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칠레의 영화는 지지 않는다, 피노체트 쿠데타와 칠레의 영화들 - <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 <칠레 전투> <공작> 등
2024-12-26
글 : 정재현

1960년대 칠레는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칠레 전역에서만 1970년 한해 동안 5295건의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으며, 우파 정부의 토지 개혁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무토지 농민운동이 벌어졌다. 같은 해 좌파 정당 연합인 인민연합이 추대한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아옌데의 당선 이후에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은 이어졌고 아옌데는 1973년 8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피노체트는 그해 9월11일,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킨 후 17년간 군부독재를 이어갔다. 피노체트는 쿠데타와 취임식 사이 최소 3만여명의 칠레 국민을 살해했고 자신에게 맞선 노동자들을 색출해 고문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정부가 사라져야 한다는 명목하에 쿠데타 전후로 미국의 배후 지원을 받았다. 1989년 야권 후보인 파트리시오 아일윈에게 패배한 피노체트는 대통령직을 넘기는 대신 총사령관 직책은 유지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이어진 끝없는 형사소송과 국제사법재판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칠레의 영화인들은 인민연합과 연대해 사회주의의 이상을 영화로 널리 알리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라울 루이스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칠레인들의 울분을 코미디로 풀어낸 <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를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 출품해 황금표범상을 받으며 뉴라틴아메리카 시네마의 시작을 열어젖혔다. 피노체트 독재정권이 칠레 정부를 장악한 이후 라울 루이스, 알레한드로 호도로스키 등의 감독은 망명을 선택했다. 이들이 칠레 바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 만든 영화의 일부는 망명 영화라는 라틴아메리카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참혹함을 꾸준히 영화로 직시해온 시네아스트는 파트리시오 구스만이다. 1972년 12월부터 아옌데 정권에서 벌어진 여러 봉기를 기록한 구스만은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어떻게 비극을 배태했고 칠레 국민은 어떻게 자생적으로 사회주의를 이끌어갔는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칠레 전투>를 만들어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구스만은 지금까지도 칠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비극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의 근작으로는 아타카마사막에 세워진 천문관측소 아래 묻힌 피노체트 정권의 희생자들을 우주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대규모 유혈 사태를 빚은 2019년 칠레 반정부 시위를 취재한 <내가 꿈꾸는 나라> 등이 있다.

추천작 <공작>

감독 파블로 라라인 각본 파블로 라라인, 기예르모 칼데론 /OTT 플랫폼 넷플릭스

재클린 케네디, 다이애나 스펜서, 마리아 칼라스. 20세기 서구 사회의 아이콘이 된 여성들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해체해온 파블로 라라인은 일찍이 칠레에서 ‘피노체트 3부작(<토니 마네로> <포스트 모템> <노>)을 만들어 주목받았다. <공작>은 라라인이 만들어온 일련의 피노체트 영화들과 방법론을 달리한다. <공작> 속 피노체트는 영생하는 뱀파이어다. 영화는 피노체트가 루이 16세의 군대에서 복무한 피노슈이며 프랑스대혁명 이후 아이티, 러시아, 알제리 혁명을 압제한 독재 권력으로 영생하다 피노체트로 환생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망을 위장한 피노체트는 노쇠해 구천을 떠돌고, 노동자와 젊은 여성의 ‘고혈’을 빨며 극우 사상을 전세계에 드리우고 비자금을 축재한다. 실제 인물의 행적에 비해 지나치게 구색을 갖춘 영화의 미장센이 이따금 현실을 가리지만 피노체트와 마거릿 대처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의 망령이 어떻게 현재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아 시스템을 궤멸시키는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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