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실화 영화화, 책임감이 컸다” - <클랜>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
2016-05-17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클랜>은 19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푸치오 가족의 범죄를 그린다. 친구 및 이웃을 납치해 몸값을 받아내는 일을 생계 수단으로 삼았던 아버지와 납치, 고문, 살인을 알면서도 묵인한 가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렸다. <크레인 월드>(1999), <비밀경찰>(2002), <카란초>(2010) 등을 만든 아르헨티나 출신의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은 <클랜>으로 제7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5월12일 국내 개봉한다.

-푸치오 가족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실화를 처음 접한 건 13살 때다. 1985년 푸치오 가족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고, “일가족이 친구들을 유괴•살해했다”는 당시 신문의 헤드라인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사자굴>(2008)을 만들던 때부터 자료조사팀을 꾸려 2년간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푸치오 가족이 몇명을 납치해 죽였는지, 몸값을 얼마나 받았는지와 같은 사건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우리는 푸치오 가족의 ‘일상’을 상세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사건 담당 판사, 변호사, 기자, 피해자 가족, 이웃 등을 만났다. 푸치오 가족은 법적 처벌을 받았지만 법적•사회적 정의가 아닌 보편적 정의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이 기대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실화를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책임감과 무게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아르키메데스의 행동은 물론 아버지의 행동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가족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도 관건이었겠다.

=실제로 이웃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푸치오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무척 평범한 일상을 영위했다. 영화적으로도 그들을 평범한 가족으로 그리는 게 중요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믿고 따르고 존경하기까지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부자 관계의 보편성으로 접근한 측면이 있다. 이 가족의 초상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군부독재 정권에서 민주 정부로 넘어가는 1980년대 초반의 아르헨티나가 시대적 배경이다. 시대적 배경과 떼놓고 푸치오 일가의 비밀스런 ‘가족 사업’을 얘기할 순 없다.

=요즘 시대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푸치오 가족 사건은 썩은 사회의 증상으로도 볼 수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 즉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바람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이 가족의 ‘사업’은 결국 들통난다. 전통적인 스릴러영화였다면 유능한 탐정이 푸치오 가족 일가를 추적했겠지만 이 영화에선 시대의 변화와 체제의 변화가 푸치오 가족의 몰락을 가져온다.

-납치, 감금, 살인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흥겨운 음악이 깔리는 등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이 흥미로웠다.

=우선 음악을 통해 1980년대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당시 크게 히트한 팝송을 영화음악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사실 군부독재 시대에 영어로 된 팝송을 듣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부르주아들은 팝송을 향유하고 있었다. 그런 시대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아르키메데스는 사람들에게 고문할 때 비명을 감추기 위해 음악을 크게 튼다. 그때 레코드를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라디오를 튼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통해서도 시대를 드러낼 수 있었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록펠러가의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고 다닌 인물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고 제목은 <맨 인 더 록펠러 슈트>다. 폭스 서치라이트에서 제작하는 나의 첫 번째 영어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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