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만 관객 동원으로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기록할 만한 성과를 보여준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의 오성윤 감독과 이춘백 애니메이션 감독이 6년의 제작 기간을 거쳐 신작 <언더독>으로 돌아왔다.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언더독>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유기견 뭉치(도경수)가 동료들과 자유의 땅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담았다. 두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직접 차린 회사 ‘오돌또기’에서 각본을 쓰고, 처음 3D애니메이팅 기술에 뛰어들어 “진검승부를 본 작품”이다. 장편애니메이션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그 어떤 경쟁작도 아닌, 자신들의 전작을 뛰어넘는 것이 숙제였다. “세고, 빠르고, 잔혹하지 않아도 성인 관객이 재밌게 볼 수 있는” 가족애니메이션을 위해 달려온 오성윤·이춘백 감독을 영화제 개막식 전날 만났다.
-오랜 기간 매진한 작품의 첫 공개를 앞둔 심정이 어떤가.
=오성윤_ 총 6년의 작업 기간 중 3년째부터 콘티로 비디오보드를 만들어서 가편집본처럼 봐왔다. 한 영화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판단이 안 되는 일종의 마비 증상이 온다. 불안하기는 한데 블라인드 시사에서 좋은 반응이 나와서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 뭉치가 드넓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발돋움하는 과정을 뭉클하게 그렸다.
오성윤_ 펫숍의 케이지, 개공장의 울타리, 산속의 입산 금지 철망 등 <언더독>은 계속 경계를 뛰어넘는 이야기다. 유기견으로서 선험자인 짱아가 뭉치를 처음 맞이할 때 “이제 너의 주인은 너야”라고 말한다. 난 그 말이 굉장히 좋다. 우리는 대체로 세상사에 쉽게 휩쓸려 다니지만, 촛불혁명처럼 생각대로 일궈낸 일들도 있다. 영웅 서사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전작의 성공에 비해 투자와 제작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오성윤_ 시장에서 원하는 그림은 애완견의 이야기를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풀어내는 거였다. 소외당하는 유기견 이야기를 건드리니까 불편할 수도 있다고 본 것 같다. 틀을 반드시 지키되 풍자와 우화로 다가갈 수 있게 신경 썼다.
=이춘백_ 리얼리즘을 추구하다 보니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곳곳에 품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반란을 집어넣고 싶었는데 가족영화에 맞는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계획보다 많이 순화됐다.
-보더콜리 뭉치를 비롯해 시추, 셰퍼드, 치와와 등 영화에 등장하는 견종은 어떤 회의 끝에 결정되었나.
오성윤_ 많은 유기견이 대부분 펫숍에서 강아지 때 분양되었다가 크기가 커지면서 버림받는다. 양몰이 견종이라 아파트에서 키우기 힘든 보더콜리도 여기에 포함된다. 강인하고 똑똑한 견종이기도 해서 자연에서 새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뭉치가 산에서 염소 몰이를 하는 장면은 살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성대로 움직인 결과다.
이춘백_ 시추 짱아의 경우 애초에 박철민 배우를 생각하고 만든 캐릭터다. 사람들이 많이 키우는 견종도 유행처럼 시기별로 변하는데, 작업 초기인 5~6년 전에는 거리에 몰티즈와 시추가 가장 많았다. 사람들에게 보편화된 견종을 찾고 싶었다.
-도경수, 박소담, 박철민 등 스타들의 목소리 연기를 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심지어 개들의 얼굴에서 묘하게 배우가 떠오른다.
이춘백_ 특히 뭉치가 도경수 배우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콘티를 그리기 전에 캐스팅을 완료했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그림에 반영이 되지 않았을까. (웃음)
-영화 후반부에 뭉치와 동료들이 만나는 부부는 이효리, 이상순 부부를 떠올리게 하더라.
오성윤_ 사실은 목소리 캐스팅을 하려고 요청했는데 아쉽게 스케줄 문제로 성사가 잘 안 됐다. 캐스팅 불발 후 애니메이팅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캐릭터 생김새가 이상순씨와 너무 비슷하게 나와버렸다. 블라인드 시사 후 이상순씨와 닮았다는 반응이 많아서 급하게 다시 연락을 해 양해를 구했다.
-전작과 달리 3D애니메이팅 기술을 도입해 변화를 꾀했는데.
오성윤_ 단적으로 그룹 숏의 질적 차이를 예로 들 수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화면 안에 담기는 캐릭터가 많아야 두명이다. <언더독>은 그룹 숏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 과거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주변부 캐릭터들은 눈만 깜빡였다. (웃음) <언더독>에선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리액션을 부여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이춘백 감독이 인물의 표정을 만드는 페이셜 작업에 공을 들였다.
이춘백_ 극영화에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캐릭터가 더욱 구체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애니메이션은 스토리보드를 짜면서 캐릭터가 살아난다. 나는 항상 거울을 옆에 두고 내 얼굴을 보면서 작업하는 편이다. 상황별 표정을 직접 시뮬레이션을 하다보면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오돌또기가 추구하는 2D의 손맛과 3D의 기술력을 결합한 건가.
오성윤_ 그래서 2.5D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웃음) 오랜 시간 한국 애니메이션만의 탈출구를 찾기 위해 고심했다. 결국,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회화적 가치 또한 높이는 수밖에 없겠더라. 한국 관객은 눈높이가 많이 높아진 상황이다. <언더독>은 픽사, 디즈니, 지브리 혹은 한국의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해 분명히 새로운 결이 나왔다고 자부한다. 그림이 주는 선한 느낌이랄까. 편안함이 있다.
이춘백_ 우리나라의 풍광, 한국적인 면모를 다루고 싶었다. 회화의 느낌을 살려 손으로 그린 배경 그림과 3D 캐릭터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신경썼다. 여러모로 전작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역동적이다.
-<언더독>은 극장에서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북한 상영회 혹은 남북한 동시 개봉을 향한 포부 또한 밝혔다.
오성윤_ 배급사 NEW와 겨울방학 즈음으로 이야기를 한 상황이다. 북한 상영은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어서 조심스럽다. 내용상 북한에서 상영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영화진흥위원회 등에 건의 중이고, 내년에 개최되는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조직위원장인 문성근 선배에게도 넌지시 바람을 드러낸 적 있다.
이춘백_ 제작비 100억원을 훌쩍 넘는 대작들이 극장을 장악 중인 상황에서 우리 영화는 말 그대로 언더독 아닌가. 사람들이 약자라고 믿는 쪽을 응원하게 된다는 언더독 효과가 우리에게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