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에는 두편의 한국영화가 경쟁부문에 왔다. 홍상수의 <다른나라에서>와 임상수의 <돈의 맛>. 이 두편의 영화에 관한 매체의 반응을 우리는 종합적으로 전했다(지난호에는 <다른나라에서>, 이번호에는 <돈의 맛>). 그럼에도 더 궁금했다. 그래서 영화에 관한 한 깊은 식견을 자랑하며 프랑스 영화비평을 대표하는, 그러나 각각 지지하는 영화는 확연히 다른 두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자와 <포지티프>의 필자에게 짧은 한 토막씩의 글을 급하게 더 받았다(여러 가지 사정상 두 필자 모두 장문의 평을 쓰는 건 어려운 상황이었다). 역시나! 한쪽은 홍상수를 한쪽은 임상수를 지지한다. 이른바 <카이에 뒤 시네마>가 본 홍상수의 <다른나라에서>, <포지티프>가 본 임상수의 <돈의 맛>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 뱅상 멜로사
이자벨 위페르라는 스타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등장한다고 했을 때 걱정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감독의 최근 작품들이 들려주었던 그 섬세하고 특출한 음색의 멜로디에 그녀의 도래가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를 보니 이는 완전히 나의 오산이었다. 두 예술가의 만남에서 탄생한 것은 2012년 칸영화제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 아마도 홍상수의 서사술과 대사의 마술이 이 정도의 감정적 발열에까지 이른 적은 애초에 없었던 듯하다. 영화는 한적한 한국의 해변 마을에 도착하는 한 외국여자의 이야기를 세번에 걸쳐 변주하고 있다. 그런 변주를 통해 같은 인물과 같은 장소로 짜여진 세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겉으로는 사랑의 산책 같은 모습을 띤 <다른나라에서>의 이면에는 욕망의 언어에 대한 매우 세련된 분석이 담겨져 있다.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한 인물이 소통 불가능의 상황들에 처하면서(<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빌 머레이가 처했던 그 상황들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할 만하다) 끊임없이 제기되던 언어의 문제는 한순간 눈부신 사랑의 춤으로 승화한다. 감독의 너무나도 유려하고 정교한 미장센에 힘입어 이자벨 위페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워 보인다. 그녀의 이러한 자유로움, 신선함, 경쾌함, 그리고 단 하나의 제스처만으로도 우린 가장 격렬한 감정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이같은 능력을 이 영화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여기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지표다. 흔히 밋밋하게 영화적 만남이라고 부르곤 하는 이들의 조우는, 우연과 영감 어린 순간의 조화를 통해 인생의 만남이라는 기적을 탄생시킨 것이다.
<포지티프> 위베르 니오그레
임상수 감독의 신작 <돈의 맛>은 전적으로 그의 영화 커리어 발전 방향의 연장선상에 있다. 주제의 선택(이제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가부장 덕에 박정희 독재정권의 수혜를 받아 재산을 축적했을 법한, 거대 부르주아 가문의 막후 협잡으로 가득한 권력 게임)에서나, 영화 인용(자신의 전작 <하녀>나 원작 김기영의 <하녀> 인용)에 있어서도 이는 분명해 보인다. 인물들의 금전적 부 축적을 목적으로 한 기회주의를 공간의 탐구를 통해 훌륭히 반영하고 있는 미장센이나, 모든 인간의 감정을 배제시키는 차가운 조명, 권력관계와 내밀한 긴장을 표현해내는 촬영 분할의 스타일. 이러한 것들이 전작 <하녀>의 연장선에서 <돈의 맛>에서 다시금 구현해내고 있다. 마치 이 작품은 전작의 속편처럼 보이지만 윤리적으로 더 격렬한 톤을 띠고 있다. 여기서의 사회비판은 전작에 비해 한 가족사에 덜 한정되어 있으며 대신 외부 세계에 더 개방되어 있다. 많은 인물들이 극에 등장하지만 아직 어떤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나미에게 마음이 있는 영작은 결국 자기가 속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거부를 선언한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궁핍이 마침내 가시화되는 필리핀에서의 결말. 어쩌면 그것이 영화 내내 그려진,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경직된 세계에 대해 일종의 희망의 여운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