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가미의 결혼>은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가장 도전적인 작품 중 하나다. 245분에 달하는 상영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의 신화와 현대사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다종다양한 장르와 상상력이 뒤섞여가는 과정을 통해 일본 사회의 허위의식과 병폐를 거침없이 까발린다. 2012년 <아시아의 순진>을 통해 무정부주의적인 색채를 드러냈던 가타시마 잇키 감독은 이번에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과감하게 내달려 나갔다. “내 안의 장난감 상자를 뒤집어 모든 걸 쏟아냈다”는 가타시마 감독에게 이 기기묘묘한 모험담의 짧은 안내를 부탁했다.
-2016년에 완성된 <이누가미의 결혼>이 3년 만에 한국에 소개됐다.
=한국은 이번이 세 번째다. 16년 전에 개인적으로 여행을 온 적 있고 <아시아의 순진>이 영화제에 초청되어 한번 더 방문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 문화 차이가 커서 올 때마다 흥미롭다. 마치 보물을 찾아 미지의 섬으로 떠나는 주인공 아즈사처럼 나도 올 때마다 모험을 하는 기분이다.
-관객의 도전욕구를 자극하는 영화로 상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다른 영화의 2회차 상영을 잡아먹는 영화니까. 4시간에 가까운 영화를 틀어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극장 환경이 좋았다. 일본에서도 좀처럼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내 의도가 완벽히 전달되어 기쁘다. 관객 반응은 일본과 비슷해서 재미있었다. 보고나서 다들 소화불량에 걸린 표정으로 ‘이게 뭐야?’라고 했다. (웃음) 이번 인터뷰로 짧게나마 관객의 체증이 내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긴 상영시간에 겁먹을 수 있는데 막상 보면 4시간이 모자라다 싶을 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방대하지만 한편으론 단순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랑을 찾기 위한 기도’다. 세상은 엉망진창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차별과 편견, 심지어 살육이 난무하는데도 못 본 채 살아가고 있다. 이번 영화에선 그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보물을 찾으려는 주인공의 여정이자 기도를 담았다. 본래 1992년 다와다 요코 작가의 단편 <이누무코이리>를 원작으로 하려 했다가 무산되고 한참 뒤 ‘난소사토미핫겐덴’이란 에도시대 일본 민담을 기반으로 다시 기획했다. 영화가 늦춰지는 과정에서 쌓인 원망과 답답함을 다 토해내다 보니 4시간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여느 영화처럼 압축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영화도 한편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세상을 향한 나의 의지라고나 할까.
-도쿄, 오키노섬, 무인도, 아모레이섬까지 로드무비 형식을 따라가되 4개 챕터로 나뉜다.
=각장은 상징적인 공간이다. 1장 도쿄는 대도시에서 소외감을 느낀 아즈사가 탈출하는 이야기다. 2장 오키노섬에선 부패한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을 더 숨 막히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3장 무인도는 예상치 못한 낙원이다. 태풍에 난파되어 도착한 곳에서 만난 개의 형상을 한 남자는 다른 종과의 화합을 상징한다. 전설과 신화를 구현한 파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물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최종장 아모레이섬은 그야말로 모든 욕망이 꿈틀대는 지옥 같은 곳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같은 종교전쟁의 축약판이랄까. 아즈사는 그 최악의 장소에 무인도에서 발견한 희망을 가져다놓는 일종의 메신저인 셈이다.
-아즈사 역의 아리모리 나리미 배우는 모두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아리모리 나리미와는 4편의 작품을 함께했고, 이번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건달 혁명가, 히키코모리 가수 등 워낙 강한 캐릭터가 많아서 이들을 투명하게 비출 수 있는, 백지나 거울 같은 연기가 필요했다. 배우에게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하다보니 현장에서 다투기도 많이 했다. (웃음) 결과적으로는 아리모리 나리미가 중심을 잡아준 덕에 충실한 로드무비가 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표현이 강하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결국 희망을 놓지 않는다.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희망이나 이상이 없다면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한 사람이, 공동체가, 나아가서는 국가가 희망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현재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다. <이누가미의 결혼>의 영어 타이틀을 정할 때 그냥 단순하게 ‘Hope’라고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 워낙 많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 한번 보고는 내가 생각했던 메시지가 전부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해가 되지 않아 영화를 9번 본 관객도 있다고 들었는데, 꼭 그렇게 많이 볼 필요는 없다. (웃음) 보고 나와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충분하다.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를 함께 목격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게 영화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