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영화제의 XR 전시 프로그램 ‘비욘드 리얼리티’가 5주년을 맞았다. 영화제가 XR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수용한 지는 8년째다. ‘비욘드 리얼리티’는 국내의 영화제뿐 아니라 모든 XR 전시회 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세계 XR 콘텐츠의 현황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올해의 전시에서는 애니메이션, 실사, 게임 그래픽, 고전적 영화 영사의 형태를 넘나들며 외연을 확장 중인 XR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능동성과 수동성 혹은 상호작용의 정도에 따라 작품의 함의가 뒤바뀌는 XR 작품의 미학적 가능성을 판가름할 수 있었다. XR의 현재와 미래가 여기 있었다.
전시장의 2층에 진입하면 <에그스케이프>와 <프롬 더 메인 스퀘어>가 가장 눈에 띈다. AR 작품인 <에그스케이프>는 <포켓몬 GO>처럼 현실의 층위에 게임 화면을 구현한다. <메탈슬러그>나 <스노우 브라더스> 등의 오락실 게임이 떠오르게 한다. 달걀 모양의 캐릭터를 조종해 코인을 습득하고 빌런들과 전투하는데, 최대 4명이 플레이할 수 있는 덕에 또래 친구들 혹은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 단위의 관객이 다수였다.
<프롬 더 메인 스퀘어>는 XR 콘텐츠의 난제인 능동성과 수동성 사이의 균형 잡기를 기막히게 구조화한다. 그래픽 스타일은 흡사 장 자크 상페를 떠올리게 하는 동화풍의 펜 스케치다. 원시시대의 목가적 정경부터 근현대의 파시즘, 미래의 디스토피아까지 인류의 흥망성쇠가 파노라마로 재생된다. 플레이어는 360도로 펼쳐진 파노라마를 직접 몸을 움직이고 고개를 돌리며 감상할 수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보고 있지 않은 각도의 화면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가령 영화엔 컷과 컷 사이의 축약된 시간이 존재한다면, XR은 특정 각도와 각도 사이에 생략된 시공간이 존재하는 셈이다.
<포레이저>는 4D XR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플레이어는 포자의 시점에서 광활한 숲부터 자연물의 내부까지 여행하며 자연의 향기와 움직임의 진동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재일버드>는 카메라의 시점 전환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감옥에 갇힌 두명의 수감자가 주인공인데, 작품은 대화하는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을 좁은 수감실의 여러 각도에서 연신 교차하며 플레이어에게 보여준다. 더하여 플레이어는 직접 몸을 움직여 좁은 방의 사각을 돌아볼 수 있고 인물의 표정을 극한으로 클로즈업할 수 있다. 요컨대 영화가 증명한 촬영·편집의 고전적 기능과 XR 플레이어의 시각적 권리를 교묘하게 섞어내며 XR 콘텐츠의 가능성을 키워낸 것이다.
올해 전시의 메인 작품은 단연 <가우디의 신성한 아뜰리에>다. 죽음을 앞둔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작업실과 건축물이 실제 장소의 크기로 구현되며 주변의 풍경을 뒤바꾸는데, 그래픽의 압도적인 양감과 디테일이 XR 콘텐츠가 지닌 규모의 효능감을 극대화한다. 또한 플레이어가 직접 걸어 다니면서 건축물의 이미지를 취사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촉각적 수용에서의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강렬히 현시한다. 한편 본작이 전시된 부천아트벙커B39의 벙커 공간은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란 XR 콘텐츠의 초현실적 정취를 증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