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7] 대안2-상상과 표현의 신천지 : 윤영호
2004-11-1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정진환
<바이칼>의 윤영호 감독

경험 자체를 많이 줄 수 있는 매체다

윤영호(34) 감독의 <바이칼>은 도시에 관한 묵시록적 예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시베리아에 있는 바이칼 호수에 관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떠올린 것이다. 그의 말대로 “시원”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자극받은 구상은 “사막이 항상 끝이고, 거기에 다시 땅이 만들어지고, 강이 들어서고, 숲이 형성된다는 자연의 순환 고리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고, “땅으로서 생명을 다한 것이 도시라고 할 때, 그것을 사막과 연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영화의 두 공간이 결정되었다. 서울 한복판의 정경과 단편을 찍으며 눈여겨봐뒀던 화성쪽 간척지에서 촬영한 사막장면이 교차한다. 주인공 라반과 석치는 황량한 사막을 헤매고 다닌다. 그들은 이 사막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길은 없다. 도시가 무너지고 사막이 들어섰는지, 도시를 사막처럼 느끼는 이들의 감정적인 공간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바이칼>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이고 희망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바이칼>은 윤영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20일간 13회 촬영으로 전력질주할 만큼 어렵게 찍은 영화이다. 그런 장편이 극장에서 관객에게 제대로 보여지길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난 주말 강변CGV에서의 상영은 당혹스러웠다. “영사기 기종과 궁합이 안 맞았는지, 아니면 영사실과 스크린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였는지, 어두운 부분에서는 힘을 발휘 못해서 인물들의 얼굴톤이 상당수 암부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들도 그렇게 키네코를 하려 하나보다”고 씁쓸해한다. 하지만 일면으론 사운드의 효용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은 그에게 현재 디지털은 보완이 필요한 최선책이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작품 안 찍을 때는 구상하면서 집에만 있는데, 그러다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됐다. 새벽에 갑자기 앞이 깜깜해지고, 속이 메스꺼우면서 쓰러질 뻔한 적이 있었다. 자는 친구를 깨워 병원에까지 가서 정밀진단을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가 나중에 상담하면서 말해주기를 일종의 공황장애라고 하더라. 그러고보니 그전에도 복잡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가다 답답해서 내리곤 했다. 그런 걸 경험하면서 나도 몰랐던 도시의 답답함을 생각하게 됐고, 도시라는 공간 자체를 새롭게 보게 됐다. 영화 속에서 모래가 흘러내리는 장면은 내가 자주 꾸던 악몽 중 하나였다. 그런 경험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됐다. 나보다 더 절박하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이 도시가 더 낯설고 생소하고 힘들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디지털 작업에 대한 아쉬움 또는 만족은.

=미학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일단 디지털은 경제적이다. 후반작업에서도 상당히 유리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 점을 제일 먼저 생각했다. 단순히 돈이 적게 든다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서는 작품 내용에만 신경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표현이 양식적이다.

=다른 단편들도 그래왔지만, 내 의지대로 공간과 시간을 뒤틀어볼 수 있다는 것이 영화를 할 때 내가 가장 흥미를 갖는 지점이다.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헌팅도 많이 하고.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한다. 이 영화도 그런 점에서 서울이라는 낯익은 공간을 낯설게 보여주고 싶었다.

-전반적으로 디지털 장편영화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무엇이라도 일단 해볼 수 있다는 것. 창작자의 생각을 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거다. 영화라는 것이 한순간에 뭘 해내는 게 아니고, 자꾸만 해보면서 자기 표현력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디지털은 필름보다 조금 더 부담없이 그런 과정을 겪을 수 있고, 한 작품씩 찍으면서 자기 색깔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 좋다. 경험 자체를 많이 줄 수 있는 매체가 디지털인 것 같다. 그건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