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ASEAN-ROK Film Leaders Incubator: FLY2024, 이하 FLY2024)은 부산영상위원회와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가 주관하는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이다. 이 행사는 2012년 필리핀 다바오를 시작으로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아세안 10개국을 순회하며 코로나19 팬데믹 3년을 제외하고 매년 성황리에 개최됐다. 올해 한국과 아세안 10개국에서 국가별로 2명씩 선발된 FLY2024의 교육생 22명은 10월30일부터 11월13일까지, 총 2주간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 머물며 영화제작의 전 과정을 익혔다. 라오스를 끝으로 아세안 국가에서 개최를 마무리하는 FLY2024에 <씨네21>이 4박5일간 동행했다. 2025년 시즌 피날레를 앞두고 FLY2024가 겪은 주요한 변화 및 교육생들의 소감을 글과 사진으로 정리해 전한다. 또한 FLY2024에서만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세미나와 아세안 각국의 영화제작 현실의 지상중계도 함께 담았다.
올해 10회를 맞이한 FLY2024는 대대적인 프로그램 개편을 거쳤다. 예년까지 FLY의 교육생들은 2개 팀으로 나뉘어 15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팀당 1편, 총 2편을 제작했다. 하지만 올해 교육생들은 2개 팀으로 나뉘어 7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팀당 3편, 총 6편을 제작했다. 프로그램을 총괄한 배주형 부산영상위원회 대외사업팀장은 이같은 변화가 “교육생들에게 ‘자기 작품을 만든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그간 FLY에서 11명으로 구성된 팀이 만드는 15분의 단편영화 1편에는 공동 연출이 3명, 공동 촬영감독이 3명이었다. 하나의 작품이 시퀀스 단위로 연출자와 촬영감독이 달라지는 셈이다.
이는 교육생 개인의 경험이나 숙련도가 전부 달라 작품의 통일성에도 지장을 주고, 각 스태프가 영화 한편에 대해 책임 소재가 모호해 참가자별 기여도에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반면 팀당 3명의 연출과 3명의 촬영감독이 각기 다른 3편의 단편영화를 담당하면 개별 작품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영화에 자신의 개성까지 듬뿍 담아낼 수 있다. “무엇보다 FLY의 사업 목적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보단 친구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자기들만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이 취지의 달성을 위해서라도 개편이 필요했다.”(배주형) 라오스의 국가적 특성 또한 프로그램의 전면 보수에 일조했다. 라오스는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아직 영화산업이 제도, 의식 측면에서 선진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개최국에서 활동 중인 영화인이 멘토로 합류한 지난 FLY와 달리 FLY2024에는 국내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영화인들이 강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제작, 미술 분과의 멘토가 새로 합류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기생충> <미키 17>의 연출부와 <암살> <외계+인> 1, 2부의 스크립터로 활약한 정시은 조감독, 문승욱 감독의 <나비>를 비롯해 구글, 에스티로더 등 브랜드 광고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도맡은 김나영 미술감독이 그들이다. 특히 정시은 조감독은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전체 과정의 스케줄링은 물론 프로듀서 유경험자로서 현장 조율까지 도맡으며 예년에 비해 늘어난 작품 수가 차질 없이 일정 내 마무리되는 데 크게 일조했다.
11개국에서 모인 교육생들은 AFCNet 회원기관 및 국가별 지정 기관을 통해 선발된 2000~2005년생 학생들이다. 이들은 지난 8월부터 각자 나라에서 화상회의를 통해 6편의 영화에 대한 프리프로덕션을 가졌다. 이후 비엔티안에 입국한 교육생들은 그룹회의, 강사진들의 작품 시사 및 특강 등의 추가 프리프로덕션을 거친 후 11월5일부터 7일까지, 라오스 현지 프로덕션인 라오스 뉴웨이브 시네마 프로덕션(LNWC)의 협조를 통해 사흘간 팀당 3편의 영화를 하루 만에 완성했다. 브루나이 참가자 무하마드 알리민은 “모두가 만국 공용어인 영어로 소통했지만 내가 팀원들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했는지, 또 팀원들의 의사를 내가 정확히 반영했는지 점검하는 과정이 가장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필리핀 참가자 마이라 소이라소 역시 “작품의 대사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라오스어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현장에선 감독으로서 카메라의 프레이밍이나 배우의 대사에서 풍기는 뉘앙스 등에 집중했다. 그런데 막상 후반작업을 위해 촬영 푸티지를 보다가 찍지 않은 대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협업하는 일의 보람과 어려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난관은 FLY만이 제공할 수 있는 궁극의 경험이기도 하다. 2014년부터 한해도 빠지지 않고 FLY의 편집 멘토로 함께한 최민영 편집감독(<만추> <설국열차>)은 “전문 영화인에게 영화제작의 주요 기술을 배우고 단편영화를 완성하는 경험 이상으로 교육생들이 FLY를 통해 크게 얻을 수 있는 경험은 협력과 소통의 기술 습득이다. 문화권이 달라도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며 함께 창작하는 일은 장차 영화인으로 성장하려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부산영상위원회 역시 이 점을 늘 주시하고 있다. “국가별로 두명의 참가자가 오지만 참가자 개인의 재력 수준이나 국가의 문화산업 융성 정도에 따라 편차가 다양하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격차를 최소화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것이 매년의 당면 과제다. 궁극적으로는 FLY가 캄보디아, 미얀마 등 이제 막 영화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한 아세안 국가들의 인적 자원을 어떻게 상향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는 배주형 팀장의 전언이 이를 입증한다.
FLY는 2025년 부산 개최를 끝으로 한 회기를 마무리한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시즌 피날레와 본거지 개최를 기념해 보다 내실 있는 이벤트를 계획 중이다. 내년 5월엔 ‘FLY 후반작업 워크숍’을 기획해 아세안 10개국 20명의 참가자가 부산과 서울을 5일간 찾을 예정이다. 부산영상위원회는 FLY2025의 참가자들이 9월 초 부산을 방문해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을 거치고, 졸업식 당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참관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올해까지 총 221명의 졸업생을 낳은 아세안 영화인재의 산실인 FLY는 11월 ‘FLY 영화제’(가제)까지 열 전망이다. FLY를 통해 제작된 단편영화는 물론 FLY 출신 졸업생들이 업계에 진출해 제작한 영화 또한 상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