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사이에서>의 이창재 감독
2006-12-14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다큐멘터리 흥행기록을 다시 쓰다

인터뷰 전날 이창재 감독은 새벽까지 쫑파티를 했다. <사이에서>의 상영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신이 그려준 운명이 있다”고 믿는 이들을 따르는 무속다큐멘터리 <사이에서>는 지난 9월7일 서울과 부산의 5개관에서 개봉한 뒤 한달여 동안 대전, 대구 등지를 돌며 약 2만8천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이전까지 가장 많은 관객과 만난 <송환>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쫑파티 분위기, 시종 화기애애하지 않았을까. “원래 내가 좀 감이 없다. 어제 술자리에서 너무 관객이 적게 들었다고 했더니 스탭들이 오버한다고 그러더라. (웃음)” 그를 흐뭇하게 한 건 수치나 타이틀이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관객과의 만남이다. “한 아주머니가 메일을 보냈다. 자신은 무당이 되려는 것도 아니고 그런 쪽에 관심도 없지만 보고 난 뒤 가슴속 뭔가가 해소되는 걸 느꼈다고 하는데, 찌릿찌릿한 소통의 느낌을 여러 번 체험했다.” 인디영화를 챙겨 보는 마니아들의 성원도 고맙지만, 난생처음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던 일반 관객의 수군거림을 잊을 수가 없단다. CGV와 영화진흥위원회의 도움으로 개봉을 하긴 했으나 작은 영화의 현실적 숙명 때문에 마케팅이나 상영을 “넓게 가져갈 수 없어서”, “보고 싶은 사람이 손쉽게 볼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지 못한 게 돌아보면 가장 아쉽다. 누군가는 <사이에서>의 주인공 이혜경 선생의 반응이 궁금할 것이다. “개봉한 뒤로 내림굿 받으러 온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근데 어중이떠중이라고 하더라고. 개중 신병(神病) 때문에 고생하는 이는 한명뿐이라면서. 돈은 안 되고 힘만 든다고 푸념하시더라니까. (웃음)”

“졸리면 잤고 굿하면 구경갔다”는 말로 행복했던 촬영과정을 회고하는 그는 요즘 들어서 더 빈번하게 ‘다큐멘터리 전도’에 나서고 있다. 3년째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교수로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 “머리를 쥐어짜지 말고” 다리품을 팔라고 강조한다. “다큐멘터리는 삶에 집중하게 만든다. 집중하다보면 캐릭터든 이야기든 저절로 나온다”고 말이다. 스스로 겪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겨울방학이 되면 그는 본격적으로 극영화 연출 준비에 나선다. “누구나 흉내내면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잃어간다”는 내용을 담을 이 영화의 인물, 공간, 사건들은 <사이에서>를 비롯해 이전에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취재 때 캐낸 것들이라고. “제목은 일단 ‘천일야화’라고 붙였는데 제작사에서 머리를 흔들더라. 약하다고. 그래서 <아라비안 나이트>는 어떠냐고 했더니 아예 대답을 않더라.” 이제는 안 풀린다고 잠수 타지도 못하는, 규율에 매인 몸이라고 하소연하는 그는 사실 걱정이 하나 더 있다. 올해 1월에 결혼한 그는 조만간 아빠가 될 예정이지만, 앞으로도 가정에 시간을 쏟진 못할 터라 “마누라의 타박이 두렵다”. 늦게 도전장을 던졌으나 오래 남겠다는 신실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캐릭터가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그의 천일야화를 누구나 기대하고 상상할 것이다.

임유철 감독이 본 이창재

“학교에서 교수와 대학원생으로 만났다. <비상> 만들 때는 이런저런 상담도 해주셨고. 다큐를 직업으로 치면 사람 만나는 일이다. 찍는 것보다 신뢰를 구축하는 게 더 어렵다. <사이에서>는 그걸 해낸다. 나도 전에 무속인을 찍은 적이 있는데 동등한 입장에서 뭔가를 나누기가 불가능했다. <사이에서>는 그림의 힘이 갖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드문 다큐다. 말이 필요없는 프롤로그를 비롯해서 의도적 연출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다큐멘터리에 극영화의 앵글과 컷을 쓰는 건 신선한 시도다. 사실을 훼손하지 않고 카메라를 미리 예상하고 움직이는 건 내공없인 힘들다. 알고 찍는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과감한 접근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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