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여자>의 주인공 은희(한예리)는 곤경에 빠졌다. 남자친구인 현오(권율)와 현오 몰래 만나온 이혼남 운철(이희준), 그리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와 얽히고설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 하루 동안에 말이다. 세 남자를 대하는 은희의 얼굴은 어떻게 변해갈까.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이후 오랜만에 장편을 선보이는 김종관 감독을 만나 그 대답을 들어봤다.
-세 남자와 만나며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사람은 상대방과 어떤 관계냐, 처한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매번 다른 면모를 보이게 되지 않나. 그걸 좀 더 극적으로 풀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한예리가 은희 역을 맡았다.
=예리씨는 차분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느낌의 사람이 은희처럼 곤경에서 탈피하기 위해 의뭉스럽게 거짓말을 해나가는 역을 한다면 캐릭터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워낙 연기를 ‘엣지’ 있게 잘하는 배우다. 캐릭터에 대해서 내가 더 말할 게 없을 만큼 예리씨가 정확히 이해하고 현장에 와줬다. 영화 후반에 은희가 무용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무용 전공자인 예리씨가 정말 예쁘게 그 장면을 소화해줬다. 애초에는 컷을 여러 개로 나눠 가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예리씨의 몸짓을 보고 더 갈 것 없이 한번에 오케이를 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남자 캐릭터를 그려갈 때 염두에 둔 면이 있다면.
=이번에 내가 정말 좋은 배우들 덕을 많이 봤다.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를 보면서 반했던 이와세 료는 함께 작업해보니 인품이 정말 훌륭하더라. 물 흘러가듯 연기하고 상대방 연기를 받아내주는 품이 넓다. 권율은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분석해와 정확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라 현오가 가진 유머를 콕콕 짚어내 살려줬다. 이희준은 자기만의 악센트로 운철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만들어줬다.
-서울의 서촌과 남산 일대를 배경으로 유독 걷는 장면이 많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 영화는 걷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 취향의 반영이기도 한데 평소에 걷는 걸 워낙 좋아한다. 혼자 작업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걸으면서 많이 풀기도 하고. 걷는 게 유일한 운동이자 환기의 방편이다. 내 안에 쌓인 게 많을 때면 하루 9~10시간도 걷는다. 걸을 때 생기는 에너지가 있지 않나. 그걸 영화 안으로 가져왔다. 은희도 세 남자를 만나며 계속 걷는데 그때그때의 감정이 걸음걸이에 그대로 드러난다.
-인물들이 걸을 때 재즈풍의 음악을 덧입혀 극의 리듬감을 만들었다.
=심각하지 않은 가볍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려 했다. 눈으로 인물들을 좇아가고 귀로는 음악이 들려오길 바랐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2011)처럼 공간감도 느껴지면서 음악도 풍성하게 들어간 영화면 좋겠더라.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내용으로 스릴러나 하드보일드와 같은 장르물을 해보고 싶었다. 5월 말쯤 6회차 정도의 장편을 하나 찍을 예정인데 그것도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이다. 카페 안에서 오전부터 저녁때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로 임수정,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네 여배우가 주인공이다. 옴니버스식 구성인데 나도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