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
<판타스틱4: 실버서퍼의 위협>은 시대착오적이거나 혹은 시대를 앞서가는 슈퍼히어로물이다. 판타스틱 4인방은 다른 현대 히어로들처럼 슈퍼파워의 힘에 대해 고뇌하지도 않고(시대착오적이다!), 심지어 파파라치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신명나게 악에 맞서 싸운다(시대를 앞서간다!). 그런고로 플롯은 허허실실이고 갈등구조도 맥없이 풀리지만 대륙을 넘나들며 뛰고 나는 판타스틱 4인방의 단순 명쾌한 액션은 호탕하기 그지없다. PG-13 등급 히어로 영화란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24. <콘스탄틴>
최고의 캠페인: 폐암 걸린 히어로 콘스탄틴은 새로운 생명을 받고는 담배를 끊는다. 금연운동본부는 지루한 캠페인용 영화 그만 만들고 <콘스탄틴>을 장기상영하시라.
개봉시에는 별로였다 다시 보니 생각보다 근사한 영화들이 종종 있다. DC 코믹스 <헬블레이저>를 원작으로 한 <콘스탄틴>도 그중 하나다. 주인공 콘스탄틴은 담배를 끊임없이 피우는 퇴마사로 쌍둥이 자매의 자살을 파헤치는 형사 안젤라와 손잡고 신과 악마의 노름판에 뛰어든다. MTV 출신 프랜시스 로렌스의 연출은 꽤 유려하고 특수효과도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배우들이다. 형사 안젤라를 연기하는 레이첼 바이스, 천사와 악마를 연기하는 틸다 스윈튼과 피터 스토메어, 전직 퇴마사로 등장하는 자이몬 혼수. 문제는 언제나처럼 ‘키아누 리브스적’인 키아누 리브스다. 요즘은 그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인 것도 같긴 하다.
23. <엑스맨: 최후의 전쟁>
브라이언 싱어가 저지른 최대의 과오는 <수퍼맨 리턴즈>를 감독하기 위해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감독직을 포기한 것이다. 물론 부담감으로 몸서리치며 연출직을 수락한 브렛 레트너는 싱어의 유산을 계승해보겠다고 안간힘을 다한다. 테러와의 전쟁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함의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 그러나 브렛 레트너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브라이언 싱어가 아니다. 그는 ‘엑스맨’들의 전쟁을 오로지 선과 악의 진영으로 무 자르듯 구분한 뒤 캐릭터들을 마구 내팽개친다. 영화가 사이클롭스와 미스틱을 내버리는 방식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뻔한 관객도 있을게다. 금문교가 뒤틀리는 스펙터클에만 만족한다면 그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가 브라이언 싱어의 전작들보다 더 좋다면? 지금 이 리스트를 불태우고 정기구독을 끊으시라.
22. <데어데블>
<데어데블>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편이다. 한 가지는 지적하고 넘어가자. 방사능 폐기물에 노출되어 실명한 슈퍼히어로를 다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효과다. <데어데블>의 제작진은 소리를 시각화해서 악당과 싸우는 데어데블의 P.O.V를 마술처럼 스크린에 옮겨낸 공로를 치하받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 좋은 캐릭터를 가지고 속편을 만들지 않는 제작사의 조심스러움. “다시는 슈퍼히어로 영화 찍지 않겠다”는 벤 애플렉의 선언 때문인 듯한데 그가 ‘데어데블’이라는 캐릭터에 더해준 매력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 빨간색 타이츠로 몸과 얼굴을 가리는 히어로니 냉큼 다른 배우를 찾아보라.
21. <쉐도우>
<쉐도우>가 만들어진 90년대 초에는 30~40년대 고전 코믹스를 클래식한 분위기를 살려 영화화하는 게 일종의 붐이었다. 워런 비티의 <딕 트레이시>와 디즈니의 <인간 로켓티어> 같은 영화들이 그 시절의 산물이다. <쉐도우>는 1930년대에 라디오 드라마와 코믹스로 만들어져 인기를 모았던 고전 히어로물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티베트의 미국인 마약왕 잉코는 성자 덜코에게 납치당해 개화교육을 받은 뒤 그림자로 사람을 홀리는 히어로 ‘쉐도우’로 거듭난다.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악에 대항하는 밤의 히어로로 활동하던 중 몽골 제국의 부활을 원하는 악당 시안킹과 대결을 펼치게 된다. <쉐도우>는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였던 알렉 볼드윈의 인기를 업고도 흥행과 비평적으로 참담한 실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하이랜더>의 비주얼리스트 러셀 멀케이는 극도로 양식화된 프로덕션디자인과 특수효과를 매혹적으로 스크린에 버무려낸다. 재평가의 여지가 남아 있는 묘한 히어로물.
20. <헬보이>
기예르모 델 토로가 <해리포터>의 감독직 제의를 물리치고 <헬보이>를 선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이크 미뇰라가 다크호스라는 마이너 레이블에서 펴낸 동명 코믹스 원작은 딱 델 토로의 세계다. 지옥으로부터 태어난 악마의 자식이지만 스스로 뿔을 잘라내고 선의 일원으로 일하는 슈퍼히어로, 그리고 나치와 라스푸친 같은 음험한 악마들이 들끓는 지하의 암흑 세계. 딱 <미믹>과 <악마의 등뼈> <블레이드2>의 코믹스 버전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영화는 (여전히 훌륭하긴 하지만) 델 토로의 가장 매끈하고 번드르르한 메이저 기성품에 가깝다. 델 토로도 이젠 거물이 됐고 전편도 성공했으니 <헬보이2: 골든 아미>는 좀더 ‘델 토로적’인 영화가 될 게 틀림없다.
19. <아이언맨>
<아이언맨>의 진짜 미덕은 유머감각이다. 절반은 훌륭한 코미디언이기도 한 감독 존 파브로의 덕이고 나머지 절반은 구사하는 유머마다 과녁을 정확하게 맞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공로다. 존 파브로의 <아이언맨>이 <배트맨>과 <스파이더 맨>의 반열에 오르는 일은 결코 없을 테지만 이 리스트에서 ‘가장 유쾌한 히어로영화’라는 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나저나 <아이언맨>이 국내외 비즈니스맨들에게 전해준 두 가지 교훈. 첫째, 마블이 직접 만드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시대가 개막했다. 둘째, 한국 시장에서도 ‘마이너한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
18. <스파이더맨 3>
<스파이더맨 3>는 시리즈 중 가장 난삽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베놈과 샌드맨과 뉴고블린이 동시에 스파이더 맨을 쫓고, 피터 파커는 자아도취에 빠진 스파이더 맨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그러나 샘 레이미는 얽히고설키면서 힘이 빠질 법한 이야기를 솜씨 좋게 봉합하는 동시에 ‘슈퍼히어로의 의무’에 대한 시리즈의 전통적인 주제의식도 놓치지 않는다. 거의 예술의 경지에 오른 디지털 특수효과, 그중에서도 디지털 액터의 기교 넘치는 사용은 시리즈 중에서도 발군이다.
17. <디아볼릭>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부 마리오 바바가 연출한 <디아볼릭>은 안젤라와 루시아나 지우사니라는 자매 만화가가 창조한 이탈리아산 히어로물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잠깐. 이게 정말 슈퍼히어로물이 맞냐고?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검은 가죽 코스튬으로 온몸을 감싸고 새까만 재규어를 몰면서 동굴의 비밀기지에 사는 섹시한 범죄자 정도면 충분히 슈퍼히어로의 전당에 오를 만하지 않은가. 물론 디아볼릭은 결코 선하지 않다. 선과 악의 사이에서 갈등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에 맞춰 부자들의 재산을 강탈한 뒤 기지에 쌓아두고 혼자 즐길 따름이다. 가장 68적이고도 이탈리아적인 히어로라고나 할까. 이 캠피하고 사이키델릭한 컬트영화는 지난 2005년 파라마운트사가 DVD로 출시했다. 바바의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된다.
16. <인크레더블 헐크>
5년 전 리안과 에릭 바나가 완성했던 <헐크>는 헐크에 대한 영화적 메타 감상문에 가까웠다. 코믹북과 TV시리즈를 오가며 마블 최고의 캐릭터로 자리잡은 헐크의 진짜 스크린 데뷔전은 2008년에 이뤄진 셈이다. 실험의 일환으로 스스로 감마선에 노출됐다는 헐크의 기원은 TV시리즈와 각종 변종생물로 이뤄진 헐크의 적수며 간단한 문장을 구사하는 헐크의 지적 능력은 코믹북에 가깝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다. 슈퍼히어로다운 액션에 유머, 로맨스를 배합하려 고심한 흔적도 역력하다. ‘생활인 스파이더 맨의 고달픔과 로맨틱 괴수 킹콩의 애달픔’을 벤치마킹한 것은 원작의 골수팬과 에드워드 노튼의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릴 만한 부분이다.
15. <바바렐라>
최고의 히어로 노출상: 당연한 일 아니겠나. 바바렐라처럼 잘 벗고 막 벗는 히어로는 세상에 또 없다.
먼 훗날 제인 폰다는 “<바바렐라>를 찍을 때 뇌를 어디에다 놓고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르지. 아마도 겨드랑이?”라고 반문한 바 있다. 당시 제인 폰다의 남편이기도 했던 감독 로제 바딤은 뇌를 아마도 사타구니 사이 어딘가에다 두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프랑스 SF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바바렐라>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슈퍼히어로처럼 차려입은 섹스심벌 제인 폰다를 다양한 방식으로 벗기고 고문하고 괴롭히는 것(건반을 칠 때마다 바바렐라의 몸을 건드려 오르가슴을 일으키는 피아노 고문기계라니!). 그러나 60년대 여드름쟁이들을 극장에서 사정하게 만들었을 <바바렐라>의 캠피한 매력은 이상할 정도로 중독적이다. 밴드 이름을 이 영화의 악당 이름에서 훔쳐온 80년대 영국 젊은이 몇명은 그 가련한 희생자 중 하나일 따름이다. 밴드 이름이 듀란듀란이라던가?
14. <블레이드2>
<블레이드2>처럼 전편을 압도적으로 넘어서는 속편도 드물다. 그런데 그건 기예르모 델 토로가 이 영화를 굳이 <블레이드>의 속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델 토로는 전편의 지루한 테크노 뱀파이어들 대신 노스페라투와 프레데터를 교배해 만들어낸 듯한 변종 뱀파이어 리퍼를 창조했고, 그들의 세계를 <미믹>이나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를 연상시키는 음험한 신화의 무대로 바꿔놓았다. 쓸모없이 고뇌하던 웨슬리 스나입스의 안티히어로적 분위기를 싹 없애고 강인한 슈퍼히어로의 매력을 더한 것도 현명하다. 고뇌하는 영웅은 연기가 되는 배우들에게 시키면 된다. 스나입스가 할 일은 총을 갈겨 리퍼들을 찢어발기는 것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적으로. 아름답고 잔인하게.
13. <엑스맨>
최고의 의상교환상: 브라이언 싱어는 골수팬들의 항의를 무시한 채 알록달록한 스판덱스를 가죽으로 변환했다(박수!). 골수팬이라는 사람들의 말은 한쪽 귀로 흘릴 필요가 있다. 그들은 나무에 너무나도 능통한 나머지 산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관심이 없다니까.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처럼 많은 일을 해내고 많은 사람을 달래야 했던 감독도 드물 게다. 캐릭터가 무시무시하게 많은 원작이라 각본은 점점 산으로 올라갔고, 코믹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괴물이라 열성팬들의 구미를 다 맞추는 것도 못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똘똘한 브라이언 싱어는 데이비드 커퍼필드처럼 마술을 부렸다. 오리지널 코믹스의 아우라를 잃지 않으면서도 원전을 현대적으로 업데이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인종차별과 호모포비아에 대한 컨텍스트를 우아하게 내포한 오락영화 <엑스맨>은 팀 버튼의 <배트맨> 이후 주춤했던 ‘히어로물의 작가주의 시대’를 다시 개막했다.
12. <슈퍼맨 리턴즈>
브라이언 싱어와 슈퍼맨의 만남에 사람들이 걸었던 기대는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하자 많은 비평가와 관객이 실망을 표했고, 2억7천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는 겨우 2억달러를 벌었다. 그들이 실망한 것도 당연하다. <엑스맨> 시리즈처럼 원전의 비틀린 업그레이드를 기대했더니 의외로 고색창연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튀어나온 탓이다. 그러나 <슈퍼맨 리턴즈>는 만만치 않은 영화다. 싱어는 거의 종교적 신념으로 ‘슈퍼맨’이라는 미국 신화의 근원을 파고들어 해체한 뒤 재조립한다. 그리고 싱어는 슈퍼맨의 입을 빌려 말한다. “사람들은 더이상 영웅이 필요없다지만 내겐 매일 영웅을 찾는 절규가 들려요.” 이토록 완전무결한 영웅신화의 재현!
11.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은 가장 훌륭한 픽사의 영화는 아니다(<니모를 찾아서>가 더 깊이도 있고 재미도 좋다). 가장 훌륭한 브래드 버드의 영화도 아니다(<아이언 자이언트>는 영원히 브래드 버드의 최고 걸작이다). 가장 훌륭한 자기 성찰적 슈퍼히어로 장르영화도 아니다(<배트맨>과 <엑스맨>에게 이미 공은 돌아갔다). 그러나 ‘픽사+브래드 버드+슈퍼히어로 장르’의 혼합이 뿜어내는 순수한 오락거리로서의 가치를 따져보자면 이 정도 순위는 충분히 매길 만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적어도 <판타스틱4>의 앞으로 나올 속편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야 곱절 훌륭하지 않은가.
10. <슈퍼맨2>
가장 끔찍한 악당상: 우주의 범죄자 조드 장군 일당. 이 인간들에게는 정말로 자비란 없다. 게다가 그걸 연기하는 배우. 테렌스 스탬프 아니던가.
전편보다 더 크고 강력하게! <슈퍼맨2>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의 공식이라는 것을 거의 처음으로 수학화한 영화다. 리처드 도너는 더욱 다듬어진 특수효과와 매력적인 악당을 무기로 전편을 넘어서는 걸출한 오락영화를 만들어냈다(맨해튼에서의 거침없는 액션장면은 여전히 슈퍼히어로 영화 사상 가장 끝내주는 스펙터클 중 하나다). 다만 <슈퍼맨2>의 또 다른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리처드 도너가 출시한 디렉터스 컷을 보는 편이 좋다. 제작사는 영화를 거의 다 완성한 도너를 해고하고 리처드 레스터를 고용해 영화를 완성했다. 완벽한 통제권을 주장한 도너를 제작사가 몹시 거슬려했기 때문이다. 도너판을 본 사람들이라면 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에 진정한 영감을 준 사람이 누군지 금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9. <스파이더 맨>
최고의 키스씬: 그 유명한 거꾸로 키스씬. 이건 거의 영화역사상 최고의 키스씬 중 하나 아닌가 이미.
스탠 리의 ‘스파이더 맨’은 태생적으로 독특한 슈퍼히어로였다. 그는 슈퍼파워를 가졌을 뿐 적은 월급에 투덜거리는 우리와 같은 소시민이었다. 날 때부터 슈퍼파워를 지닌 슈퍼맨이나 돈으로 슈퍼파워를 산 배트맨과는 달랐다. 바로 그것이 ‘스파이더 맨’이라는 히어로를 코믹스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로 만든 슈퍼파워다. 샘 레이미는 원작의 슈퍼파워를 망각하지 않은 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날씬한 블록버스터로 <스파이더 맨>을 출발시켰다. 아마도 어떤 슈퍼히어로 영화도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흥행성적을 넘어서진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히어로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8. <헐크>
사람들은 리안의 <헐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2시간30분이라는 과도한 러닝타임. 감각적이라기보다는 기묘한 만화적 화면분할. 그리스 비극을 연상케 하는 브루스 배너의 배배 꼬인 가족사. 브루스 배너를 감싸안아야 할 여성 히로인 제니퍼 코넬리마저 끔찍한 죄의식에 시달리는 존재다. 심지어 스펙터클조차 온당한 카타르시스를 분출하지 않는다. 액션장면은 느리고 시적이며 심지어 드물다. <헐크>가 닮아 있는 것은 오히려 장중한 그리스 비극이다. 거대한 힘에 짓눌려 고통받는 동시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주인공 브루스 배너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차라리 <아이스스톰>의 가족 구성원에 가깝다. <헐크>는 리안과 예술영화 관객을 위한 슈퍼히어로 영화다. 그건 엄청난 결점이다. 동시에 엄청난 매력이기도 하다.
7. <배트맨 비긴즈>
조엘 슈마허가 망쳐버린 영웅을 어떻게 새로 시작할 것인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원한 것은 정말로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는 브루스 웨인의 유년기와 청년기로 돌아간 뒤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영웅의 기원을 탐색한다. 동시에 크리스토퍼 놀란은 팀 버튼의 세계를 지워버리는 데도 혼신을 다한다. <배트맨 비긴즈>에는 팀 버튼의 작품들에서 발현하던 동화적인 뉘앙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놀란은 고담시를 필름 누아르의 음험한 무대로 만들어버린 다음 좀더 현실적인 활극을 펼친다. <배트맨 비긴즈>가 개봉하자 “만약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메가폰을 잡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완전히 사라졌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정말로 다시 시작했다.
6. <스파이더 맨2>
샘 레이미의 말처럼 <스파이더 맨2>는 “책임감 있는 청년으로 산다는 게 뭔지를 깨달아가는 피터 파커의 여정”이다. 사실 그건 원작 코믹스의 기본적인 정신이기도 하다. 샘 레이미는 1편과 마찬가지로 뒤틀고 고치고 재해석하는 재주를 과시할 생각없이 충실하게 스탠 리의 세계를 스크린에 옮긴다. 브라이언 싱어가 <엑스맨> 시리즈로 해낸 서커스도 훌륭하지만 풍요롭게 원전의 영혼을 계승한 샘 레이미의 장인정신도 평가절하되어서는 곤란하다. 물론 옥토퍼스 박사가 병원에서 난동 부리는 장면을 보면서 오랜 팬들은 안도했을 게다. 샘 레이미의 악동 정신은 아직 살아 있구나.
5. <언브레이커블>
<언브레이커블>은 슈퍼영웅의 탄생설화를 리얼리즘 드라마에 접합시키려는 위험천만한 시도다. 왜 위험천만하냐고? 자칫 잘못하면 기겁할 정도의 코미디가 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하지만 M. 나이트 샤말란은 우주인 침공 이야기와 종교적인 리얼리즘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결합했던 <싸인>과 마찬가지로 <언브레이커블>에서도 시침 뚝 떼고 어울리지 않는 장르를 서커스하듯이 접합해낸다. 느릿느릿한 진행이 지루했던 관객이라면 찬찬히 다시 훑어보는 것을 권한다. 얼마나 많은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관습들이 촘촘하게 이야기에 녹아들어 있는지를 발견하고는 무릎을 탁 치게 될 게다. 건조할 만큼 사실적인 톤에도 불구하고 <언브레이커블>은 결국 고전적인 슈퍼히어로 영화다.
4. <슈퍼맨>
최고로 짭짤한 개런티상: 말론 브랜도는 단 10여분 출연에 당시로서는 역사상 최고 개런티인 400만달러를 받아 챙겼다. 욕심 많은 영감 같으니.
할리우드는 이미 1951년과 54년, 73년에 한 차례씩 ‘슈퍼맨’의 영화화에 도전한 바 있다. 하지만 강철사나이를 스크린에 살려내기 위해 정말로 필요했던 건 공중을 나는 쾌감을 묘사할 특수효과다.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은 마침내 할리우드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자신감과 기술력을 얻었다는 시대적 증거다. 존 윌리엄스의 스코어처럼 슈퍼히어로다운 진군가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3. <배트맨2>
사람들은 팀 버튼의 최고작을 꼽으라는 말이 튀어나오기가 무섭게 <배트맨2>의 제목을 내지른다. 그건 <배트맨2>가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팀 버튼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화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트맨>의 성공으로 완벽한 예술적 통제권을 거머쥔 팀 버튼은 <배트맨2>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아예 지워버렸다. 보 웰치가 디자인한 빅토리아 시대의 고담은 끝없이 눈이 내리고 아이들은 죽어가고 동물들은 복수한다. <배트맨2>는 팀 버튼마저도 다시는 만들 수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다. 아니. 이건 정말 슈퍼히어로 영화인가?
2. <엑스맨2>
가장 우아한 오프닝상: 나이트 크롤러가 모차르트의 선율에 맞춰 백악관으로 침투하는 <엑스맨2>의 오프닝 장면. 우아하도다!
<엑스맨>으로 성공적인 사가의 시작을 알린 브라이언 싱어는 2편에서 좀더 사적인 야심을 부린다. 사실 그가 묘사하길 원했던 것이 돌연변이들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과 돌연변이들의 전쟁이라는 것은 애초에 명백했다. 전편에서 희미하게 깔아놓았던 인종차별과 호모포비아에 대한 은유들은 좀더 강렬해졌다. 그러나 이 모든 사회적 컨텍스트만이 <엑스맨2>을 위대한 슈퍼히어로 영화로 만든 것은 아니다. 전편보다 능숙해진 브라이언 싱어는 많은 감독들이 이야기의 사이에서 허비하는 액션장면들에도 가슴을 뒤흔드는 감정을 담아낸다. 울버린과의 결투에서 쓰러지며 금속 눈물을 흘리는 레이디 스트라이커의 얼굴, 감당할 수 없는 파워를 통제하며 스스로를 희생하는 진 그레이의 얼굴, 한니발 렉터처럼 우아하고 장엄하게 감옥을 탈출하는 매그니토의 얼굴. 싱어는 단 하나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엑스맨2>는 지금 슈퍼히어로 영화가 해낼 수 있는 가장 우아한 교향곡이다.
1. <배트맨>
조커는 묻는다. “사그라지는 달빛 아래서 악마와 춤을 춰본 적이 있느냐?” 1989년 <배트맨>의 편집본을 본 워너의 경연진들이 바로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5천만달러짜리 야심작 하나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예술영화로 탄생했으니 차라리 악마와 춤을 추는 게 나았을 것이다. 이 기묘한 블록버스터에서 배트맨은 영웅이 아니라 정신병 환자에 불과했다. 안톤 푸스트가 설계한 고담은 필름누아르의 부패한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돈을 처들인 액션도 카타르시스라고는 없었다. 박쥐 옷을 입은 정신병자가 입 찢어진 정신병자와 싸우는데 카타르시스 따위가 있을 리 없지 않겠나. 그러나 재편집의 여지도 없었다. 뭘 더 찍어놓은 게 있어야 재편집도 가능한 법이다. 팀 버튼은 시사 참석도 거절한 채 해외로 도망나가 있었다. 코믹스 팬들은 시사회장에서 자신들이 원하던 배트맨이 아니라며 난동을 부려댔다. 그러나 <배트맨>은 1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며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을 물리치고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됐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배트맨>을 표지에 올렸다. 이 모든 역사의 결과는 ‘변화’다. <배트맨>은 할리우드를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현대 슈퍼히어로 영화의 시대를 개막했다. <배트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엑스맨>과 <스파이더 맨>의 재림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