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BIFAN에서 만난 사람들⑥] <11월> 라이네르 사르넷 감독
2018-07-25
글 : 김소미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이미지의 순수한 힘을 믿는다

19세기 에스토니아의 시골 여성 리나가 겪는 사랑의 광기를 담은 <11월>은 에스토니아의 신화와 민속을 거쳐 예측할 수 없는 주술적 세계를 펼쳐낸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친숙한 동화를 해체하려는” 라이네르 사르넷 감독의 의도대로 “대사보다는 내면의 이미지를 강화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백치>(2011)로 그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적 있는 사르넷 감독은 해외에서 보여준 의외의 환대에 기쁨을 표하며 “소통 방식이 다를 뿐 모든 영화는 만든 이의 영혼에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에스토니아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안드루스 키비랙의 소설에 매혹된 이유는 무엇인가.

=무신론자인 키비랙은 ‘신’(God)이라는 이름으로 신문 칼럼에서 독설을 서슴지 않는, 대중적인 동시에 매우 논쟁적인 작가다. 그의 소설 <11월>은 친숙한 민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이 노인에게 우유를 훔치는 식의 탐욕에 관한 우화라고 볼 수 있다.

-망령, 늑대인간 등 다양한 호러, 판타지 장르적 요소가 등장하고 그중 살아 움직이는 농기구 ‘크랏’은 매우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현대로 치면 커피 머신이나 청소기 같은 것 아닐까. (웃음) 다만 민간 전설 속 존재인 크랏은 좀더 잔혹하다. 각종 농기구와 동물의 뼈가 결합한 형상을 하고서 끊임없이 일거리를 요구한다. 넓은 범주에서 보자면 자본주의, 성과주의의 횡포를 겪는 현대인에게 보편적인 풍자로 다가갈 수도 있다.

-다양한 신화가 섞여 있다는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민족’이라 불리는 에스토니아의 무신론적 문화가 작용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특정 종교성에 수렴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컨셉이었다. <11월>은 타 유럽 국가에서 유입된 기독교적 가치와 에스토니아의 민족적 상상력이 공존하는 세계다.

-대사를 최소화하고 시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이유는.

=옛날 아르메니아 감독들의 영화가 큰 영감을 주었다. 이미지를 하나씩 열거해나가는, 매우 경제적인 동시에 기이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그밖에 신도 가네토 감독의 호러 <수풀 속의 검은 고양이>(1968), 짐 자무시 감독의 <데드맨>(1995)의 흑백 화면을 눈여겨봤다.

-비관습적인 서사 구조로 인해 제작 지원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겠다.

=시나리오를 통해 완성본을 추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시 말해 예술영화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세번의 도전 끝에 에스토니아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고전적인 스토리텔링만 추구하다보면 새로운 영화가 나올 수 없다. 제작 과정은 힘겨웠지만, 네덜란드와 폴란드 영화인들과의 공동제작을 통해 좋은 인력을 보강할 수 있었다.

-현재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11월>을 완성한 이후에 연극 한편을 연출했다. 지금까지 무대에 올린 연극 작품은 총 5편이다. 휴식기를 조금 가진 뒤에 천천히 새 각본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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