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외로운 이들을 우리가 마중 나가보자” -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감독
2016-05-17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귀여워>(2004), <창피해>(2010)를 연출한 김수현 감독이 오랜만에 신작을 만들었다. 키보드 워리어이자 청년 백수인 교환(구교환)은 민주화를 ‘좌파들의 논리에 제압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모임 ‘너나나나베스트’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게 낙이다. 한평생을 좌파 척결에 바쳐온 ‘애국노인’ 정수(동방우)는 ‘어버이 별동대’의 대장이다. 노인들을 이끌고 종북 세력 타도에 열을 올린다. 전혀 다른 두 세대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우연한 일로 만나 친구가 된다.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떤 외로움이 이 둘을 이어주는 것 같다. <우리 손자 베스트>(2016)는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문제적인 현장의 단면을 에두르지 않고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제한된 예산과 일정으로 장편을 만드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참여해본 소감이 궁금하다.

=제안받고 좋았다. (웃음) 그동안은 후다닥 준비해서 촬영에 들어가는 편이 못 되었는데 이번에는 한달 준비, 한달 촬영이었다. 촬영 첫날 하도 빨리 찍으니까 스탭들은 물론이고 교환조차 놀라더라. 이런 작업 방식이 새로웠다. 물론 제작 조건이 한계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대안과 독립’이라는 영화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었다. 조용규 촬영감독, 서승현 편집감독 등 함께 작업한 스탭들의 조직력에 놀랐다. 나로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극중 교환이 활동하는 인터넷 사이트 ‘너나나나베스트’, 정수의 ‘어버이 별동대’는 현실의 몇몇 단체를 떠올리게 한다.

=<나쁜 영화>(1997)에 참여(조감독 겸 각본가)할 당시 10대들, 흔히 ‘탈선’의 현장에 있던 친구들의 억눌림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의 경계 밖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그때의 그 친구들이 오늘날 20대들의 모습이 아닐까. 20대는 충분히 행복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그런데 현실의 20대는 어떤 낭패를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좌절하고 박탈감을 느껴야 하고. 그들에 대한 관심으로 조사를 시작했다가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교환과 같은 이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또 무기력하면서 동시에 마초 같은 면이 있는 어르신들의 존재도 눈에 들어왔다. 양쪽 모두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게 정말 자기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누군가가 했던 말을 그저 되풀이하는 정도랄까. 그런 모습이 되레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이들의 버디무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교환과 정수 모두 각자의 가정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외로움과 패배감의 정서가 짙다.

=어쩌면 <우리 손자 베스트>를 통해 나는 미디어의 현 세태에 대해 말하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방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자기를 희화하고 상대방을 내리깔면서 자기를 인정받고자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교환이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를 표현해보는 게 중요했다. 비록 설득력이 없고 문제가 생길지라도.

-교환 역으로 감독 겸 배우 구교환이 합류해 큰 힘이 됐다고 들었다.

=구교환 감독의 연출작 <연애다큐>(2014)를 우연히 봤는데 재밌었다. 별로 얘기 안 하는 듯하면서도 할 얘기를 다 하는 내용이었다. 만나보니 차분하고 진지하고 웃는 모습도 예쁘고. 교환 덕에 극중 교환이 더 착하게 그려진 것 같다. ‘교환과 정수라는 이 외로운 이들을 우리가 마중 나가보자’는 얘길 나눴다. 물론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는 건 필요하지 않을까.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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