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소년범죄에 대한 정의란 무엇인가
2012-11-06
글 : 남민영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사진 : 백종헌
이정호 감독이 영화화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바움 펴냄

한국판에서 주인공 상현(원작의 나가미네)을 연기하는 정재영.

<방황하는 칼날>
감독 이정호 / 출연 정재영, 이성민 / 개봉 미정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것은 이제 커다란 뉴스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수없이 많은 그의 소설이 일본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재탄생했고 한국 역시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선을 보였다. 이번에는 그의 소설 <방황하는 칼날>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법이 제대로 범죄를 심판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중년의 남성 나가미네는 일찍 아내를 잃고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딸 에마와 단둘이 살아간다. 엄마 그리고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서로 노력하며 부녀간의 정을 다진 이 가족에게 어느 날 처참한 사건이 벌어진다.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구경하겠다며 외출한 에마가 행방불명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나가미네는 강의 하류에서 에마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왜 자신의 딸이 죽어야만 했는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 절망하던 나가미네는 자동응답기에서 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메시지를 듣게 된다.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에는 에마를 죽인 범인이 스가노 가이지와 도모자키 아쓰야라는 사실과 그들의 집 주소가 담겨 있다. 자신의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용의자의 집에 찾아간 나가미네는 그곳에서 딸 에마를 성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하고 분노에 휩싸인다. 그때 집으로 막 들어온 범인 아쓰야는 에마와 같은 또래의 소년. 분노를 절제할 수 없던 나가미네는 아쓰야를 우발적으로 죽인다. 이제 나가미네는 피해자의 유족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된 상황, 그는 경찰의 추격을 피해 또 다른 용의자 가이지를 쫓기 시작한다.

<방황하는 칼날>의 가장 큰 화두는 솜방망이 처벌로 늘 문제가 되는 소년범죄다. 에마를 죽인 범인과 에마의 아빠 나가미네를 동시에 쫓는 형사들은 소년법 때문에 범인에게 가벼운 처벌이 내려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법을 인정할 수 없는 나가미네의 복수가 왜 정의로 성립될 수 없는지를 고민하며 혼란에 빠진다. 소설이 묘사하는 일본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은 한국사회를 떠올려보면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우리 시대의 법과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개봉한 방은진 감독의 영화 <용의자 X>와 마찬가지로 <방황하는 칼날>은 사실 2009년 이미 일본에서 영화화된 적이 있다. 그러나 영화 <베스트셀러>의 이정호 감독은 한국 정서에 맞는 그리고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 새로운 시나리오로 <방황하는 칼날>을 다시 한번 스크린에 옮길 예정이다. 다가올 12월 중순 크랭크인을 목표로 하는 <방황하는 칼날>은 나가미네 역에 정재영, 그를 쫓는 형사 역에 이성민을 나란히 캐스팅한 상태다. 정재영과 이성민이라는 두 배우와 원작이 가진 흡인력만 보더라도 <방황하는 칼날>은 이정호 감독의 비장한 칼날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방황하는 칼날>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2009년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다. 같은 부모를 두고 있고 흡사한 외모를 갖췄다는 점에서 쌍둥이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한국판 <방황하는 칼날>이 2009년작 <방황하는 칼날>의 진짜 쌍둥이 형제가 된다면 그 작품이 겪었던 설움을 다시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부디 빠른 전개를 매력으로 삼은 원작의 포인트를 놓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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