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송형국 평론가의 '브로커'
2022-09-01
글 : 송형국 (영화평론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숨어 있을지 모를
<브로커>

운동권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잠복하던 형사가 불쑥 자리를 뜬다. 그가 향한 곳은 ‘물망초’라는 업소다. 여성 종업원이 옆자리에 앉아 술 따르는 곳이다. 형사가 목소리 깔고 꺼낸 첫사랑 얘기에 종업원은 공감하는 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서 남자에게 반한다. 아마도 자신의 아픈 기억을 건드렸을 남자에게, 여자는 대뜸 잠자리를 허락한다. 내가 오늘밤 당신의 첫사랑이 되어드릴게요. 함께 밤을 보낸 뒤 남자는 홀연히 떠나고 여자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럴 일은, 없다. 그저 남성의 판타지일 뿐이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의 한 장면이다. 많은 이들이 그를 리얼리즘의 거장이라 부른다.

남자 둘이 길을 떠난다. 술집 종업원이던 여자가 합류한다. 여자는 범죄를 저지른 뒤 쫓기는 신세다. 형님 격인 남자는 감옥에 다녀와 딸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아우 격인 남자는 여자와 티격태격하다 정이 쌓인다. 여자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며 마음을 나누지만 가족을 이루지는 못한다.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만희 감독의 유작 <삼포 가는 길>(1975) 이야기다. 동시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그대로 채용한 영화의 뼈대이기도 하다. 어린이와 경찰 등 인물 구성에 살이 붙었지만 ‘남 2 여 1’의 골조 속에 펼쳐지는 일종의 남성 판타지다. 성매매 여성인 처지지만 마음만큼은 주인공에게 준다는 설정. 역시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되는 거장들이다.우리는 종종 남성 창작자들의 판타지를 모른 채 지나쳤거나 알고도 말하지 못했거나 혹은 용인해왔다. 멜로 속 여성 캐릭터에는 현실에선 허락되지 않는 남성의 욕망이 흔하게 배어들곤 했다. 이른바 ‘성녀-창녀 2분법’이다.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2012)은 어떤가. 속마음 한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첫사랑이 다른 남자에게 입술을 빼앗긴 뒤, 그녀는 주인공의 기억을 지배하는 트라우마인 동시에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감독 박흥식, 2000)의 주인공은 미래의 아내에게 영상 편지를 남기는 ‘순정남’ 설정인데 동료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마사지 업소에서 성매수를 한다. <고래사냥>(감독 배창호, 1984)까지 갈 것도 없다. 아주 예전부터 멀지 않은 과거에 이르기까지 남성 창작자들은 여성을 타자화하는 데 ‘조심’하지 않았다. 오래된 일이다.

요즘은 많이들 ‘조심’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영화가 성차별적이라거나 여성만 평면적으로 그린다거나 하는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다. 작자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을, 타자화 본성의 문제다. 뜻밖에도 많은 경우의 타자화는 본성에 의해 이뤄진다. 의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눈에 띄지 않거나 보이더라도 말을 꺼내기 어렵거나 이야기해도 결론짓지 못하기 일쑤다. 작자가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브로커>의 소영(이지은)이 모성애로 뭉쳐 임신 중단을 죄악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어떤 장면에서 소영은 둥그런 프레임에 둘러싸여 마치 성모마리아인 것처럼 이미지화하는가. 애초에 그녀가 성매매 여성으로 설정된 건 어째서일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만큼 더더욱, <브로커>는 좀더 많은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작품이다.

P.S. ‘식사를 하지 못하면 배가 고프다’는 본성의 영역이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음식을 훔쳐 먹으면 안된다’는 당위의 영역이다. 본성이 당위를 거스르는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본성과 당위를 헷갈리는 일은 사태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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