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_2001
21세기 스필버그의 분기점. 2001년 <필름 코멘트> 투표에서 5위를 차지한 <A.I.>는 어둡고 묵직한 전개로 대중에겐 외면을, 평단에선 지지를 받았다.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이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는 스필버그의 손을 거친 뒤 어둡고 무거우면서도 희망과 긍정을 잃지 않는 독특한 색깔로 거듭 피어났다. 문명에 대한 비판과 염세적인 자리에서 끝내 온기를 발견하는 스필버그의 애절한 상상력과 대중적인 화법이 돋보인다. (송경원 기자)
<마이너리티 리포트> _2002
모험 소재를 즐겨 차용하고 가족주의적이던 전과 달리, 21세기 들어 스필버그 감독작들은 훨씬 무게감을 가진다. 자유의지냐 결정론이냐에 관한 유구한 논쟁을 주제로 끌어들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 변화를 실감케 하는 대표작 중 하나다. 원작 소설에 표현된 것보다 세심하게 미래 세계를 구축한 동시에 “필름누아르적 특성”을 주입하고자 했던 스필버그의 의도가 제대로 구현됐다. 디지털 프로덕션 디자인으로만 제작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조현나 기자)
<캐치 미 이프 유 캔> _2002
2002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감독한 스필버그는 같은 해 젊은 사기꾼 프랭크 아바날 주니어에 관한 전기 드라마를 만들었다. 쫓고 쫓기는 FBI와 사기꾼의 서사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지만 탈세 이후 아내와 재산을 잃는 불명예스러운 아버지, 남편의 친구와 외도하는 어머니 등 프랭크의 가족사는 스필버그의 체험이 투영되어 있다. 비슷한 처지의 부모 이야기를 담은 <파벨만스> 속 새미의 시선과 비교해보면 20년간 감독의 깊어진 관록을 실감할 수 있다. (김수영 기자)
<터미널> _2004
16년간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머물렀던 이란 난민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식당과 쇼핑가게가 즐비한 문명사회에 빈손으로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빅터 나보스키는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애를 쓰고 공항 노동자들이 연대해 그의 생존을 돕는 뭉클한 드라마지만, 뉴욕 JFK 공항을 배경으로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개봉한 <터미널>은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수영 기자)
<우주전쟁> _2005
스필버그의 가장 무시무시하고 냉혹한 영화. 마치 <미지와의 조우>나 <E.T.>의 안티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동시대 미국의 공포와 부서져가는 가족 중심 공동체의 실상을 날카롭게 헤집는다. 외계인의 침공은 맥거핀일 뿐 생존을 위한 아버지의 사투 속에서 영웅도 해피 엔딩도 로맨티시즘도 설 자리를 잃는다. 스필버그가 시대와 사회를 고스란히 투영해왔던 미국영화의 위대한 영혼을 이어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 (송경원 기자)
<뮌헨> _2005
1972년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단을 살해한 테러리스트 ‘검은 9월단’에 보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비밀리에 펼친 작전을 다룬다. 유대계 출신이긴 하나 스필버그 감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입장, 혹은 특점 이념의 잣대로 사건을 바라보지 않는다. 도리어 이스라엘 출신이란 이유로 비극을 자아내야 했던 주인공의 갈등을 명료하게 그릴 뿐이다. 더불어 가족주의에 천착하는 스필버그만의 특성이 잘 반영됐다. (조현나 기자)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_2008
3편이 개봉한 지 19년 만에 제작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전편의 아날로그적인 방식 그대로 액션 활극을 펼친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고 해리슨 포드 외에도 1편에 출연한 매리언 역의 캐런 앨런이 27년 만에 등장해 유려하게 합을 맞췄다. 극의 진행 자체는 익숙하게 흘러가지만 미지의 보물을 탐사하며 스릴을 자아내는 시리즈만의 매력은 건재하다. (조현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