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호러퀸 바버라 크램턴이 BIFAN을 찾았다. 스튜어트 고든의 <리애니메이터>(1985), <지옥 인간>(1986), <사탄의 테러>(1995) 등에 출연하며 스크림 퀸으로 이름을 떨친 바버라 크램턴은 <썬 초크>(2015), <나를 찾아봐>(2015), <비욘드 더 게이츠>(2016) 등에 출연하며 최근까지도 호러영화의 아이콘으로 활약 중이다. 올해 BIFAN은 ‘부천 초이스: 장편’ 심사위원으로 바버라 크램턴을 초대했다. 그녀의 대표작 <지옥 인간>의 특별상영과 메가토크 행사도 마련했다. 30여년 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금발의 단발머리를 하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바버라 크램턴은 장르영화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한국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열정적으로 피력했다.
-‘부천 초이스: 장편’ 심사위원으로 BIFAN을 찾았다.
=그동안 BIFAN을 스토킹하고 있었다. (웃음) 그만큼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BIFAN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판타스틱페스트에서 남종석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BIFAN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심사위원으로 초대해주었다. 꿈이 이루어졌다. (웃음)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인다. 개막식날 심사위원 대표로 무대에 섰을 때도 한국 장르영화들이 보여주는 깊은 감정과 울음(the crying)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연기할 때를 생각해보면, 감정을 완전히 보여주는 대신 억누르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엔 <나를 찾아봐>에서 아들을 사고로 잃은 엄마를 연기했는데, 깊은 슬픔을 표현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감독은 내가 울음을 터트리지 않고 참길 바랐다. 더 울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감독의 대답은 ‘노노노’. (웃음) 반면 한국영화는 슬픔과 분노 등 본연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영화에 우는 장면이 들어 있다. 그런 감정 신들이 신선하다. 영화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괴물>(2006)의 장례식장 장면에서 가족들이 복잡한 감정으로 우는 장면이라든가, <부산행>(2016)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공유)가 우는 장면이라든가. 그들의 오열이 인상적이다. 그 감정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심사위원으로서 많은 영화를 볼 텐데, 어떤 기준으로 심사할 계획인가.
=어떤 주제,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감독 자신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전이 분명해야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진실 또한 잘 드러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이야기를 잘 끌고 갈 수 있는 좋은 배우도 그 요소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는 내러티브가 강한 영화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다이내믹한 영화들.
-영화제 기간에 <지옥 인간>도 특별상영된다. 스튜어드 고든 감독과 함께 작업한 <리애니메이터> <지옥 인간>을 통해 ‘할리우드 호러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지옥 인간>이 만들어진 지 35년이 흘렀는데도 사람들이 여전히 이 작품을 기억해줘서 고맙다. 사실 호러영화로 주목받았지만 내가 호러를 택한 것은 아니다. 호러가 나를 선택했다. 두편의 영화를 하면서 호러 장르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호러 안에선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고,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을 구현할 수 있다. 장르의 매력을 알게 된 뒤엔 단지 장르영화의 단골 배우가 아니라 호러장르의 팬이 되었다. 실제로 <지옥 인간>에서 연기한 캐서린 박사는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 캐릭터였다. 불안한 감정에 휩싸인 박사였다가, 섹시한 팜므파탈이었다가, 세상을 구하는 히로인이기도 했으니까. 배우로서 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자 나의 가능성을 세상에 보여준 작품이다. <리애니메이터>와 <지옥 인간>이 많은 관심을 받고 이후 호러영화의 클래식이 되면서 나도, 스튜어트 고든 감독도 그리고 함께 출연한 제프리 콤스도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서 제프리 콤스, 스튜어트 고든과 나는 지난 30여년 동안 서로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셋의 공통점은 모두 연극으로 경력을 시작했다는 거다. 스튜어트 고든도 오가닉 시어터라는 극단을 운영했고, 제프리 콤스도 캘리포니아에서 연극을 했고, 나도 오프오프브로드웨이 무대를 경험했다. 비슷한 배경 덕에 서로의 스타일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함께 좋은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리애니메이터>에서의 모습 그대로 금발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할리우드 호러영화의 여주인공은 종종 금발의 백인 미녀로 등장하곤 하는데, 혹시 과거 호러영화에 출연할 당시 스튜디오나 감독이 원한 특정한 이미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제이미 리 커티스나 대니얼 해리스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나. 꼭 금발의 백인 미녀만 호러영화에 나왔던가 싶다. <리애니메이터>의 경우 스튜어트 고든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내 헤어스타일이 단발이었고, <지옥 인간>에선 변화를 주고 싶어서 파마를 했다. <나를 찾아봐>에선 머리를 짧게 잘랐고 어둡게 염색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TV드라마 작업을 하는데, 헤어스타일을 바꿔볼까 했더니 연출자가 금발의 단발머리가 나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라고 그냥 두라더라. 내 이미지가 특정 스타일로 고정되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스크림>(1996)에서 드루 배리모어와 나를 비교하기도 한다. <스크림>에서 드루 배리모어가 금발의 보브 헤어를 하고 터틀넥 니트를 입고 전화를 받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내가 <리애니메이터>에서 보여준 모습의 오마주라고 하더라. 어쨌든 내가 초기의 호러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는 감독이 특정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기보다 내가 가진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에 가깝다.
-창의적인 장르영화 감독들과의 작업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인디신에서 창의적인 신진감독들과 많이 작업했다. 어떤 감독은 꼼꼼하게 하나하나 연기 지도를 하고, 어떤 감독은 배우가 준비한 대로 편하게 연기하게 해준다. 감독들의 언어가 모두 다르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서 내가 배운 건 융통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