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빌 돌(Devil Doll)이 누구야? 영화 <삼거리극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정보를 모은 사람이라면 분명 이런 질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전계수 감독은 <삼거리극장>의 시나리오를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의 아트록밴드 ‘데빌 돌’의 음악을 들으면서 썼고, 김동기 음악감독에게 시나리오를 건네줄 때 “데빌 돌이 컨셉”이라고 했다. “경외의 대상일 뿐 감히 모방도 할 수 없다”고 여겼던 존재의 이름을 대학 선배이자 감독에게서 듣는 순간, 김동기 음악감독은 ‘데빌 돌 흉내냈네’라는 말만 들어도 성공일 거란 생각으로 작업에 뛰어들었다. 저예산 기획영화라는 압박 때문에 결국 <삼거리극장>의 전체 음악은 애초 두 사람이 의도했던 록뮤지컬 스타일은 되지 못했지만 한국영화로서는 요즘 관객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운드트랙 감상 기회를 주는 건 확실하다. 경쾌한 인디록 넘버, 고란 브레고비치 곡들을 염두에 두고 쓴 집시음악풍의 넘버 그리고 전계수 감독과 김동기 음악감독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만든, 바로 ‘데빌 돌’ 스타일의 넘버 등이 상황에 따라 독특하고 다채롭게 펼쳐진다.
KBS로부터 스튜디오를 협찬받아 녹음하면서 완성된 <삼거리극장>의 음악은 총 9억원의 제작예산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성의와 퀄리티에서도 큰 아쉬움이 없다. “<지하철 1호선>으로 록뮤지컬에 입문했다고도 할 수 있”는 김동기 음악감독은 사실 뮤지컬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헤비메탈을 즐겨 들으면서 어렴풋이 기타리스트를 꿈꾸었고 대학 시절 노래패 활동을 하면서 자작곡을 발표했던 경험들이 있다. “라면 피킹이라는 말처럼 가난하지만 예술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 것 같다.” 군 제대 뒤 직장을 다니다가 동국대 컴퓨터음악대학원 진학 결심을 굳힌 건 펫 숍 보이스의 닐 테넌트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문. “잘나가는 잡지기자였는데 때려우치고 나와서 싱글 냈을 때가 33살이었다. 저 나이가 되기 전엔 나도 뭔가 해야겠다 싶었다. (웃음)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는, 음악을 포기해야 맞는데, 저렇게라도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때 마침 서른세살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발레교습소>와 <썸>의 간단한 작업을 거쳐 <삼거리극장>의 여러 새로운 시도로 음악감독에 데뷔한 그는 대니 엘프먼을 존경한다고 덧붙인다. “<유령수업> O.S.T를 듣다가 완전히 반했다. 자기가 연주하고 노래도 하고. 그 사람처럼 할 수만 있으면 뭐, 생큐다. 혹시라도 내가 기타의 신에게 뭘 받아서 달라진다면 모를까. (웃음)”
음악감독 조영욱이 본 김동기
이 친구가 원래 보컬곡을 잘 쓰는 친구다. 그런 장점이 이번 영화와 잘 부합된 것 같고,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는데 그걸 본인이 얼마나 잘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과 재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삼거리극장> 삽입곡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곡은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온 밝은 왈츠곡이다. 원래 <올드보이> 때 함께 작업하려고 했던 친구다. 그때 ‘오케스트레이션 편곡할 줄 아냐’고 물었더니 ‘못한다’고 해서 같이 못했지만, 이번에 작업한 걸 보니 앞으로 뭐든 잘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는 후배다. 뭐든 열심히 하는 후배라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