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없는 산골 오두막에서의 화재 현장. 네구의 사체가 발견된다. <야수>는 이들이 누구인지 묻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수도 생활을 그만둔 한 남자가 야생에서 자란 세명의 아이를 거두었던 것. 사실 정체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요는 야생성 앞에서 문명이 얼마나 쉬이 무너지는지다. 안드레스 카이저 감독은 그런 면에서 확실히 비관주의자다. “문명의 심부에는 수면 밑에 잠긴 무의식과 같은 것이 있다. 나는 그게 언젠가 우리를 덮쳐올까 두렵다.” 그런 의미에서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1997)는 문명과 야생의 길항관계를 묘사하기 위한 좋은 참고가 됐다. 그가 문명에 공포를 품게 된 이른 계기는 언어다. “언어학자들이 주장하길, 인간이 언어를 못 배운 채로 몇살 이상이 되면 영원히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무섭지 않은가? 상상해보라. 만약 인류가 20년 정도 언어 기능을 상실한다면 몇 천년에 이르는 문명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것이다.” 단순히 ‘주장’만은 아니다. 실제로 1800년대 프랑스에서 발견된 늑대소년 ‘빅토르’는 평생 언어를 배웠지만 끝내 두세 마디밖에 구사할 수 없었다. 이러한 공포가 문명 자체를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만들게끔 했다. 늑대소년들을 거두는 수도승의 선의. 그러나 그 저변에는 유년기 트라우마와 성적 도착이 얽혀 있다. 왜 수도승일까? 종교는 문명의 금자탑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신자는 아니지만 스펙터클한 종교의식에 관심이 많다. “종교는 인류학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다음 작품도 종교를 인류학적으로 탐구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자신의 비관론을 관객과 공유하기 위해 가능한 한 사실성을 확보하고 싶었다고 한다. “기성 배우를 고용하지 않았으며, 일반적 연기 지도를 배제했다.” 대신에 늑대소년들은 죽음을 환기하는 일본 무용 ‘부토’를 배워야만 했다. 죽음은 에로스와 함께 가장 원초적 충동이다. “순수영화란 설명되지 않는 감각과 충동을 표현하는 것이다.” 문명 바깥의 것을 거두어 공포를 부르는 것. 그에겐 이것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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