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처음에는 무성영화 찍는 듯 낯설었다”
2012-06-12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허진호 신작 <위험한 관계>, 감독-배우 인터뷰
<위험한 관계>의 주연배우 장백지(왼쪽)와 감독 허진호.

허진호와 장백지가 칸의 해변에 등장했다. 허진호 감독이 중국에서 만든 신작 <위험한 관계>가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국에서는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하 <스캔들>)로도 만들어졌던 그 이야기를 허진호 감독은 어떻게 1930년대 상하이로 옮겨냈을까. 한편 많은 한국 팬을 보유한 장백지는 <위험한 관계>를 촬영하며 또 어떤 것들을 느꼈을까.

허진호 감독

“이재용 감독에게 조언 구했지만…”

-중국영화를 연출했다.
=전혀 모르는 언어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 <호우시절>의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는 영어 대사가 많아 뉘앙스 정도는 훨씬 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어 아닌가. 초반에는 ‘내가 지금 거의 무성영화를 찍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대사가 끝난 줄 모르고 컷도 못하고. (웃음) 익숙해지면서 무언가 좋다, 나쁘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장동건도 대사의 80%를 중국어로 했다. 한국 개봉 시에는 장동건이 직접 더빙을 할 생각이다.

-한국과 중국은 정서가 다른데, 연출의 표현 수위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이 영화를 준비할 때 외국 영화인들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이야기의 그런 장면을 어떻게 중국에서 만들 생각을 하냐고. 그 한계를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인물들의 심리를 더 강조했다.

-시대 배경이 1930년대 상하이다. 어떤 고려가 있었나.
=원작도 프랑스 혁명 이전, 부패하고 화려한 18세기가 배경이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게임이 되는 그런 시대. 그 당시 상하이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의 소설들을 읽어봤는데, 지금보다 훨씬 더 물질적이더라. 18살 소녀가 60살 할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이 사람이 10살만 더 많으면 빨리 죽어서 좋을 텐데 하는 말도 하고, 젊은 남자들은 좋은 자동차 타면 얼마든지 여자들을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상류층의 생활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쾌락적이었다. 현재 중국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말도 들었다.

-원작이 같은 다른 영화들이 있다. 어떤 차이를 추구했나.
=한국에도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이 있다. 게다가 나는 사실 원작을 영화로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보니 무척 재미있었다. 장동건과 그런 농담까지 했다. 우리가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으면 연애를 참 잘했겠다고. (웃음) 그 정도로 남녀의 심리가 뛰어나게 묘사되어 있다. 이재용 감독에게 조언도 구했는데, 시대 배경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또 새로운 게 생길 거라고 알려줬다.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영화인가.
=전부 다 도전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만든 영화들의 컷 수를 다 합쳐도 이번 영화 컷 수가 많다. 인물에 더 가깝게 들어가려 했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는데, 힘겨웠어도 어쨌든 해냈다.

장백지

“여자라면 장동건에 빠질 수밖에”

-<무극> 이후 장동건과 다시 연기했다. 어땠나.
=그 영화를 찍을 당시, 처음에는 언어 소통이 잘되지 않아 좀 힘들었다. 하지만 장동건의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지 다들 알고 있지 않나. <위험한 관계>로 두 번째 만나니 이제는 오히려 눈빛으로 다 소통이 되어서 언어라는 게 과연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빛으로 다 통했다. 그는 정말 상하이의 귀공자였다. 이 영화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눈빛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니 장동건이야말로 그 역할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다. 다른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다. 신비하면서도 완벽하다. 그리고 여자라면 어쩔 수 없이 장동건에게 빠질 수밖에 없다. (웃음)

-장쯔이와의 작업은 어땠나. 영화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둘은 서로 극과 극으로 대립하는 인물이다.
=장쯔이와는 18살 때 <촉산>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둘 다 너무 어렸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서로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위험한 관계>를 계기로 다시 자주 연락하게 됐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만날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스스로 생각하는 이번 영화 캐릭터의 매력은.
=일단 내가 맡은 역할은 악녀다. 강렬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제일 무서운 건 불신이다. 그런 관계를 표현하는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만의 독자성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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