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석의 베스트5
<호수의 이방인>(알랭 기로디) 올해 칸의 전반부에 본 영화 중 최고작. 우스꽝스러움과 무서움이 장면마다 서로를 껴안고 뒹굴더니 끝내 결론없이 미제로 남아 더욱더 불가사의함에 이르고 만 희귀한 예. 영화라는 매체의 성질로 해낼 수 있는 어떤 그로테스크함의 진수.
<이민자>(제임스 그레이) 올해 칸의 후반부에 본 영화 중 최고작. 무모하면서도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음.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좋아할 것인가. 그 질문이 지난해 칸에서 나와 누군가의 영화적 운명을 가늠하는 구별법이었다. 제임스 그레이의 <이민자>를 당신은 좋아할 것인가. 이것이 어쩔 수 없이 올해 같은 방식의 나의 영화적 운명이자 구별법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짐 자무시) 제목 참 못 지었다. 하지만 ‘오직’과 ‘사랑’과 ‘살아남다’라는 이 부담스러운 주제어를 이토록 절묘한 화음과 느긋한 유머로 만드는 데에는 도대체 어떤 재능이 필요한 걸까. 내가 탐내는 자무시의 은빛 머리칼이 실은 그 재능의 원천지가 아닐까 하는 헛소리까지 나온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무시와는 음악을 함께 듣는 친구가 되고 싶어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에다 히로카즈) 이 자리에 두편의 영화를 놓고 계속 고심했다.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무래도 영화적으로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근사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질문이 더 절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한편쯤은 어쩔 수 없다.
<천주정>(지아장커) <천주정>이 걸작이 아니라 괴작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앞으로 만들게 될 지아장커의 영화들이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 예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천주정>에는 다른 어떤 창작자도 흉내내기 어려운 깊고 거대한 명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정한석의 워스트
<오직 신만이 용서한다>(니콜라스 윈딩 레픈) 이 부문에 관한 한 몇 개의 강력한 후보(?)들이 더 있지만 이 영화는 못 만든 걸 넘어서 그중 제일로 얌체같고 뻔뻔하다.
장영엽의 베스트5
<아델의 삶-1&2>(압델라티프 케시시) 첫눈에 반한다는 말,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상심했다는 말. 이제는 로맨스영화에서조차 쉽게 찾아보지 못할 이 진부한 이야깃거리에 깊이 몰입하게 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무엇보다 시퀀스의 리듬을 유려하게 조절하는 케시시의 솜씨와 여배우의 장점을 적재적소에 취할 줄 아는 그의 안목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코언 형제) 인정할 건 인정하자.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그 어떤 감독도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같은 작품을 만들 순 없을 거다. 빈틈없이 짜임새있게 직조된 이야기와 미장센 안에 주인공을 밀어넣고, 그의 오디세이적 여정이 마무리되기까지 영화의 키를 결코 허투루 놓는 법이 없는, 감독의 지성과 집중력으로 완성된 작품.
<호수의 이방인>(알랭 기로디) 같은 장소, 같은 인물, 같은 상황. 매우 제한된 장소와 소수의 등장인물을 조명하는 이 작품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놀라운 방식으로 감각과 정서의 폭을 넓혀나간다. 도무지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함과 간결하고 힘있는 이미지의 승리.
<네브래스카>(알렉산더 페인) 개인적으로는 올해 칸의 각본상을 점친 작품. 때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감수해야 한다는 삶의 아이러니가 이 작품의 주제다. 페인의 7년 만의 복귀작 <디센던트>보다 더 신랄하고 유머러스하며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어떤 면에서 보나 더 나은 차기작.
<천주정>(지아장커) 정돈되지 않은 만듦새가 마음에 걸리지만, 생각해보면 그 불균질한 틈으로 새어나오는 파괴의 에너지가 이 영화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각 인물의 에피소드마다 강렬한 순간들을 장전하고 있으며, 변죽을 울리기보다 핵심을 돌파하고자 하는 지아장커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
장영엽의 워스트
<미하엘 콜하스>(아르노 데스 팔리에르) <미하엘 콜하스>는 영화제쪽의 경쟁작 선정 이유가 다소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저력의 덴마크 배우 매즈 미켈슨을 중심부에 세워놓고도 예측 가능한 설정 때문에 금세 흥미를 잃게 되는 이 영화는, 시대극에 대한 감독의 상상력 부족을 탓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