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술의 모든 것>은 올해 부천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다. 소심하고 사교적이지 않은 남자 케이시가 집으로 가는 중에 오토바이를 탄 괴한들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한 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라테 도장을 다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케이시가 가라테를 배우면서 점점 강해지는 대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성장담이자 젠더, 정체성, 혐오 같은 최근 사회문제까지 담아내는 블랙코미디기도 하다. 장편 데뷔작 <폴츠>(2014)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을 들고 부천을 찾은 라일리 스턴스 감독은 “데뷔작을 찍은 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각본을 직접 썼던데,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장편 데뷔작 <폴츠>를 찍은 뒤 브라질 무술인 주짓수를 5년째 하고 있다. 무술을 너무 좋아하고 가라테가 주짓수보다 좀더 시네마틱하게 느껴져 가라테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생각을 전복시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가라테를 활용해 젠더, 정체성, 혐오 등을 얘기할 수 있겠다 싶었다.
-가라테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부모님의 권유로 5살 때 배워서 노란띠를 땄다. 태권도, 유도도 유명하지만 가라테는 미국인들 모두 아는 무술이다.
-주짓수를 배운 건 케이시처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를 겪으면 나와 상대방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시작했다. 3년 전부터 단순한 운동이 아닌 주 5일, 하루 2시간 이상 훈련해왔다. 지난해 LA에서 열린 주짓수대회에 출전해 은메달도 땄다.
-케이시는 귀여운 닥스훈트를 기르고, 프랑스어를 배우며, 언젠가 프랑스에 가는 게 꿈이다. 인물을 설명하는 설정들이 귀여운데 자신을 얼마나 반영했나.
=시나리오를 쓸 때는 나처럼 보이지 않길 바랐다. 그럼에도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남자들과 경쟁하는 스포츠는 좋아하지 않는 건 내 성격 그대로다. 나는 자신과의 싸움을 좋아해 집에서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의 사이클 대회) 보는 걸 즐긴다. 어릴 때 부모님이 닥스훈트를 키운 경험이 케이시에 반영됐다. “케이시가 남자 이름일 수도, 여자 이름일 수도 있다”는 영화 속 대사가 있지 않나.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라일리라는 내 이름을 두고 “여성감독인 줄 알았다”고 말했는데 남성도 여성도 모두 될 수 있는 케이시를 주인공 이름으로 설정한 건 무의식의 반영인 것 같다.
-제시 아이젠버그가 케이시를 맡으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
=그가 대사 두줄만 빼자고 한 것 외에는 수정 요청한 게 없다.
-그 두줄이 뭔가.
=하나는 케이시가 총기 판매상과 전화 통화하는 영화의 후반부, “총으로 싸우는 곳에 칼 들고 가지 마”라는 대사였다. 너무 설명적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케이시가 메달에 집착하는 도장 사범과 대화를 나누는 클라이맥스 신에서 “메달 많아봐야 시끄럽기만 하다”라는 대사인데 같은 이유로 삭제했다. 나 또한 메달에 집착하는 편이라 이 대사를 차기작에 넣었다. 굳이 내 허점을 말하자면 말이 많은 성격이라 대사 또한 많다. (웃음) 다음 작품은 <호신술의 모든 것>보다 대사를 덜 썼다.
-이번 영화 대사는 적당하던데.
=고맙다. 그런데 나 자신에 대해 극단적인 비판주의자라.
-무술을 해서 그런가.
=그런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림, 베이스 등을 배울 때마다 남들은 잘한다고 칭찬해주었지만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그게 더 행복하다.
-케이시에게 가라테를 가르쳐주는 도장 사범이 이야기의 안타고니스트 역할인데 영화 후반부까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영화의 주제는 흑백논리에 가까운데 이 캐릭터만큼은 회색 같은 역할로 묘사했다. 그의 의도가 좋은지 나쁜지 파악하기 힘들 게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이르면 그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도록 연출했다.
-이머진 푸츠가 연기한 부사범은 웬만한 남성들보다 가라테 실력이 빼어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도장에서 성차별을 받아온 인물인데.
=실제로 최근 많은 여성들이 가라테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도장에는 여전히 남성들이 많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성차별 문제를 얘기하지 않나. 남성성을 다루는 이야기라 여성 캐릭터가 딱 한명 필요했고, 그 여성은 다른 남성들보다 실력이 좋은데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 이머진 푸츠가 시나리오를 쓸 때 유일하게 염두에 둔 배우다. 이 캐릭터를 통해 페미니즘 주제를 드러내려고 했다.
-가라테, 주짓수 같은 무술과 영화 만들기의 공통점은 뭔가.
=모두 마스터가 될 때까지 계속 수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무술, 영화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차기작은 뭔가.
=좋은 프로듀서와 함께 <유어>(<Your>)라는 제목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여성 복제인간이 주인공인 블랙코미디다. <폴츠> 이후 <호신술의 모든 것>을 찍기까지 5년이 걸렸는데, 차기작은 곧바로 진행돼 좋다.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