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프로젝트⑥] <바람 바람 바람> 이병헌 감독 - 고전 코미디의 클래식한 느낌에 제주도를 얹어
2018-01-08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바람 바람 바람>

감독 이병헌 / 출연 이성민, 신하균, 송지효, 이엘 /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 배급 NEW / 개봉 2018년 상반기

● 시놉시스_ 바람 많은 제주도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석근(이성민)은 다른 의미의 바람에 있어 전설적인 존재다. 부인 담덕(장영남)에게 소홀한 것은 아니지만 연애 사업에 부지런히 열과 성을 쏟는다. 반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석근의 매제 봉수(신하균)나 그의 아내 미영(송지효)은 별 사건 없이 미풍처럼 흘러가는 일상을 보낸다. 어느 날 석근과 봉수 앞에 매력적인 여자 제니(이엘)가 나타나고, 제니를 둘러싼 두 부부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 포인트 : 배우들의 연기, 기존 이미지의 반전_ “아마 연기 면에 있어 계속 회자될 만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이병헌 감독이 인터뷰 중 가장 자신 있게 말한 대목이었다. 이성민과 신하균이 “어마어마한 베테랑”이라면, “송지효의 편한 이미지는 전개상 반전을 갖고 있는 미영의 캐릭터와 만날 때 효과가 기대된다”고. 특히 각색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제니를 연기한 이엘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래도 감정이 좋기로 유명했지만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배우다. 어떤 디렉션을 줘도 다 받아서 해낸다. 현장에서 굉장히 놀라고 감동받았다.”

이병헌 감독

“어제 <신과 함께-죄와 벌>을 봤는데 불륜은 7개 지옥에 모두 걸리겠더라. 불지옥 S석을 예매해야 한다. (웃음)” <바람 바람 바람> 개봉을 준비 중인 이병헌 감독이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바람 바람 바람>은 제주도에 사는 두 부부에게 닥친 ‘바람’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코미디영화다. 전작 <스물>(2015)의 40대 버전이라고 하기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뚜렷하다.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작보다 냉정해졌고 캐릭터가 가진 욕망도 명확하다. “아무래도 이제 막 책임을 짊어진 세대와 책임감을 안고 몇 십년을 살아온 세대의 고민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눌수록 오해는 덜고 호기심은 더했던 그와의 만남을 전한다.

-<힘내세요, 병헌씨>(2012), <스물>들과 달리 직접 구상한 시나리오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체코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2011)의 리메이크를 제안받았다. 원작을 봤는데 한국 정서로는 좀 풀기 힘든 톤의 코미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엔딩의 잔상이 남고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생기더라. 흔히 볼 수 있지만 불편해서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복잡한 감정에 항상 관심이 있다. 이런게 오히려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생각도 들고. 원작의 톤으로는 안 되겠지만 내가 해볼 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작사 대표님을 만났다. 좀더 차가운 톤으로, 감정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또한 주인공들이 계속 부정적인 일을 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이 원작에 별로 표현되지 않아서 여기에 좀더 접근하고 싶었다.

-그런데 불륜이라는 소재 자체가 관객을 헷갈리게 할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마치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당연히 내 의도가 올곧이 전달되는 게 궁극적인 연출 목표다. 하지만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애쓰다 보면 이야기가 갖고 있는 톤 앤드 매너가 무너져 촌스러워지고 오히려 역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과하거나 덜하지 않게, 처음에 생각했던 감정의 밸런스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 대사 없이 이미지만으로 인물들이 처한 불편한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게 의도한 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원래 영화 만드는 작업은 모험이기도 하지 않나. 영화가 공개되면 이런 것에 대해 평가받는 재미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가능한 작품이다.

-시나리오에서 두 남자를 흔들어놓는 제니(이엘)의 몸매가 육감적으로 묘사되는 장면이 있더라. 연출을 잘못하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하고 실제로도 신경을 써서 연출했다. 원작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거의 벗고 나온다. 상황이 아닌 감정에 집중해 각색하니 그런 노출이 필요가 없어지더라. 오히려 내가 어렵게 만들어둔 감정을 시각적 자극에 빼앗기기 싫은 거다. 아직 내가 힘 있는 감독이 아니라서 투자사를 설득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웃음) 당구장 신에 그런 묘사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지만 제니가 가진 현재의 감정을 생각해 이해되고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외 촬영이나 편집에 있어 참고한 부분이 있다면.

=빌리 와일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등이 만든 고전 코미디를 좋아한다. 정확하게 레퍼런스를 두고 작업하지는 않았지만 잔상으로 남아 있는 클래식한 이미지들이 <바람 바람 바람>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가령 식탁 아래 움츠려 숨어 있는 남자의 이미지 같은. 음악도 그런 느낌을 내려고 했다.

-제주도에서 촬영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일탈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 좀 이국적인 분위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 그리고 주요 인물이 여섯명 정도라 이들을 한정된 공간에 몰아넣고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사실 가장 원했던 것은 제주도의 차가운 이미지다. 흔히 제주도 하면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는데 의외로 쓸쓸하고 어두운 면도 갖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 바람 바람>의 냉정함과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겨울에 촬영하려고 했다. 그런데 크랭크인이 살짝 밀리면서 의도한 이미지는 담지 못했다.

-결국 <바람 바람 바람>은 ‘바람’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 작품일까.

=예전에 어떤 시사 프로그램을 보는데 발길을 들이지 말아야 할 곳에 가는 유부남들이 하나같이 하는 변명이 똑같더라. 외로워서 그랬다고. 도대체 왜 결혼을 하면 외로워질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결혼제도에 서로 합의하는 순간 책임이 되는데, 그 책임이 무거워지면 외로워진다는 건지. 그렇게 당위성을 들이밀려고 하는데 사실 말이 안 된다.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이혼이라는 제도가 있지 않나. 결혼이 책임이라면 불륜은 죄악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분명한 피해가 있다. 그런데도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않고 다른 것을 취하려고 하는 뻔뻔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굳이 이 영화에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이거다. 절대 죄악에 대한 당위는 외로움 안에서 건져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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