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4]- PPP에서 만난 한국 감독 ①
2003-10-17
글 : 문석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조석환
PPP에서 만났다,한국 감독 5인의 차기 프로젝트

찾았노라 보앗노라, 한국영화의 힘

올해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프로젝트가 어느 해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감독들의 우수한 프로젝트가 15편 이상 접수되었다. 선정에 어느 해보다 힘들었다”는 정태성 PPP 수석운영위원이 말은 총 18편의 프로젝트 중 선정된 5편의 한국프로젝트의 면면만 보더라도 과장이 아님을 알수 있다. 여기 미국으로 건너간 지 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명세 감독을 비롯, 허진호, 정재은, 김인식, 전수일 감독이 선보이는 신작 프로젝트와의 짧은 만남을 주선한다.

전쟁의 상흔, 생이별의 절규

이명세 감독의 <크로싱>

오랜만에 고국의 영화인들과 만난 이명세 감독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2000년 4월에 미국에 건너가 3년 넘게 이국 땅에서 영화준비를 했던 그에게 낯익은 얼굴과 정감어린 언어가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수많은 영화인들이 오랜만에 만난 이명세 감독에게 악수를 청했고 근황을 물었다.

이명세 감독이 준비 중인 영화 <크로싱>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혜리의 책 <태양이 없는 곳>을 각색하는 영화다. <웨이트 오브 워터> <조이럭 클럽> <태양의 제국> 등에 관여했던 프로듀서 재닛 양이 이명세 감독에게 연출을 의뢰한 작품.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너무 심각한 이야기라 거절했던 작품인데 고친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흥미가 생겼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를 단적으로 정의하면 ‘비극’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생이별을 하는, 어쩔 수 없는 비극, 그것을 그려보고 싶다.” 언제나 그림처럼 예쁜 세트에서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줬던 이명세 감독과 얼핏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는 <크로싱>의 핵심에 ‘가족’이 들어 있음을 강조한다. 전쟁으로 헤어져야 했던 가족, 그들이 온갖 역경을 딛고 다시 만나는 과정이라면 이명세 감독이 오래전에 준비했던 영화 <가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클 것으로 보인다.

PPP에 소개한 작품은 아니지만 <크로싱> 외에 이명세 감독은 <디비전>(Division)이라는 액션영화도 준비 중이다. 첩보원이 등장하는 버디영화라고 소개한 이 작품은 현재 메이저 스튜디오와 투자계약을 추진 중이라고. “그간 미국에서 영화를 준비하면서 내가 뭐하고 있나 싶어서 밤잠을 설친 적도 많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다음 영화에 대해 확정된 것도 없고,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하지만 한국영화가 시장을 개척하자면 내가 미국에서 이런 고생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내년까지는 미국에서 작업을 할 생각이다. 한국영화가 지금은 잘되지만 언제 시장상황이 나빠질지 모른다. 지금처럼 잘될 때 시장을 넓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한국에서 작업하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는 굳은 의지와 자신감이 들어 있었다.

이런 영화? 미국에서 나고자란 주인공 혜리는 북한에 살고 있는 아들을 탈출시켜주겠노라 할머니와 약속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북한의 국경지대까지 찾아간 혜리는 외삼촌과 그의 가족을 북한에서 빼내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쓴다.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는 서울에서 아들과 재회한다.

입양녀와 한국인 신부의 러브스토리

전수일 감독 <어느 한국사제의 이야기>(가제)

신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부산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전수일 감독은 조금 피곤해 보인다. <나는 나를…>의 국내, 해외 배급선을 찾는, 쉽지 않은 일을 하는 동시에 다음 프로젝트 <어느 한국사제의 이야기>(가제)까지 준비하고 있기 때문. 그가 PPP에 내놓은 이 영화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입양녀와 한국인 신부 사이의 금기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 “서로 다른 기억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려 한다. 어느 정도는 시적인 느낌을 담고 싶다.”

이 이야기는 그의 경험에 기반한다. 15년 전 프랑스로 유학길에 오를 때, 그는 용돈을 벌기 위해 쌍둥이 아이 둘을 한국에서 프랑스로 데려가는 일을 한 적이 있다. “21시간을 날아 파리 공항에 도착해 아이들을 양부모에게 넘기려 하는데, 아이들이 내 팔을 붙잡고 그쪽으로 가지 않으려 했다. 그 시린 감정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 사제라는 모티브도 실제 그의 친구에게서 끌어낸 것이다. 유학 시절, 가톨릭 신부로 프랑스의 시골에서 6년 동안 보냈던 친구와 가끔 만났던 전수일 감독은 두 가지 경험을 묶어서 하나의 영화를 구상했다.

<어느 한국사제의…>는 금기시된 사랑 이야기이자,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 2개월가량 머물 때 꽤 많은 입양아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은 내 상상을 넘어섰다.” 스스로는 프랑스인이고자 하나 100% 동화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20대 후반이 되면 입양아들은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신부 또한 세속적인 사랑을 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지만, 구체적인 인간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되면 정체성의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그는 이 영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프랑스에서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에서 그의 영화가 관심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충무로의 주류에서 그를 외면하는 탓이 더 크다. 하지만 내년 칸영화제의 프리마켓에 이미 초청받았고,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마트에도 진출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제작비 조달이 아주 어렵지만은 않을 듯하다. 내년 10월 크랭크인 예정.

이런 영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시골 성당에 부임한 한국인 사제 김은 4살 때 한국에서 입양된 사라를 만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라와 만나는 동안 김은 연민과 함께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사라의 여성적인 매력에 사로잡힌 김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사라 또한 김과 만나게 된 뒤 정체성의 혼란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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