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헤치고 다시 묶을 수 있다
“청춘이라는 말이 일단 너무 좋고요….” 노동석(33) 감독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다. 지난 2002년 말, 자신의 영화아카데미 졸업 시즌에 버티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과 주변 친구들의 어려운 상황에 착안하여 청춘에 대한 한편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그는 마음먹었다. 인터넷에서 보고 마음에 든 시에서 <마이 제너레이션>이란 제목을 가져오고, “마티즈 한대에 다 타고 다닐 수 있을 만한 규모와 인원”으로 움직이고, 아주 가끔이지만 “촬영기사와 감독, 그리고 배우들만 남아서 감독이 붐대를 들고 연출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주말마다 모여 찍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싹터” 좋은 기분으로 만들었다는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은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감독을 꿈꾸는 병석과 번번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이용당하는 여자친구 재경의 멈춰버린 듯한 젊은 날을 그려낸다. 끝내는 카메라를 팔 수밖에 없던 병석, 카드깡을 해서라도 급전이 필요했던 재경, 두 사람의 희미한 대화를 들려주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쉽게 희망에 삶을 걸지 않고, 청춘에 빛을 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배우의 기운과 그들의 삶의 리듬이 영화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흔치 않은 예를 선보인다. 이 영화는 바로 경험의 채집이며,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 점에서 디지털의 기여도는 높은 편이다. “영화 오프닝의 컬러장면들은 직접 배우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찍고 싶은 걸 찍어 오라고 해서 두 시간 정도 촬영해온 장면을 내가 편집해서 쓴 것이다. 만약 필름이었다면 그런 장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순간을 기록하는 데에는 디지털이 확실히 유리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노동석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를 디지털로 제작하게 된 계기는.
=박기용 감독님의 <낙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모텔 선인장> 같은 큰 예산의 영화를 찍던 분이 적은 예산으로 무명의 배우들과 아주 극소수의 스탭을 데리고 찍었는데 정말 좋았다. 충무로에서 활동하던 분도 저런 영화를 찍어내는데, 나는 아직 젊으니까 얼마든지 새로운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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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완전한 성인이 되지 않은, 아직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대, 통과의례의 문턱에 있는 그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세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긴 했지만 아주 강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다큐적이라고 생각하고 찍은 건 아니다. 가령, 현실감과 조금 거리를 두기 위해서 흑백을 사용했다.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가.
=스스로가 현장에서 제일 즐거워한다. 영화는 거의 현장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후는 그곳에서 만들어진 것을 지켜내는 정도다.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콘티는 없었고, 남자배우는 시나리오를 아예 안 보고, 그주마다 와서 나한테 이야기 듣고 연기하는 정도였다. 그것 자체가 사람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줬다. 물론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철저히 준비한다. 가급적 기승전결 구조로 써낸다. 하지만, 영화를 찍을 때는 그 느낌을 항상 유지하면서도 되도록 시나리오를 가급적 보지 않고 분해하여 새롭게 구성하려고 한다. 디지털이어서 돌발적이고 즉흥적인 것을 담기에는 좀더 편했다.
-디지털로 촬영해서 얻은 이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디지털로 찍겠다고 결정하고 시나리오를 썼던 거다. 필름으로 찍었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됐을 거고, 또 다른 방식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필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카메라의 무게감을 안 느끼도록 편하게 찍을 수 있었고, 또 마음대로 헤치고 다시 묶을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영화 마지막 컷의 경우에는 찍고 나니 화면의 입자 한쪽이 깨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을 다시 찍는다는 건 쉽지가 않다. 고민하다가 편집실에 갖고 왔는데 화면을 재프레이밍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클로즈업이 된 건데 보고 나니까 더 좋아 보였다. 필름 작업이었다면 그런 건 불가능했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