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27일. 눈이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한 남자가 종로구 북촌 인근을 배회한다. 홍상수 감독의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12번째 장편영화의 주인공 성준(유준상)이다. 제일 친한 형인 영호(김상중)에게 전화했다가 그에게서 할 일이 많아 못 만나겠다는 말을 들은 다음 그냥 별일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여기서부터 오늘의 인물들이 줄지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오늘의 특별 출연자들이다. 사거리 건너에서 아는 김 감독(백종학)이 영화를 찍고 있다. 그를 지나자 다음은 영화 제작자(기주봉)와 마주친다. 연이어 카메라가 패닝하자 다음은 음악감독(백현진)이다. 세 사람 모두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지만 성준과 그들의 감정은 조금씩 엇나간다. 누군가는 뚱하고 누군가는 반긴다. 상대방이 성준을 반기지 않을 때도 있고 성준이 상대방을 덜 반가워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홍상수 감독의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 혹은 그의 지인들이 줄지어 출연하는 이날의 장면을 두고 현장을 보던 누군가가 조그맣게 말한다. “오늘 총출동이네!”
홍상수 감독의 12번째 장편은 지방에서 영화과 교수를 하는 영화감독 성준이 며칠간 서울에 와서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야기다. 서울의 북촌이 주무대다. 이번 영화의 주연배우들은 성준 역의 유준상을 포함하여 김상중, 송선미, 김의성, 김보경이며 김상중이 영화평론가, 송선미가 영화과 교수, 김보경이 카페 여주인 등으로 출연한다. 그러니 오늘은 이 주연배우 외에 특별 출연자들을 더 만나는 특별한 날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우린 이 영화를 아직 다 알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가. 영화를 다 보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게 홍상수 영화를 보는 감흥이 아니던가. 그의 12번째 작품은 아직 제목도 짓지 않았고, 주인공이 서울에서 지내는 며칠간의 이야기라지만 시간감은 아주 기이하게 느껴질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또다시 홍상수의 미로와 블랙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예감. 홍상수의 기이한 모험이 또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 연인과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전시회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던 그 북촌의 낯익은 골목길에 하루 종일 신비한 공기가 스며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