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원작을 리메이크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야 알겠지만, 이런 작품이라면 백이면 백은 말렸을 거다. 오시이 마모루의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사이버 펑크물의 시조, 저 멀리 <제5원소>(1997)나 <매트릭스>(1999) 같은 SF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에 당당히 영향을 준 <공각기동대>(1995) 말이다. 할리우드가 <드래곤볼>에 손을 댔다가 폭망한 전적이 있질 않나(<드래곤볼 에볼루션>(2009)). 오죽 했으면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그런 영화가 있었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각기동대>는 물론 그보다 난도가 한 수 위인 도전이다. 니체의 철학을 담은 내용은 2차적인 문제라 쳐도 당장 쿠사나기 소령의 광학미채 슈트는 도대체 어떻게 구현하려고 엄두를 냈을까 싶다. 시각적인 궁금증에 대한 답은 그간에 공개된 예고편을 통해 어느 정도 답이 주어졌다. 촬영 당시 현장을 찾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감독, 배우와 기념촬영을 하고 심지어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 중 가장 화려할 것이다”라는 응원성 멘트를 보냈는데, 그 점으로는 할리우드의 기술력으로 볼 때 지금쯤이면 못할 것도 없다 싶어진다. 사실 이 리메이크에서 배우보다 더 큰 문제로 지적된 건 루퍼스 샌더스 감독이지 않았나 싶다. 전작이 속 빈 강정 같다 혹평받은 블록버스터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이라니, 혹 비주얼만 앞서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당연해질 수밖에. 물론 기준점이 너무 높은 싸움이지만, 애초 ‘화이트워시’ 논란까지 더해지며 우려를 낳았던 스칼렛 요한슨이 홍콩, 마카오, 상하이 등 화려한 마천루를 바탕으로 종횡무진하는 장면은, 일단 예상외로 멋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시각화한 웨타 워크숍의 리처드 테일러가 시각효과를 담당했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진 근미래, 강력 범죄와 테러 사건을 담당하는 엘리트 특수부대 ‘섹션 9’. 첨단 사이버 기술을 보유한 한카 로보틱스를 파괴하려는 범죄 테러 조직을 막기 위한 활약이 펼쳐진다. 이 미래가 복잡다단해지는 건 비단 인류의 존폐가 걸린 거대한 전투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존재인 쿠사나기 소령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깊은 내적 고민에서 출발한다. 철학책을 방불케 하는 내면 속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찰이 고스란히 담겨야 한다. <영 매거진>에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가 발표된 게 1989년. 이후 셀애니메이션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비주얼 충격과 미래 세계에 던지는 심오한 화두로서 오시이 마모루가 연출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신드롬에 가까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지난 30여년간 극장판, TV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등 콘텐츠 하나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토록 철학적이고 화려한 영상을 과연 구현할 수 있을까” 하고 출연에 앞서 고민했다는 스칼렛 요한슨의 말 그대로, 기대 반 걱정 반인 프로젝트다. 감독 역시 원작의 영향력과 방대함에 부담을 느꼈을 텐데. 일단은 “원작이 너무 훌륭해 내가 따로 할 일이 없었다”는 말로 비교적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제작자 마이클 코스티건의 말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버전에 충실한 리메이크”라고. 원작의 아성에 너무 우려만 하기보다 이젠 기대를 더하는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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