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8] - 아주 특별한 신인감독 ①
2003-10-1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조석환
아주 특별한 신인감독 4인을 만나다

내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연다

하나 마흐말바프, 이강생, 세디그 바르막, 마니쉬 자, 이제 영화감독의 길을 향해 걸음마를 시작한 이들은 뭔가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는 아시아의 신인감독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의 영향을 받아 다큐멘터리를 만든 14살 소녀감독, 11년 동안 배우생활을 한 뒤 모니터 앞으로 자리를 옮겨앉은 감독, 아프가니스탄의 척박한 터전을 헤치고 23년 만에 데뷔작을 만든 감독, 첫 단편으로 칸영화제에서, 첫 장편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감독까지, 아주 특별한 이들을 만나보자.

카메라에도 ‘인격’이 있습니다

14살 소녀 감독 <광기의 즐거움>의 하나 마흐말바프

소녀가 영화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는 8살이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중편 다큐멘터리 <광기의 즐거움>을 만들었던 때는 13살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예술과 상업이라는 구분과 상관없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지금 14살이다. 나이를 들먹이는 이유는 단지 어린 감독이라는 흥미위주의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끄집어내야만 이 신인감독의 육체의 나이와 성찰의 나이 사이에 있는 너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하나 마흐말바프는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막내딸이다.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그녀에게 바로 그 생각하는 방법을 선사해주었다.

-하나라는 이름에 특별한 뜻이 있는가.

=원래 이름은 ‘쿼테레’이다. 이란어로는 꿈, 기억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라는 이름은 식물의 이름이기도 하고, 이란에서 인기있었던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그래서 하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지금은 다들 하나라고 부른다.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에게서 무엇을 배웠나.

=아버지는 문제에 봉착했을때 방관하지 말고 일단 그 문제를 해결한 뒤에 논하라고 가르쳐주셨다. 가장 중요한 건 항상 이 세상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이라고 가르쳐주셨다는 점이다.

-원래의 꿈은 화가였다. 왜 영화감독을 하기로 결정했나.

=지금보다 더 어렸을때 우리 집에 온 손님들과 아버지는 내가 그린 그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림에 굉장히 많은 재능을 갖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림 그리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기 위해 칭찬을 해준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사실 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붓과 캔버스하고만 같이 있어야 하는 화가는 나에게 맞지 않았다.

하나 마흐말바프는 마흐말바프 학교를 다녔고, 언니 사미라의 영화 <사과>에서 스크립터를 하는 등 현장을 쫓아다니며 경험을 쌓았다(마흐말바프 영화학교는 영화를 배울 뿐만 아니라 시와 문학을 같이 배운다. 부산을 찾은 하나는 이란어, 영어, 프랑스어로 직접 쓴 시집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미라가 <오후 5시>를 만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간다고 했을 때, 하나는 동행을 부탁했고 캐스팅 과정을 담는 메이킹필름을 찍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광기의 즐거움>이다. 시작은 부속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오후 5시>와 별개의 시각으로 그곳 아프가니스탄을 보려는 노력을 한다. 영화 속에서 사미라는 “하나 이건 찍지마”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는 끝내 카메라를 끄지 않았다. 선택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아버지 모흐센에게서 배운 세상과의 관계를 토대로 하나 마흐말바프는 카메라가 ‘인격’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찍으며 납치당할 뻔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장정 한명이 덮치더니 끌고 가려고 했다. 다행히 같이 있던 친척이 소리를 질러 도망갔다. 그런데 5분 뒤에 다시 한번 다가와 끌고 가려 했었다.

-왜 제목을 <광기의 즐거움>이라고 붙였는가.

=음향담당과 대화 도중 그가 말한 제목이다. 영화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 영화에 미치광이 한 사람이 나오는데 내게는 그 사람이 자신만의 참행복을 찾으며 세상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는 삶을 사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냉정하게 말해 <광기의 즐거움>은 위대한 데뷔작이 아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14살에 영화를 만드는 소년소녀들은 세계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또 기술적으로 이 작품을 앞서는 영화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에게 영화는 인간을 다루는 예술이다. 이 작은 소녀는 진지하게 영화로 세상을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20살이 되고, 30살이 된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은 과연 무슨 영화를 만들까. 하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기대를 하게 만든다. 세상을 고민하는 14살짜리 영화감독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희망인가.

“나만의 경험을 내 방식대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불견>으로 뉴커런츠상 수상, 화려한 감독 신고식 치른 이강생

<청소년 나타>부터 <거기 지금 몇시니?>까지 언제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차이밍량과 나란히 부산을 찾았던 이강생. 그러나 올해 그의 옆에 차이밍량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올해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감독 데뷔작 <불견>이 든든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여 이제 이 배우의 동그란 코선과 아이같이 말간 얼굴, 강아지 같은 눈망울에 대한 기술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차이밍량이 언젠가 말했듯이 “차갑고 무심한, 현대인의 냉소가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감독’ 이강생에게서는 이제 무언가 적극적이고도 뜨거운 기운이 돌고 있었다.

-어떻게 감독을 생각하게 되었나. 그리고 오랜 친구인 차이밍량은 당신의 작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나.

=지난 10여년 동안 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영화에 출연해 다른 이들의 경험을 표현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만의 경험, 생각들,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차이밍량 밑에서 꾸준히 조연출 공부를 했고, 시나리오부터 많은 의논을 했다. 그는 시간이 있을 때면 촬영지에 들러 충고도 하고 격려도 해주었다. 음향기술, 촬영, 조명감독들이 데뷔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귀를 기울여준 것도 그의 덕이 크다.

공원에서 손자를 잃어버린 할머니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소년의 이야기, <불견>은 본래 차이밍량과 이강생이 옴니버스형식으로 하나의 장편을 찍자는 프로젝트에서 나왔다. 그러나 <안녕, 용문객잔>을 찍은 차이밍량은 그것을 온전한 한편의 장편으로 만들길 원했고 이강생 역시 “보충촬영을 통해” 또 다른 장편을 완성시켰다. 결국 두편의 장편영화로 세상에 나온 <불견>과 <안녕, 용문객잔>은 “사라짐의 슬픔”을 담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영화다. <불견>이 실종된 사람들을 통해 인간관계의 소원함을 그렸다면, <안녕, 용문객잔>은 과거 번화했던 한 극장이 몰락하고 사라져가는 것을 담고 있다.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늘 이강생의 아버지로 등장했던 미아오 티엔은 <불견>에서 실종된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유유자적 걸어간다. 아마 그의 발걸음은 <안녕, 용문객잔>의 낡은 극장으로 향한 것이 아닐까?

-‘잃어버린’ 사람들은 둥근 공원 안에서 울고 있고, ‘사라진’ 사람들은 여유롭게 공원 밖을 걷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납골당에서 끝난다. 하지만 헌팅 중에 이 신축공원을 찾게 되었고 이 공원의 형상이 소원해지는 인간관계를 그리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이어지는 둥근 공원을 위에서 보면 마치 열쇠 같은 형상이다. 열쇠 속 사람들과 열쇠 밖 사람들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향하는 문을 쉽게 열 수도 없다. 그게 현실 같다.

“영화를 찍는 내내 어릴 적 내 습을 보는 것 같았다”는 오락실 소년의 뒷모습엔 불법오락실 앞에서 무전기를 들고 망을 보다 차이밍량과 처음 조우했던 어린 이강생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또한 <불견> 속 두 가지 이야기엔 이강생 감독의 가족사가 숨어 있다. “병석에 누워서 외롭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할아버지와 소년의 설정을 생각해냈고 실수로 어린 조카를 다치게 한 어머니가 “아이가 이렇게 되었으니 니네 형이 나에게 뭐라고 할 거다”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며 손자를 잃어버린 할머니의 이야기를 착안하게 되었다.

<불견>엔 유난히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구멍>의 세기말 유행병처럼 <불견>에서의 사스 역시 위협적인 느낌이다. 사스 때문에 대만의 모든 병원들이 격리수용소로 변했고 사람들은 감히 공공장소에 나가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들을 보며 죽어가는, 사라져가는 것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제목, ‘불견’(不見) 역시 이런 배경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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