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대한민국엔 총 17차례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중 16번은 이승만, 박정희로 대표되는 독재정권이 대한민국을 압제하던 20세기에 자행되었다. 마지막 계엄령 선포 이후 45년 만인 2024년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은 17번째 계엄령을 기습 선포했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제주 4·3사건과 여수와 순천에서 벌어진 여수·순천 10·19 사건을 반란으로 간주해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군은 제주도 중산간마을 주민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학살했고 여수와 순천에서도 대규모 군사 작전과 민간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이중 4·3사건은 다양한 영화를 통해 재현됐다. 조성봉 감독은 1996년 4·3사건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레드헌트>를 연출해 이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 하지만 <레드헌트>는 여러 고초를 겪었다. 경찰은 조성봉 감독을 이적표현물 제작을 이유로 체포했고,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레드헌트>를 상영한 당시 서준식 서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영장 없이 구속했다. 이후 항소와 상고를 거쳐 2003년 <레드헌트>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적표현물의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이후 김경률 감독이 4·3사건을 소재로 한 첫 극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완성했고, 오멸 감독이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를 만들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고 한국 관객 사이에서 흥행까지 이룩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의 18년 독재가 시작됐다. 박정희는 6·3항쟁, 10월유신, 부마민주항쟁 등을 이유로 수차례 계엄령을 포고했고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에 의해 암살됐다. 이 시기에 벌어진 수많은 부조리는 <효자동 이발사> <그때 그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킹메이커> 등에서 수차례 픽션화된 바 있다. 1979년 12월, 10·26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이 또 한번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8년간 군부독재를 이어갔다. 올해 천만 관객을 달성한 <서울의 봄>, 배우 이선균의 유작인 <행복의 나라>는 유사한 시기 벌어진 군사 반란을 각기 다른 관점과 장르로 풀어내며 주목을 받았다. 한편 12·3내란을 주도한 계엄사령부는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 자료’에서 제주4·3사건을 제주 폭동으로, 여수·순천 10·19사건을 여수·순천 반란으로, 부마민주항쟁을 부산 소요 사태라 왜곡해 관련 단체의 공분을 샀다. 되풀이되는 역사 속 권력자가 악용했던 계엄의 비극사를 향후 한국영화계가 앞으로 어떻게 직시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추천작 <그때 그사람들>
감독 · 각본 임상수 / OTT 플랫폼 넷플릭스, 티빙, 왓챠
1979년 10월26일을 풍자, 조롱하는 작품 속 골계적 대사는 2024년의 행정부 각료에게 그대로 포개진다. 매일같이 술자리를 가지는 대통령에 대해 궁정동의 한 직원은 “내일 아침에야 끝날 것 같은 술자리”라며 혀를 찬다. 대통령 암살 이후 한 장관이 회의실에서 계엄령 선포의 명분을 묻자 김 부장(백윤식)은 “뭐 대충 국내 치안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눙친다. 개봉 당시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그때 그사람들>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냈고, 이 소송이 무려 항소까지 갔다는 사실은 영화보다 더 큰 블랙코미디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