미에서 시 혹은 일기의 형식으로만 수용하는 것이 온당치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파솔리니의 ‘시’에는 산문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의 언어가 포함돼 있고, 메카스의 ‘일기’는 수많은 화자와 시간을 수용한다. 두 사람의 영화는 시와 일기라는 구체적 언어의 양식과 일대일로 번안되지 않는다. 시적인 언어와 일기적인 형태가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만큼 그들의 영화에는 거기에 포획되지 않는 다른 것이 있다.

오랜 시차를 무릅쓰고 파솔리니와 메카스의 영화를 2022년 한국영화와 공명하는 동시대적 사례로 호출한 것은 그들의 영화가 제기하는 영화적 언어와 번역의 문제가 오늘날 영화의 주요한 질문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번역기를 활용해 두 사람의 멜로드라마적 감정을 심화하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 일본어로 쓰인 각본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제작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는 국제적 OTT 시장이 폭발한 환경,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라고 말한 봉준호의 언급과 맞물리면서 오늘날 ‘세계적’ 위상을 갖춘 한국영화에 외국어와 번역이라는 문제를 던진다(여기에 사회적 관습에 기대지 않은 자폐인의 언어를 끌어들여 큰 반향을 얻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2022년의 사례로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례들에서 묘사되는 완벽한 번역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영화는 정말 서로 다른 언어를 이질감 없이 번역할 수 있을까? 그사이에 누락되거나 과잉되는 것은 없는가? 그런 의미에서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는 상반기 한국영화에서 주로 그려진 번역과는 조금 다른 성질의 ‘번역’의 여정을 그리는 희귀한 영화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감독인 지완은 사운드가 소실된 채로 발굴된 영화 <여판사>의 복원 의뢰를 받는다. 하지만 프린트와 시나리오도, 영화에 참여한 당사자들도 남지 않은 영화를 복원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지완은 60년대에 세편의 영화를 남기고 사라진 홍재원 감독의 흔적을 찾는다. <오마주>에서 지완은 소실된 영화를 재현하고 복원하는 연출자이면서, 복원의 단서를 찾는 탐정이자, 분열된 채로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잇는 번역가다.

<여판사>의 더빙 작업을 맡은 배우는 지완에게 대본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기억력이 희미해진 홍재원 감독의 편집기사는 제작 과정은 물론 심지어 ‘영화’라는 단어마저 잊어버린다. 현재의 우리에게도, 과거에 <여판사> 제작에 참여한 그들에게도 홍재원의 영화는 불완전한 형태로 남겨져 있다. <오마주>가 <여판사>와 홍재원 감독의 흔적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은 완벽한 번역의 불가능을 마주했을 때 모색하는 영화의 방법론이다. 이처럼 조각난 채로 공존하는 기억이 있기에 지완은 홍재원의 편지에서 그의 목소리와 이미지를 상상한다. 이런 여정을 통해 우리는 ‘영화’를 잊어버렸을 때조차 영화라는 사물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영화는 한편의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 사이에 새겨진 간격을 환기하며 그들의 관계를 존재론적으로 다시 고찰한다. 카메라와 피사체, 배우의 목소리와 더빙된 음향, 결과물로서의 영화와 그것을 만들어낸 연출자 사이에는 그런 간격이 있으며 <오마주>는 이 간격을 노출하는 데서 오는 균열을 받아들인다. 상반기에 공개된 한국영화 가운데 <소설가의 영화>, (아직 개봉하지 않았지만) <2차 송환>과 함께, <오마주>가 그런 영화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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