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그레이와의 작업은 어땠나.
=제임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내게 보여줬다. 때때로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에게나 말하지 못할 매우 사적인 얘기도 들려주더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태껏 함께 작업한 그 어떤 감독보다도 제임스 그레이와 친밀한 사이가 됐다. 그리고 <이민자>를 위해 한달 동안 리허설을 했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겐 매우 새롭고 특별한 작업이었다.
-<이민자>엔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되었다던데.
=그렇다. 제임스는 나와 유년 시절의 기억을 공유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어떤 장면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미국으로 온 폴란드 여인 에바가 바나나를 껍질째 먹는다거나 스파게티 소스를 벌레로 착각하는 에피소드는 제임스의 할머니 이야기라더라.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라비앙 로즈>를 촬영한 뒤 미국에 갔는데, 문화도 다르고 낯설고 언어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치 아기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경험을 나는 (역시 유럽 출신의 배우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공유하고 있다. 미국 진출에 대한 그녀의 대답을 한 기사에서 읽고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 것 같아요”라고 사석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폴란드 이민자 에바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1920년대 미국과 당시 그곳으로 이민 온 사람들의 삶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읽었다. 1920년대는 미국의 문이 지금보다 훨씬 활짝 열려 있던 시기다. 이민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 직업을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만의 필요에 의해 미국으로 왔다. 에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폴란드가 전쟁 국면에 접어들지 않았더라면 절대 미국으로 도피하지 않았을 거다.
-가장 큰 도전은 역시 폴란드어 구사였나.
=그렇다. 난 폴란드어를 하지 못했고, 여전히 하지 못한다. 제임스가 에바 캐릭터를 위해 20페이지 분량의 폴란드어 대사를 썼던데, 난 그 책에서 고작 2개 단어만 읽을 수 있었다. 그 단어가 영어나 프랑스어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그나마 이 영화에서 에바가 폴란드 억양이 섞인 영어를 구사하는 설정이라는 거다. 만약 본격적으로 폴란드 말을 해야 했다면, 나는 큰 곤경에 처했을 거다.
-에바는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춘을 택한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올해 영화제에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여성들은 매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나는 (오종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때때로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의 경우 말이다. 우연히 올해 내가 출연한 두편의 영화 <블러드 타이>(코티아르의 남편인 기욤 카네의 영화)와 <이민자>에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 여성을 연기하게 됐는데, 궁지에 몰리면 누구나 어떤 기회라도 잡아보려 하지 않겠나.
-<이민자>는 예산이 비교적 적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말한 바 있다.
=음…. 예산이 아무리 적어도 감독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촬영을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 게다가 제임스는 연출에 정말 완벽한 본능적 감각을 지녔다. 하지만 어느 날 현장에서 제임스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금 행복하지 않구나.’ 다가가서 무슨 일 있냐고,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다. 그는 자기가 괜찮다고, 다만 지금 준비하는 장면에 대한 꿈을 꿨다더라. 얘기를 들어보니 매우 아름다운 꿈이었다. 그리고 제임스가 말했다. “100만달러짜리 영화(저예산)도 많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이 자리에 있으니,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면 돼요.” 나도 감독의 삶(남편 기욤 카네)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예산문제에 직면한 그가 겪을 좌절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