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심보르스카는 <유토피아>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명백하게 설명되어 있는 섬. 이곳에서는 탄탄한 증거의 토대를 딛고 서 있을 수 있다. 모든 길은 목적지를 향해 뻗어 있다. 덤불은 정답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오른쪽에는 의미가 보관된 동굴. 왼쪽에는 깊은 신념의 호수… 하지만 이 모든 매력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어서 시는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삶 속으로’ 사람들이 떠나 유토피아라는 이름의 섬은 이제 텅 빈 섬이 되었다는 걸로 끝맺는다. 심보르스카의 유토피아는 또 다른 폴란드 출신의 영화감독인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세계와 유사하다. 의미, 진실, 증거, 이성, 이념을 토대로 존재와 삶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신념이 결국 광기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들 지혜 가득한 현자들은 일찍이 알고 있었던 듯하다.
정치적 영화, 홀란드의 영화
폴란드계 유대인인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폴란드인 저널리스트 어머니와 유대인 공산당 아버지 사이에서 1948년에 태어났다. 체코 영화학교 FAMU를 다닐 때 1968년 프라하 혁명에 가담해서 체포됐고 1981년 폴란드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자유노조운동으로 인한 계엄령 덕분에 80년대 말까지 딸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프랑스에서 영화작업을 해야 했다. 80년대 말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홀란드는 상대적으로 국가 검열과 지원에서 자유로운 서유럽에서 주로 활동을 하게 된다. 2000년대에는 미국의 <HBO> 제작 드라마 연출자로 참여,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2014년 유럽영화아카데미 회장으로 선출되고 2016년 다국적 유럽연합의 제작 자본으로 <스푸어>를 완성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영화예술을 확장시킨 영화에 수여하는 은곰상을 <스푸어>에 수여하면서 홀란드의 유럽으로의 복귀를 환영했다.
홀란드는 아마도 여성감독 중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한 감독일 것이다. 다작의 필모그래피를 분류하기란 쉽지 않지만 돌출된 몇몇 지점들은 분명 있다. 하나는 유대인의 정체성이다. 그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던 <유로파 유로파>(1990)에서 <어둠 속의 빛>(2011)까지 홀란드가 반복해서 다루는 주제는 2차 세계대전에서의 폴란드계 유대인의 삶, 특히 바르샤바 게토에서의 삶이었다. 홀란드는 <어둠 속의 빛> 개봉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보거나 천사 같은 이미지로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들에 진저리가 난다. 유대인들 역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름 없는 희생자 집단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의 캐릭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유로파 유로파>의 솔로몬과 <어둠 속의 빛>의 주인공 페렉은 적과 동지로만 구분되는 전쟁의 도식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들은 죽음 앞의 생에서 선택에 직면했던 한 인간일 뿐이었다.
다만 집단주의의 광기에서 홀란드가 견지하려는 것은 솔로몬의 대사처럼 “나 자신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면 전쟁의 포화는 사라질 것이다. <토탈 이클립스>(1995)와 <카핑 베토벤>(2006)처럼 예술가의 광기를 다룬 작품들 또한 크게 연관 없어 보이지만, ‘예술가 개인의 광기에 가까운 자유가 집단의 맹목적 신념보다는 낫다’는 감독의 시선은 일맥상통한다. 홀란드 영화 경력에서 또 다른 돌출 지점은 그녀가 집단과 대의의 프로파간다 영화와 정치적 영화를 구분한다는 점이다. 홀란드가 보기에 공산주의나 그 이후의 모든 대의 민주주의 정치는 늘 소외와 배제를 낳고 인간(시민, 국민)의 자격과 조건을 되묻게 되는 상황을 낳는다. 폴란드의 또 다른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자 홀란드의 사수였던 안제이 바이다 감독은 레흐 바웬사가 이끌었던 자유노조운동 속에서 <철의 사나이>(1981)를 만들어 바웬사를 영웅시하고 그의 정치적 노선을 옹호한 바 있다. 그러나 홀란드는 “이런 영화들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 외부에 놓여 있는 정치학’을 다루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영화가 아니라 프로파간다 영화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1981년 같은 해에 홀란드는 <외로운 여자>를 만들어 격렬한 자유노조운동 속에서도 빈곤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시당하면서 비참하게 사는 한 미혼모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공산주의와 그에 대한 반대운동이라는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배제당한 인간을 대표하는 하나의 기호로 등장한다. 영화 <올리비에 올리비에>(1991) 또한 남편과 아들이 있어야 가족은 완성된다는 엄마와 그의 소외된 딸의 갈등을 다뤘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에 놓을 수 있는 영화이다. 홀란드는 그렇게 늘 공동체나 공화국에서 ‘나 자신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추방된 자들을 자신의 영화의 주인공으로 불러들여 환대한다.
유토피아의 회복, <스푸어>
홀란드의 가장 최근 연출작이자 이번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한 <스푸어>는 트럼프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지배하는 세계 정세에 대한 홀란드의 정치적 코멘트라 할 수 있다. 스스로를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할 만큼 늘 시대와 역사(에)를 배신(당)한 인간을 다뤘던 홀란드는 <스푸어>에서 생명의 ‘생기’를 통해 지구 유토피아를 회복하려 시도한다. 홀란드는 동시대의 횡행하는 ‘내셔널 포퓔리슴’의 광풍이 거대한 남성 동성지배 카르텔에 있다는 걸 지목하면서 다시 한번 정치적 영화를 빚어낸다. 이제 전쟁은 이념과 신념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과 관습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 요소를 지닌 무정부주의적인 페미니스트 범죄 이야기다.” 홀란드는 자신의 영화 <스푸어>를 이렇게 정의했다. 나치즘과 공산주의 등 집단주의의 억압과 광기를 평생 회의적으로 바라봤던 홀란드가 결국 무정부주의적 페미니스트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은퇴한 교각 기술자이자 아마추어 점성술가이며, 방과 후 영어 교사인 주인공 두쉐이코는 버섯 채취꾼, 체코의 곤충학자, IT 기술자이자 미니멀리스트, 구러시아에서 온 이민자 여성 등 주변부 인물과 함께 숲의 유토피아를 만든다. 결국 홀란드가 만든 <스푸어>의 숲은 마치 디스토피아 같던 심보르스카의 유토피아를 숨과 생기로 되살린 태곳적 유토피아의 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