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편, 거리를 지켜라
부산국제영화제 허문영 프로그래머가 본 디지털영화의 새로운 도전“그들은 거리로 나가 촬영기를 민첩하게 이용했다… 그들은 극영화를 르포르타주에 접근시켰으며 따라서 살아 있는 역사에 다가갔다.”(파스칼 보니체)
위 인용문의 ‘그들’은 1960년대의 프랑스 누벨바그를 지칭한다. 여기서 ‘그들’을 오늘의 디지털 세대로 바꿔도 이 문장은 유효할까? 디지털 세대가 과연 살아 있는 역사에 다가갔는지, 혹은 그들이 새로운 영화 형식을 발명했는지를 단언할 수 없다면, 결론은 유보적이거나 아직은 부정적이겠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그 치환은 그럴듯해 보인다.
한 가지는 영화 사조의 변화 혹은 신조류의 생성이 촬영 기자재와 인과관계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거리를 질주하는 쥘과 짐의 생동하는 육체성을 필름에 새겨넣었던 것도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의한 카메라의 경량화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오늘의 예비감독들에겐 트뤼포의 카메라보다 훨씬 싸고 가벼워진 디지털카메라가 주어져 있다.
두 번째는 그 변화가 영화 텍스트의 질적인 면에 영향을 끼치며, 전통적 드라마보다 르포르타주 혹은 다큐멘터리에 접근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디지털카메라를 든 2000년대의 젊은 감독들에게 시스템이나 드라마의 계율보다는 자신의 삶, 혹은 주변인물들의 실제 생활이 좀더 가깝다. 그들의 영화가 소설보다 에세이를 닮아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누벨바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은 “카메라는 현대의 만년필이다. 데카르트가 살아 있었더라면 카메라로 <방법론 서설>을 썼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2000년대에는 디지털만한 ‘현대의 만년필’의 적절한 지시어를 찾기 힘들 것이다.
디지털은 이제 주류영화계에서도 낯익은 존재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편의 한국 디지털 장편이 소개됐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선정 작업은 힘들었다. 후보에 오른 디지털 장편 10여편의 수준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선정자가 달랐으면 전혀 다른 상영작 목록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렵사리 3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는 디지털 장편이라는 범주에 대한 오해다. 올해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디지털 장편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에는 독립영화계의 디지털 장편에 대한 배려라는 정책적 요소가 작용했다. 바꿔 말하면 디지털 장편은 아직 정책적 배려 없이는 필름영화와 같은 수준에 두고 말하기 힘들다는 암묵적인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편의 상영작은 촬영 소스를 고려하지 않아도 능히 뽑힐 만한 작품들이다. 디지털 장편이라는 범주가 미학적 자질을 말할 때 얼마나 유의미한 것일까.
<시실리 2km>는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됐다. 물론 키네코 과정을 거쳐서 필름으로 상영되긴 했지만, 이 영화의 촬영 재료가 필름이 아니란 사실은 별로 큰 화제가 되지 않았다. <나비> <눈물> <욕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봉 중인 <콜래트럴>의 80%도 디지털로 촬영됐다. 대부분 독립영화인들이 사용하는 6mm 디지털보다는 훨씬 비싼 HD 카메라긴 하지만 촬영 도구로서의 디지털은 이제 주류영화계에서도 낯익은 존재가 된 것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의 일부가 디지털로 촬영됐다는 사실이 주목받은 건 막강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조지 루카스의 명성과 함께 그것이 제작-배급-상영 라인이 디지털로 통합되는 시대의 예고탄일지 모른다는 기술적 산업적 관점으로부터 비롯됐다. 인터넷 및 모바일 비즈니스와 연계된 유명 감독들의 디지털 단편이 뉴스거리가 되는 현상 역시 해당 영화의 자질과는 무관하다. 필름과 디지털의 질적인 차이로 지적돼온 화면의 심도나 해상도 역시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해소되거나 역전될 사안이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