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극장>은 전지희 감독이 마흔살에 쓴 첫 장편 시나리오다. “영화과를 졸업하긴 했는데 영화계에서 일하지는 않았다. 광고쪽에서도 일이 잘 안 풀리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명필름랩에 응모한 시나리오가 당선되면서 그의 첫 영화가 탄생했다. 사법고시 장수생 기태(이동휘)는 원치 않게 고향에 내려오게 된다. 그가 소개받은 일터는 오씨(이한위)가 직접 그린 포스터가 걸리고 방송국에서 희귀 문화재 체험하듯 가끔 취재도 오는 ‘국도극장’. 그리고 고향에서 초등학교 동창 영은(이상희)을 만나면서 기태는 나름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자존감이 가장 떨어졌을 때 자신 있게 이입해서 만들었다”는 <국도극장>은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감정의 파고가 곳곳에 녹아 있다.
-사법고시 장수생을 주인공으로, 영화의 주 배경을 오래된 극장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사법고시가 곧 폐지된다는 뉴스가 한창 나올 때,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 시험에 온 인생을 걸고 달려온 이들은 참 절망적이겠다고 생각했다. 로스쿨을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등록금도 아주 비싸지 않나. 당시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며 품었던 생각이 기태 캐릭터로 이어졌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 장면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배경은 극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 있는, 주인공의 고향에 있는 극장으로 설정을 잡았다. 기태가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국도극장과 함께 지나가는데, 사람은 아니지만 하나의 캐릭터처럼 기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너무 존재감이 부각되지 않으면서 편안하고 느린 곳이었으면 했다.
-촬영은 어디에서 했나.
=앞서 설명한 이유로 너무 개성이 강하거나 관광지 같은 곳은 지양했다. 나른하고 한적하고, 늘 거기에 있을 것 같은 공간이 필요했다. 내외부를 나눠서 촬영하면 효율적이지 않아서 함께 찍을 수 있는 곳을 많이 찾아봤는데,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거의 없더라. 어쩔 수 없이 극장 내부와 외부를 각각 다른 곳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국도극장의 외관은 기태의 고향이기도 한 벌교에 있는 문화재 건물에서 찍었다. 과거 금융조합 건물이었다가 지금은 전시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내부는 광주극장에서 촬영했다.
-국도극장 간판이 <흐르는 강물처럼>(1992), <첨밀밀>(1996), <박하사탕>(1999) 등의 작품으로 바뀐다.
=그때그때 기태의 처지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을 반영한 리스트다. 고향에 돌아오는 것도, 극장에서 일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던 기태의 상황과 다르게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라’고 한다든지. (웃음) 거기에 붙는 카피가 ‘어느 미국 가정의 이야기’인데, <국도극장>은 ‘어느 한국 가정의 이야기’라는 것도 재미있고. 기태와 영은의 감정이 살짝 변하는 시기에는 <첨밀밀>로 간판이 바뀐다. <첨밀밀>에 “우린 좋은 친구가 맞지 않느냐”며 오히려 전과 다른 감정이 생긴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지 않나. 오씨와 기태가 담배를 피울 때는 <박하사탕> 포스터를 통해 ‘인생은 아름답다’는 코멘트를 던진다.
-‘서울’이 가진 의미를 특정하게 설정한 것이 눈에 보인다.
=아무래도 세속적인 성공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물론 시골에서 부농으로 거듭나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겠지만(웃음), 일반적으로는 도시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어 하니까. 기태가 그토록 싫어했던 고향은 시골이다. 그래서 국도극장에 오기 싫어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이곳의 편안함에 스며든다. 사실 기태의 본성은 이쪽에 가까웠는데, 본인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을 억지로 끌어내면서 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태와 영은, 오씨 등 캐릭터는 쉽게 이입이 가능한, 우리와 심적 거리가 가까운 인물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들 중 누구와 가장 닮은 것 같나.
=<국도극장>에는 우리가 조금씩 갖고 있는 속성을 극대화해놓은 캐릭터들이 나온다. 다들 밖에 나가서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집에서는 괜히 소리 지르고 하지 않나. 그런 면이 녹아 있는 기태는 항상 패배감에 젖어 있고,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낮다. 오씨도 기태와 비슷한 면이 있어 서로 동질감과 동료애를 느끼게 된다. 영은은 기태와 대조된다. 자기가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하게 하고, 남들이 보기에도 자존감이 강하다. 사실 나에게 영은은 이상향이고, 기태를 가장 많이 닮았다. 그런데 친구들은 “넌 오씨랑 제일 많이 닮았다”고 한다. (웃음)
-이동휘, 이상희, 이한위, 신신애 등 출연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이상희는 독립영화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지만, 다른 배우들은 주로 상업영화나 드라마에 얼굴을 비췄다.
=이동휘는 <국도극장>을 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해왔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동룡 캐릭터 이미지가 강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진지하더라. 다른 면을 봤다. 열정을 갖고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얘기해주시니, 나로서는 정말 감사해하며 함께하게 됐다. 이상희 배우도 먼저 연락을 줬다. <연애담>(2016), <누에치던 방>(2016) 등을 보면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배우라, 역시 감사할 뿐이었다. 신신애 선생님은 허진호 감독님의 <봄날은 간다>(2001)와 <행복>(2007)에서 본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 튀지 않으면서 영화에 잘 묻어나는 연기를 하셔서 <국도극장>의 톤에 잘 어울릴 거 같았다. 이한위 선생님은 나에게 늘 어깨가 축 처져 있는 뒷모습으로 기억되던 배우다. 그래서 오씨의 성격과 잘 어울릴 거라고 봤다.
-중간중간 유머를 넣어 극의 긴장을 풀어주는 점이 눈에 띈다.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과 처음 본 사람의 웃음 포인트는 좀 다른 것 같다. 나는 편집하다가 기태의 친구 상진(서현우)이 순댓국집에서 아내를 소개하면서 “서울 여자야”라고 말하는 신에서 가장 많이 웃었는데, 전주국제영화제에 온 관객은 오히려 이 장면에서는 안 웃더라. 꼭 웃겨야겠다는 의지는 없었지만 인생이란 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제3자가 봤을 때 드라마에 너무 깊게 몰입하지 않았으면 해서 아이러니한 웃음을 넣었다.
-차기작은.
=생각하는 아이템이 몇개 있긴 하지만, 어떤 시나리오를 먼저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국도극장> 같은 톤의 작품을 하게 될 것 같다.
● <국도극장>의 이 순간!
“기태와 엄마가 유람선에서 얘기하는 신. 원래 서로 마음을 표현하는 관계는 아니었는데, 이별을 앞두고 감정이 살짝 삐져나오는 것을 두 배우가 잘 표현해줬다. 특히 신신애 선생님이 촬영 때 많이 우셨는데, ‘선생님, 울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려서 애써 눈물을 참으신 게 마지막 컷에 담겨 있다. 너무 덤덤하게 가기보다는 살짝 울컥한 얼굴을 보여주는 게 영화와 어울려서, 가장 마음에 남는 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