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오즈의 땅에서 오즈 분위기로”
2012-06-12
글·사진 : 이화정
<라이크 섬원 인 러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인터뷰

엔딩 신과 함께 극장에서 일제히 비난이 쏟아졌다. 예상치 못한 결론에 1시간49분의 긴 주행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항의성 외침이었다. 영화의 결론은 곧 이견으로 자리했다. <가디언>이 ‘갑작스럽게 내려진 커튼이 이 영화의 흥미를 돋운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리베라시옹>은 ‘이 급작스런 결론에 이란의 거장이 말하고자 한 게 무엇이었냐’며 따져물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그것이 곧 진짜 삶을 포착해내는 가공하지 않은 진실임을 말했고, 단호하게 이 무리수의 결론을 선택했다. 이탈리아의 전원을 달리며 역할놀이를 했던 <사랑을 카피하다>에 이어, 그는 이제 도쿄의 도심으로 들어가 한 콜걸과 그녀의 시간을 산 늙은 교수의 만남을 주선한다. 돈과 육체적 관계로 맺어져야 할 이들 관계는 예상했던 수순을 떠나,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아키코와 그녀를 보살펴주고 싶어 하는 나이 든 남자 타카시, 그리고 이 둘의 관계에 질투와 분노를 퍼붓는 젊은 남자 노리아키의 삼각관계는 스릴있고 흥미롭다. <라이크 섬원 인 러브>는 영화의 대부분이 차 안에서의 대화로 이루어지고, 차창에 반사된 하늘이 압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키아로스타미의 인장이 고스란히 새겨진 영화다. 몇몇 이견에도 불구하고 택시를 탄 아키코가 시부야역을 달리는 첫 장면의 롱테이크의 짜임새만으로도 이 영화의 존재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

-<증명서>는 이탈리아에서 찍었고, 이번엔 일본에서 찍었다. 왜 일본이었나.
=스시를 먹기 위해서다. (웃음) 테헤란에 일본 식당이 하나 있는데 너무 비싸고 주차도 힘들다. 그래서 스시를 먹는 유일한 방법은 일본에 가서 영화를 두달 정도 찍는 것이었다. 사실 진짜 이유는 알 거다. 이 질문엔 100번도 넘게 대답해왔다. 지금 이란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규제로 인해 힘들다. <증명서> 이후에 내가 서구화됐다는 평가도 뒤따르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수차례 칸에 왔는데 일본 배우들과는 처음이었고 어제 레드카펫에 서니 소외감이 들더라. 줄리엣 비노쉬와 왔을 땐 사람들이 내가 톱배우와 일하는 유명 감독인 걸 알았는데 말이다.

-영화를 구상한 건 어떤 계기였나.
=15∼20년 전 도쿄에 왔을 때, 밤 늦게 검은 양복에 샘소나이트 서류가방을 든 남자를 봤다. 그리고 그 근처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가 배회하고 있더라. 그 여자가 뭘 하나 궁금했는데, 같이 간 사람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창녀라고 말해주더라. 여대생들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런 아르바이트를 한다더라. 그 장면이 하나의 그래픽처럼 새겨졌고, 내가 이 영화를 만드는 데 강렬한 스파크를 일게 했다.

-외국 감독들이 도쿄를 화면에 담을 때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도쿄는 아주 자연스럽다.
=도쿄에 온 외국인 감독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사람들이 그 유명한 사거리(시부야)에서 길을 건너는 군중 신을 찍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떤 것이든 너무 일본적인 건 피했다. 난 내 영화가 아주 보편적이길 원했다. 일본인이 아는것보다 더 사실적인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건 그냥 ‘사람’처럼 보였으면 했다.

-일본에서의 프로덕션은 어땠나.
=일본은 여전히 내게 문화적으로 미스터리한 장소다. 그래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만, 세팅이 되면 지극히 가능한 친숙한 이야기로 하고 싶었다.

-전작 <증명서>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오르게 만들었다면, 일본에서 찍은 이 영화는 은연중에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생각난다.
=내가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아마 존 포드 영화 같았다고 했을 거다. 사실 난 로셀리니와 오즈에게 영향을 받았고, 그들은 내가 감독이 되기 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두 감독이었다. 내가 오즈의 랜드로 가서 오즈 영화의 분위기를 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제목 대신 원래 제목은 ‘디 엔드’였다고 들었다. 사실 이 영화의 엔딩 신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난 이 영화에 적절한 오프닝도 없고, 마찬가지로 진짜 엔딩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화면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떠난 뒤에도 이 이야기는 지속될 거다. 그게 곧 인생이기도 하고.

-차가 이 영화의 미장센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차는 어느 곳에나 있고, 어떤 다른 장소보다 더 좋은, 장점이 아주 많은 공간이다. 차 안에서라면 사람들이 대화 도중 도망갈 수 없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으니까. 만약 차 안이 아닌 경우 대답할 말이 없으면 그냥 걸어가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러니 차는 대화를 이끌어주는 아주 은밀한 세팅이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