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극우와 극좌 모두 내 영화를 좋아하더라”
2012-06-12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11월25일, 미시마가 그의 운명을 선택한 날> 와카마쓰 고지 감독 인터뷰

<11월25일, 미시마가 그의 운명을 선택한 날>(이하 <11월25일>)이 이 영화의 제목이다. 여기서 미시마란 1960년대를 대표한 일본의 극우 지식인이자 유명 소설가였던 미시마 유키오다. 11월25일은 그가 일명 ‘다테노카이’라는 그의 추종자들이자 민병대를 데리고 자위대 총감실을 점거한 뒤 자위대의 자립과 각성을 호소하며 할복한 날이다. 전작 <실록연합적군>에서 전공투 세대의 가장 극단적인 좌파인 ‘적군파’와 그들의 아사마 산장 이야기를 다뤘던 와카마쓰 고지는 정확히 반대편에 위치한 당대의 가장 극단적 우파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41년 만에 칸의 초청을 받은 일본 핑크영화의 대부이자 정치영화의 실력파 감독 와카마쓰 고지를 만났다.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떠올랐나.
=적군파에 대한 영화 <실록연합적군>을 만들 당시에 이미 했었다. 우익쪽에도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 젊은이들이 있었다. 좌익에 적군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을 취하는 것보다는 이 스펙트럼의 양극단을 모두 다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여 미시마 유키오와 그를 따르는 극우단체 ‘다데노카이’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실록연합적군>을 만들 당시에 배우들에게 이미 농담처럼 다음에는 극우파에 대한 영화를 만들 거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를 연속 두편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사이에 다소 무겁지 않은 영화로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캐터필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실록연합적군>과 <캐터필러>가 관객에게 꽤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으로 이 영화도 만들게 됐다.

-아주 정치적인 영화로, 아주 오랜만에 칸에 왔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내가 칸에 왔던 건 41년 전 일이라 오래되기는 했지만 이번 방문이 특별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나에게 어떤 특별한 방문에 대한 경험을 묻는다면, 다큐멘터리 촬영차 팔레스타인에 갔던 일을 말해주겠다. 그 사건 때문에 나는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혔고 일본 정부도 열여섯 차례에 걸쳐 나를 심문했다. 그런 정도가 되어야 기념비적인 방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웃음)

-미시마 유키오 역을 맡은 이유라 아라타에 대해 말해달라. 어떻게 그를 선택하게 되었는가.
=우선 <실록연합적군> 출연 당시 아주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잘 알려진 배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작업 방식을 잘 따라주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면 그는 매니저나 다른 수행원 없이 혼자 왔고, 영화 촬영 시에도 이러한 작업 방식에 찬성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함께 일하는 동안 몇몇 배우들을 미시마 유키오 캐릭터로 여기고 관찰해본 결과 이유라가 제격이었다. 캐스팅은 아주 적절했고 만족스럽다. 유명한 스타를 쓰고 싶은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다. 심장이 살아 있는 한 누구라도 연기할 수 있다.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스타 파워를 써야만 한다면 나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이 영화로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에 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가.
=일본 사람들도 왜 미시마 유키오가 자결했는지 사실 의문스러워한다. 사실 애매하게 남겨진 문제다. 많은 이들이 여러 설들을 제기했지만 나는 내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내 생각에 그가 45살에 죽을 때, 스스로의 죽음의 의미와 타이밍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자결한 11월25일은 그와 아주 가까웠던 도쿄대 친구가 자결한 날이기도 하다. 그 친구는 일종의 부패한 돈을 받아 공부했고 그의 성격 때문에 궁지에 몰렸고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맸다.

-미시마 유키오가 죽음을 선택한 당시에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나.
=그 당시에 나는 아주 멍청했다. 여러 편의 작품을 쓰고 돈을 많이 벌어들인 나머지 미시마가 미쳐버린 것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자료들을 찾아 읽고 지금 살아 있는 당시의 극우단체 사람들과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실록연합적군>이나 <11월25일>에서 모두 실명을 썼다. 주변 지인들이 그러다가는 극우파에 암살당할 거라고 경고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으면 그러라지 뭐!” 하고 말해줬다. (웃음) 내가 이 양극단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당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회를 위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해보라는 거다. 실제로 이 두 영화를 만들고 나서 그들(극우와 극좌)은 다 내 영화를 좋아했다. 내 의도가 진실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 일본 영화계에서 감독으로서 당신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나.
=일본사회에는 미스터리한 일이 아주 많다. 그런 사회적 미스터리를 나의 시각에서 영화로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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