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⑦] <변산> 이준익 감독 -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를, 힙합으로 말하기
2018-01-08
글 : 이주현 | 사진 : 백종헌 |
[프로젝트⑦] <변산> 이준익 감독 -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를, 힙합으로 말하기

<변산>



감독 이준익 / 출연 박정민, 김고은 / 제작 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 배급 메가박스플러스엠 / 개봉 2018년 상반기



● 시놉시스_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 6년째 도전하고 있는 무명의 래퍼 학수(박정민)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 변산으로 향한다. 학수에게 변산은 악연의 기억으로 가득한 곳이다. 학수는 동창생 선미(김고은)를 비롯해 고향 친구들을 만나고, 금방 서울로 돌아오려 했던 계획도 꼬이고 만다.



● 포인트 : 촌스러움의 미학_ <변산>의 정서는 <라디오 스타>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일단 주인공이 가수라는 게 비슷하고, 촌스러운 게 비슷하다”고 말했다. <라디오 스타>가 강원도 영월이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변산>은 전라북도 변산이라는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준익 감독은 “촌구석 인물들이 나오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그게 촌스럽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변산> 역시 촌스러움의 미학을 지닌 영화란 얘기다.



이준익 감독

최근 <사도>(2014), <동주>(2016), <박열>(2017)까지 세 편째 시대극을 만들었던 이준익 감독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현대극 <변산>은 동시대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음악 장르 힙합의 정신과 촌스러움의 정서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다. <변산>의 주인공은 무명의 래퍼 학수(박정민). 주인공의 직업 때문에 ‘힙합영화’로 오해하기 쉽지만 힙합은 하나의 소재일 뿐 영화는 외면했던 과거를 마주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준익 감독을 만나, <라디오 스타>(2006)와 비슷한 정서의 영화라는 <변산>에 대해 솔깃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동주> <박열> <변산>까지 일년에 한편씩 부지런히 영화를 완성해 선보이고 있다.



=2017년엔 두편이었다. (웃음) <박열>은 1월에 크랭크인했고 <변산>은 9월에 크랭크인했으니까. 누가 영화 찍으라고 쫓아오는 건 아닌데, 워커홀릭인가보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내 재능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이 아니다. <변산>이 벌써 13번째 영화다. 그 정도 찍으면 재능은 바닥난다. 그럼 뭘로 찍느냐. 같이 작업하는 동료 배우, 동료 스탭들의 재능과 욕망이 동력이 된다. 나는 그들의 재능과 욕망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감독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고.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일년에 한편씩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한지도 모른다.



-<변산>은 어떻게 기획한 영화인가.



=4~5년 전에 <변산> 시나리오를 받고 연출 제안을 받았다. 애초 주인공의 직업은 단역배우였는데 직업도 래퍼로 바꾸고, 각색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그런데 준비하면서 몇번을 엎었다. 그러다 <박열>이 끝나고 만들게 됐는데, <소원>(2013), <사도> <동주> <박열>까지 가슴 아프고 진지한 영화들을 만들었으니 내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고 아팠겠나. 그 감정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었다. <변산>이 대놓고 코미디는 아니지만 캐릭터들의 위악적 행동이 빚어내는 역설적 정서들을 표현하는 게 흥미로웠다.



-무명의 래퍼 학수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고향 변산에 내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위악적 캐릭터란 표현을 했는데, 한줄 시놉시스로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본질은 자신의 과거와의 화해다. 사람들은 자기 과거의 불편한 순간들을 외면하거나 도망치거나 견디면서 산다. 그런데 래퍼의 스피릿이란 건, 힙합정신이란 건 내면의 고백이다. 자기 내면의 고백인 랩 가사를 보면 끊임없이 자신과 부딪히는 조건들을 얘기하고 있다. 때론 그것이 사회이고 때론 그것이 가족이다. 그리고 랩 가사는 자기 경험적이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불화, 관계의 불화를 표출한다. 그런 직설적 고백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위악적 형태의 가사가 많다. 학수는 욕망의 무대인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만을 바라보고 과거를 외면해온, 충혈된 욕망덩어리다. 욕망은 과거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결핍, 과거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성숙하지 못한 상태가 돼버린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화해하는 이야기다.



-김고은이 연기하는 선미는 어떤 캐릭터인가.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자신이 받은 상처만 기억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 때문에 상처받는다. 일방적으로 주는 상처도 없고 일방적으로 받는 상처도 없다. 그걸 인지할 때 성숙해진다. 모든 인간은 성장을 꿈꾸지만 성장은 어느 순간 멈춰야 한다. 성장을 멈추고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상처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을 통해 성숙한다. 선미는 학수를 성숙의 과정으로 나아가게 하는 인물이다.



-이준익 감독이 표현하는 힙합, 이준익 감독이 그리는 래퍼는 어떨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 영화에서 가장 힙합정신이 살아 있는 영화는 <왕의 남자>(2005)다. (웃음) 광대 장생(감우성)이 극중에서 하는 사설이 곧 힙합이다. 힙합의 정신도 저항, 록의 정신도 저항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사회적 권력에 저항하려는 비주류들이 있었고, 그들의 정신을 담은 문화가 광대들의 놀음으로, 록으로, 재즈로, 힙합으로 표현됐다.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2007), <님은 먼 곳에>(2008) 모두 록을 베이스로 한 영화인데, 벌써 10년 전에 나는 록과 관련한 영화를 세편이나 찍었다. 이번엔 그것이 힙합이라는 장르로 바뀐 거고, 영화의 정신은 비슷하다. 근데 힙합을 내가 하냐고. 박정민이 하지. (웃음)



-박정민의 랩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동주> 쫑파티 때였나. 박정민이 랩을 하는데 정말 잘해서 깜짝 놀랐다. <변산>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이건 박정민이다’ 생각하면서 썼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랩도 박정민이 직접 썼다. 가사의 라임이 수준급이다. 참고로 랩 코치는 래퍼 얀키가 했다.



-<박열>의 최희서 배우도 크게 주목받고, 조연출 출신 장창원 감독도 <꾼>으로 데뷔하고, 뿌듯한 2017년이었겠다.



=뿌듯하다고 생각 안 한다. 굳이 나와 작업하지 않았어도 다들 잘될 인물들이었다. 자기들이 스스로 이룬 건데 내가 왜 뿌듯하나. 그냥 다행인 거지. (웃음)

이어지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