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9일 동안의 여정을 끝마쳤다. 10월10일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 상영을 마지막으로 스크린을 거둔 이번 영화제는 예년과 달리 한달가량 앞당겨 치러졌다. 높고 화창한 가을 날씨의 엄호 아래 벌어진 이번 축제는 ‘해운대 원년’이라는 점에 시선이 모아졌다. 남포동에 자리했던 영화제 사무국이 수영만 요트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겨 게스트들의 행렬을 이끌었고, 해운대쪽 상영관도 10개관으로 늘어나 관객의 발길을 유혹했다. <인디펜던트>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 로저 클락은 “지난해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해운대가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밤마다 벌어지는 파티는 게스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는 말로 해변의 영화제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3년 만에 부활된 야외상영 큰 호응
날로 커져가는 부산영화제의 규모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영화제쪽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공식 게스트 규모만 5329명. 지난해 5318명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올해 영화제가 초청한 게스트 규정이 한층 강화됐음을 염두에 둔다면 실제로 영화제를 찾은 이들은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61개국에서 243편이 출품된 이번 영화제는 전체 좌석점유율이 83%로 지난해에 비해 2.3% 소폭 상승했다. 한편, 3년 만에 부활된 야외상영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개막작이었던 <도플갱어>를 시작으로 <굿바이 레닌!> <웨일 라이더> <자토이치> 등을 보기 위해 관객은 4500석 규모의 야외상영관을 연일 메웠다.
치열한 각축을 벌인 각 부문의 수상자도 결정됐다. 아시아 최고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뉴커런츠상은 <광산에 내리는 진눈깨비>를 연출한 이란 감독 알리레자 아미니와 이번에는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불견>을 들고 영화제를 찾은 이강생에게 돌아갔다. “영상미의 새로움과 영화의 깊이감 그리고 휴머니즘을 기준으로 선정했다”고 심사위원들은 전했다. 홍기선 감독의 <선택>과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장편영화 <오사마>는 PSB 인기상을 나란히 받는 데 그쳤다(<오사마>는 뉴커런츠상에 특별언급됐다).
국제영화평론가협회가 수여하는 국제비평가상(FIPRESCI Prize)은 이란 감독 파르비즈 샤흐바지의 <긴 한숨>이,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NETPAC)은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각각 차지했다. 인권영화 프로젝트 <여섯개의 시선>은 영화진흥기구상에 특별언급됐다. 단편영화에 주어지는 선재펀드상은 박정선 감독의 <춘희>와 손광주 감독의 <제3언어>가 공동으로 수상했으며 다큐멘터리에 주어지는 운파펀드상은 이호섭 감독의 <그리고 그 후>가 차지했다. 다큐멘터리 제작활성화를 위해 올해 처음 마련된 영산펀드상은 최하동하 감독의 <택시 블루스>에 돌아갔다.
해외 게스트 한국영화 열기 여전
수상결과와 상관없이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 게스트들의 관심은 올해도 식지 않았다. 영화제쪽에서 해외 게스트를 위한 추가상영을 잡았을 정도다. 시드니 아시아태평양영화제페스티벌 디렉터인 폴 드 칼발로는 <스캔들…>을 첫손에 꼽으며 “한국영화의 약진이 어느 해보다 눈에 띈다. 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영화들의 수준은 이제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평했다. 또 내년에 열리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스캔들…> <장화, 홍련> 등은 상영이 확정됐으며, 정창화 감독 회고전도 내년 파리영화제 상영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비즈니스를 위한 미팅도 잦았다. “폐막 이후에도 미팅을 갖을 정도였다”는 한 관계자의 말처럼, 올해 부산프로모션플랜(PPP) 행사 또한 성황을 이뤘다. 10월5일부터 7일까지 열렸던 제6회 PPP에는 총 30개국 300여개 회사에서 1100여명의 게스트가 참석해 공식 미팅만 500여건이 성사됐다. 또한 18편의 공식 프로젝트와 함께 신인감독들의 NDIF 프로젝트 5편, HAF in PPP 5편 등도 선정됐다. “아시아영화는 부산에서”라는 기치 아래 아시아필름마켓인 인더스트리센터도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시네마서비스, 시네클릭 아시아, 쇼박스 등 국내 10개 세일즈 회사를 비롯 차이나 스타, 미디어 아시아, 포르티시모 필름즈 등 국내외 22개 회사들이 비즈니스를 벌였다.
PPP 폐막일에는 총 7개 부문의 프로젝트에 대한 시상도 있었는데, 부산상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로프트>, 후버트 발스 펀드상은 아딧야 아사랏의 <상류사회>, 코닥상은 허진호 감독의 <행복>(가제), MBC 무비스상은 이명세의 <크로싱>, BFC상은 헬렌 리의 <벤츄라>, 무랄리 나이르의 <버진 카우>는 예테보리영화제 필름펀드상을 수상했다. NDIF 프로젝트 중에는 정소연의 <엠브리오>가 아이픽처스상을 수상했다.
PPP · BIFCOIM 더블진행으로 시너지 효과
올해 산업관련 행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부산국제필름커미션·영화산업박람회(BIFCOM)가 파라다이스호텔에 PPP와 한집 살림을 차리면서 “상호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점이다. 실제로 14개국 56개팀이 참가해서 300여회의 비즈니스 미팅이 이뤄졌으며 5천여명의 인파가 전시장을 찾았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70%나 증가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게스트들은 아이디어와 자본이 만나는 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프로덕션 전반을 아우르는 ‘원 스톱 멀티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 후한 평가를 줬다.
성과만큼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어렵사리 상영이 결정된 북한영화 특별전의 경우 기대에 비해 호응이 크지 않았다. 영화제쪽은 “1999년부터 추진해온 일이라며 이번 특별전이 남북영화 교류의 물꼬를 텄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지만, 이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10월7일부터 일반상영이 시작됐지만 평균 좌석점유율은 60%에 이르지 못했다. 게스트에게만 입장을 허락한 제한상영 2편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상영관을 두고서는 찬사와 비판이 오갔다. 해외 게스트들 중엔 “해운대쪽 상영관의 관람조건이 좋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실제로 408회의 상영이 진행되는 동안 해마다 2∼3건씩 터지던 대형 영사사고도 없었다. 그러나 해운대 메가박스가 10개관으로 상영관을 늘렸으나 인기작들이 좌석 수가 배로 많은 남포동(대영시네마 3개관, 부산극장 3개관)에 대거 배치되는 바람에 해운대-남포동간 교통이 불편하다는 해묵은 불만은 더욱 불거졌다. 좌석 수가 적은 해운대에 대거 몰려 있는 게스트들의 경우 티켓을 구하기가 유난히 힘든 해라는 불평이 터져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 라이프치히 시네마테크 매니저인 마크 지그문트는 “해운대에서 남포동으로 이동하려면 무려 1시간 이상 걸리는데다 올해는 좌석을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영화제가 관객들과 게스트들의 이러한 불평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전용관을 마련하기까지 이같은 진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영화제쪽을 힘들게 만든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순 없는 일. 부산영화제는 내년부터 상영관을 조정하고 재정비할 계획을 갖고 있다. 남포동 부산극장의 경우, 폐쇄가 결정된 이상 해운대 중심으로 상영관을 추가 마련한다는 것. 이를 위해 영화제쪽은 해운대 일대 극장들을 리모델링하거나 지근에 새로 들어서는 멀티플렉스와 협의를 진행해 500석 규모의 대형 스크린을 2개 이상 확보하기 위해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부산영화제 이용관 부위원장은 “내년에도 10월 초에 영화제를 개최할 것”이라면서 “가설극장을 세우는 등의 방법도 고려하는 등 모든 가능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전체 예산은 37억5천만원으로 현재 영화제가 추정키로 3억∼5억원의 흑자가 예상된다. 관객의 지지와 기업들의 후원을 버팀목으로 영화제를 치른 결과다. 하지만 기업들의 후원은 경제사정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스폰서에만 의존하기에 부산영화제는 규모나 위상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 커버렸다. 전용관 마련 등 안정적인 영화제 운영을 위해 지속적인 국고지원 약속이 필요한 시점이다. 관객의 열정과 스탭들의 열의만으로 8년을 버텨온 강행군이 이젠 좀 안쓰럽다.
부산의 말, 말, 말
“국민배우라… 엊그젠가 이승엽 선수가 56호 낸 기념으로 특별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쪽에서 곁다리로 ‘국민’자가 들어간다고 나에게도 인터뷰를 청해왔다. 조용필씨도 나간다더라.” (웃음) - 안성기, 아쿠쇼 고지와의 오픈토크에서 ‘국민배우’라는 호칭에 대해 묻자
“상상력의 시각화는 돈이 아니에요.” - NDIF 프리젠테이션에 <황소부랄과 하나님>으로 참여한 ‘톡톡 튀는’신인감독 김중, 판타지를 만든다고 하면 무턱대고 고예산이라고 기피하는 제작자들에게
“전체 인구가 6만명이 조금 넘는다. 인구가 적으니까 영화 만드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웃음) - <여행자와 마법사>를 만든 부탄의 고승 키엔체 노부르, 부탄에 영화인력이 적은 이유에 대해
“제가 폐가 많았습니다. 이런 패가망신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 박중훈(개막식 사회자), 개막식 진행 도중 개막작인 <도플갱어>를 폐막작으로 소개한 것에 대해
“출연료를 두 사람 몫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제작자는 한 사람 몫만 주더라.” - 야쿠쇼 고지(<도플갱어> 주연), 개막작 기자회견 도중 <도플갱어>에서 하야사키 역할과 그의 분신 역할을 동시에 맡은 느낌을 묻는 질문에 대해
“액션영화이다 보니 여자를 어디에 집어넣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 프라차야 핀카엡(<옹박> 감독), <옹박>에는 왜 멜로 코드가 없냐는 질문에 대해
“카메라는 눈이고, 그 눈은 곧 마음으로부터 온다.” -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 영화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나는 원시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 캐나다 감독 가이 매딘, 꿈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든다고 설명하면서
“내 나이는 48살이다. 일본에서는 젊은 축에 속하지만, 한국에 오면 나이 많은 감독일 것 같다.”-일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한국의 영화인들이 젊은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사실 내가 그 극중인물이라면 이강생 같은 남자와는 안 사귄다.” - <로빈슨 표류기>로 한국 찾은 양귀매, <로빈슨 표류기>의 쳰셍치가 <구멍>의 이강생보다 더 잘생겼지 않냐는 질문에 한사코 농담이라고 발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