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기 감독은 <숫호구>(2011), <시발, 놈: 인류의 시작>(2016) 두편으로 가내수공업 저예산 C급 코미디의 새 장을 열어젖혔다. 날것을 넘어 상한 것 같은 유쾌한 충격을 안겨줬던 그의 재기발랄함은 세 번째 장편 <오늘도 평화로운>에서도 여전하다. 심지어 ‘영화 만들기’와 ‘취향’에 대한 자신의 색깔이 더욱 뚜렷해진 느낌이다.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이후 세 번째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을 만들기까지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차기작에 대한 고민으로 잠시 슬럼프에 빠져 있던 무렵, 노트북 중고거래를 사기당했다. 뭐랄까, 정말 ‘뒤지고’ 싶었다.
-그 덕분에 자신의 경험담이 강하게 투영된 영화가 완성됐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150만원 주고 샀다고 마음먹었다. 이를 전화위복 삼아 영화에서라도 복수해보자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노트북 사기 범인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마치 시리즈처럼 영어 원제가 전작들과 맥을 같이한다.
=<숫호구>가 ‘슈퍼 버진’,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이 ‘슈퍼 오리진’이고 이번 영화가 ‘슈퍼 마진’이다. 원래는 사기꾼들의 이득과 노트북 사기사건이 주인공 영준에게는 전화위복이 된다는 의미를 담은 <개이득>으로 지으려다가 전편들과의 일관성을 택했다.
-전작들보다 제작비가 커지고 있는 건가. 프로덕션 규모가 남다르다.
=늘 독학으로 찍었기 때문에 예산이 없었다. 게다가 노트북 사기까지 당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그래서 SNS에 사연을 올리고 스탭들을 구인했더니 기적처럼 하나의 사단이 꾸려졌다. 출연배우 대부분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해주었다.
-이번 영화는 <아저씨> <해바라기> <달콤한 인생> <테이큰> <원티드> 등 다양한 복수극을 레퍼런스로 활용한다.
=그리고 완벽한 우상, 주성치를 빼놓지 않았다. 특히 <희극지왕>과 <파괴지왕>을 절묘하게 오마주하기도 했다. 이들 영화를 내 색깔에 맞게 담아내겠다는 의도였다.
-영준 역의 배우 손이용과는 세편 모두 함께했다.
=연기전공자가 아님에도 감각과 센스가 뛰어나서 계속 함께 작업한다. 페르소나를 넘어서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페로몬 같은 존재다.
-데뷔작부터 꾸준하게 표방해온 백승기식 연출세계는 계속 유지되는 것일까.
=영화로 장난치냐는 시선도 있지만 나만의 예술적인 표현 열망은 분명 있다. 배급도 잘 안 되면 나만의 새로운 배급 활로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꾸러기도 어른이 되겠지만 그 정신은 잃고 싶지 않다.
-전작 <시발, 놈: 인류의 시작>에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오마주한 줌아웃 장면에 비견할 만한 ‘커밍순 극장 간판’ 줌인 장면에서는 차기작을 향한 어떤 염원이 느껴진다.
=영화를 꿈꾸는 청년의 복수극을 표방하지만 한편으로는 백승기식 청춘 성장 영화이기에 다음 성장을 기대하게 만들고 싶었다. 늘 찍고 싶다 이야기했던 우주 배경의 영화를 언젠가는 꼭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