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이하 FLY2024)과 닷새 동안 함께했지만 사실 이들은 훨씬 오랜 시간 한팀을 이루어 협업했다. 21명의 교육생은 각자의 나라에서 화상 미팅을 통해 2개월간 온라인 프리프로덕션 과정을 거쳤고, 10월30일부터 11월13일까지 2주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만나 프로덕션을 마쳤다. 영화제작은 물론 작품 시사 및 대담까지. FLY2024 참가자들이 밤을 지새며 영화에 몰두한 비엔티안에서의 영화로운 날들을 사진으로 정리해보았다.
A팀의 영화 중 한편인 <원스 아논 어 타임>은 집 밖을 나서기를 무서워하는 소년 아논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생애 처음으로 장을 보러 나가는 하루를 그린 단편영화다. 촬영을 마친 이들은 포스트프로덕션에 이르러 난관에 부딪혔다.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아논과 그를 뒤쫓는 낯선 남자의 존재가 끝까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다. 그런데 우리가 아논과 남자가 동시에 등장하는 풀숏을 찍지 않았다는 걸 포스트프로덕션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또 푸티지를 보니 쓸 수 있는 컷이 촬영분의 절반 정도라 주어진 컷 안에서 어떻게든 조물조물 그럴듯한 영화를 만들어내야 했다.”(대한민국 참가자 김수현)
똑같은 음악이 5초 단위로 무한반복되며 작업실 전체에 울린다. 후반작업에 한창인 참가자들이 모여 장면에 맞는 음악의 시작과 끝을 어떻게 맞출지 실랑이를 한다. 같은 장면,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보고 듣는 참가자들은 모두 노이로제를 호소하는 중이다. 이내 서로의 작업 스케줄을 확인하며 일정을 맞춰보던 참가자들은 당이 떨어진다며 테이블 위에 놓인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곧 특강이 있으니 모두 세미나실로 모여달라는 공지가 뜨자 참가자들이 하나같이 외친다. “지금 특강을 들을 때야? 아직 작업이 안 끝났다고!” 물론 참가자들은 특강에서도 강사에게 열띤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적극적으로 임했다.
졸업식을 앞둔 전날 밤, “지금부터 음악 및 음향, 색보정을 제외한 수정은 불가능하다”라는 최민영 편집감독의 엄포를 시작으로 대망의 기술 시사가 열렸다. 6편의 영화를 상영한 후 FLY를 거친 6인의 선배들은 참가자들에게 영화별로 시나리오, 촬영, 편집 등에 관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건넸다. “아직 파티를 열 때가 아닙니다. 오늘 밤 마지막으로 서로 도와가며 부디 영화를 끝까지 마무리하십시오”라는 이종석 감독의 당부로 기술 시사가 끝났다. 이어진 선배와의 대담 전 잠깐의 쉬는 시간, 강사진들은 참가자들에게 내일 졸업 시사 전까지 무얼 개선하면 좋을지 강연을 이어갔고 참가자들은 강사진의 조언을 경청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FLY2024의 마지막 일정은 졸업식과 졸업 시사였다. 참가자들이 이전까지의 모습은 잊어달라는 듯 출신 국가의 화려한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모였다. 프로덕션 기간 중 촬영 분야에서 활약을 보인 참가자에게 수여하는 아퓨처상은 캄보디아 참가자 리티 세크와 라오스 참가자 솜소욱 코운사바스에게, 내년 비프아시아영화아카데미(BAFA)의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BAFA 어워드는 미얀마 참가자 노 노 린에게 돌아갔다. “언젠가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한다면 잊지 말고 나를 음악감독으로 고용해달라”는 심현정 음악감독의 다정한 격려를 끝으로 FLY2024의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참가자들은 뒤이은 졸업 파티에서도 미처 회포를 다 풀지 못해 새벽까지 각자의 방에 모여 찻잔에 컵라면을 끓여 나눠 마셨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