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르 니토 감독은 데뷔작 <기름도둑>으로 2019년 트라이베카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23회 부천영화제 개막작으로 한국을 찾았다. <기름도둑>은 순수하고 사소한 소년의 욕망이 파국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통해 멕시코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사실적이고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관객을 엄습하는 충격적인 연출이 인상적인데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의 심장을 움켜쥐는 솜씨는 이제 막 데뷔한 감독이라곤 믿기 힘들 만큼 원숙하다. 니토 감독이 몸으로 느끼고 장르의 힘을 빌려 표현한 멕시코의 현재는 긴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의 현재로 이어진다.
-얘기한 대로 최근 가난이 불러온 비극적인 상황을 그린 영화들이 전세계적으로 많아진 것 같다. 이번 영화는 멕시코, 스페인, 미국, 영국의 합작영화인데.
=<기생충>을 보진 못했지만 어떤 영화인지 이야기를 들었다. <기름도둑>은 가난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기보다 상황에 끌려가다 결국 나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이야기다. 멕시코에는 조직범죄와 폭력이 만연하고 있다. 길을 걷다가 죽은 시체들을 보는 게 놀랄 일도 아니다. 최근의 경향을 따라갔다기보다 내가 주변에서 보는 것들을 좌시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만들었다. 그게 로컬영화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물론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적으로도 필요한 이야기가 된 측면도 있다.
-지난 1월 멕시코시티 인근의 송유관 폭발사고로 1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 일도 있었다.
=예측한 건 아니다. 슬프지만 늘 있어왔던 일이다. <기름도둑>은 2년 전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주목하지 않았는데 올해 사고가 터지면서 뭔가 말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했을 것이다. <기름도둑>은 지역색이 강한 영화지만 전세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랄로를 연기한 에두아르도 반다는 이번 영화가 연기 데뷔작이다.
=사실적인 톤을 살리기 위해 전문 배우를 쓰지 않으려 했다. 원래는 전부 비전문 배우들로 캐스팅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론 어느 정도는 섞을 수밖에 없었다. 에두아르도 반다는 로케이션 중 그 지역의 수리기사로 일하는 걸 현장에서 캐스팅했다. 나는 비전문 배우보다 내추럴 액터라고 부르고 싶다. 그에겐 본능적인 에너지가 있다. 혹시라도 나쁜 습관이 들까봐 시나리오 전체를 주지 않았고 리허설도 따로 하지 않았다. 날것의 생동감을 살리고 싶어 매 장면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심야에 기름을 훔치는 이야기인 만큼 야간촬영이 많다.
=마찬가지로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로케이션의 기본은 리얼리티다. 자연광을 최대한 담기 위해 주변의 빛을 활용했다.
-사운드의 사용이 과감하다. 시작부터 심장을 흔들며 극장을 가득 메우는 사운드는 ‘충격과 울림’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말 그대로 한방 먹이는 사운드다. 호러영화의 점프 스퀘어와는 조금 다르다. 관객을 놀라게 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뒤흔드는 게 목표였다. 사운드는 캐릭터 주변에 도사린 위험의 직접적인 표현이다. 귓가를 때리는 심장 울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 불안의 한가운데로 관객을 초대하고 싶었다.
-순수한 소년이 사소하고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시작한 일이 파국으로 이어진다. 지역색이 강한 영화지만 보편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장르적으로 본다면 멕시코 갱단에 관한 영화다. 나 역시 <대부>(1972) 같은 마피아영화를 보며 자랐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관객의 몫이다. 다만 그걸 보여주는 감독에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년 랄로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조리한 상황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게 바로 멕시코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