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대한민국의 법에 묻습니다
2012-11-06
글 : 강병진
사진 : 최성열
김성재 감독이 만드는 용산참사 이야기 <소수의견>

<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펴냄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의 한 장면.

<소수의견>
감독 김성재 / 출연 미정 / 개봉 2013년 하반기

2009년 1월의 참극이 한국영화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두 개의 문>처럼 그날의 진실을 역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통증> <특별수사본부> 등 그날의 현장을 통해 한국이라는 무대를 드러낸 영화도 있었다. 사건의 성격은 다르지만, <부러진 화살> 속 법정에서도 관객은 그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맨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굳이 시간과 장소를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날을 생각했다. 세 가지의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두려움, 법이 나를 지켜주기는커녕 해할 수 있다는 두려움,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는 공권력의 무자비함에 대한 두려움. 현재 하리마오픽쳐스가 영화화를 준비 중인 손아람 작가의 <소수의견>은 이 가운데 ‘법’을 향해 집요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지금 우리의 법은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과연 법은 법 자체로 독립되어 움직이는가?

용산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이지만, <소수의견>의 배경은 용산이 아니다. 아현동의 재개발 지구에서 철거민 진압 도중 두개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16살의 소년이 용역깡패에게 맞아 죽음을 맞는다. 함께 있던 소년의 아버지 박재호는 아들을 지키려다 경찰을 죽인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때린 건 용역깡패가 아니라 경찰이었다고 주장한다. 박재호의 말대로라면 그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소수의견>은 박재호의 변호를 맡게 된 국선변호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주인공인 윤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의 뚜렷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국선변호사를 선택한 남자다. 박재호에게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눈”을 보고, 어느 기자를 통해 사건현장을 기록한 영상을 본 그는 진실을 가로막는 거대한 힘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소수의견>은 속도감있는 법정드라마다. 하지만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전체 분량의 절반에 못 미친다. 소설은 재판에 앞서 재판의 방식을 고민하고, 증인을 찾고, 사건의 이면을 추적하는 과정을 비중있게 묘사한다. ‘재정신청’, ‘관할이전’, ‘국가소송 변론기일’ 등의 소제목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많은 법정용어들을 드러내면서 한국의 법체계를 분해하고 재조립하고 있다(따로 용어풀이까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건 재판에 앞서, 그리고 재판 도중에도 윤 변호사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캐릭터다. 이 사건을 통해 정치적인 승리를 노리는 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송을 저지하려는 재개발조합대표, 유명세를 얻기 위해 윤 변호사에게 힘을 합치려는 변호사들 등이다. 그처럼 이 사건에는 한 남자의 비극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집결되어 있다. 영화화된다면, <소수의견>은 다시 한번 용산참사를 환기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러진 화살>에서 경험했듯이 대한민국의 법이 얼마나 허약체질인가를 알게될 것이다. 무엇보다 실화의 힘을 장르적인 매력으로 치환시킨 법정오락영화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난관을 헤쳐온 인물들이 드디어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활자를 읽는데도 한편의 영화가 펼쳐진다. 검사와 변호사는 단순히 진실만을 쥐고 싸우지 않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는 이 재판에서 그들은 옷차림과 액세서리, 표정과 제스처, 프레젠테이션 등을 이용하고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적절한 단어와 말투를 선택해야 하는 쇼(show)를 벌인다. 카메라가 이들의 계산을 세부적으로 챙긴다면, 지금까지 한국 법정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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