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스티븐 스필버그의 삶과 필모그래피의 연장선에서 신작 ‘파벨만스’를 보니
2023-03-30
글 : 임수연
그의 소년 시절

<파벨만스>를 보고 가장 먼저 복기하고 싶었던 필모그래피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젊었을 때 만든 저예산 장르영화, 엔터테이닝 그 자체에 집중한 오락영화들이었다. 어린 스필버그를 대변하는 캐릭터 새미(마테오 조리안)가 태어나서 처음 본 극장영화는 세실 B. 드밀의 <지상 최대의 쇼>였고, 그는 기차가 충돌하는 이미지에 사로잡힌다. 새미가 자각한 대로 영화 이미지가 관객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영화 만들기는 인간의 감정을 의도대로 통제할 수 있다. 새미는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버지 버트(폴 다노)가 사준 라이오넬 전기 기차를 이용해 자신이 봤던 스펙터클을 재현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의 말대로 이를 영상으로 찍어서 편집하면 실제 장난감은 부서지지 않으면서 원하는 그림을 반복해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진짜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잘 연출하면 즐거움, 흥분, 공포, 슬픔과 같은 감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새미에게 이같은 일을 가장 잘해낼 수 있는 것은 장르영화였다. 극 중 새미가 여동생들과 만든 호러영화, 보이스카우트 친구들과 만든 서부극(<건스모그>), 애리조나의 사막 풍경에서 전투기의 도움을 받아 연출한 전쟁영화(<도피할 수 없는 탈출>)는 실제 스필버그가 10대 시절 만들었던 작품들과 거의 유사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을 다룬 필름 릴을 활용해 그의 친구들이 정말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속임수를 고안하고, 폭발 이후 공중에 휘날리는 흙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폭탄물 없이 폭탄을 표현했다. 스필버그의 초기작, <대결> <슈가랜드 특급>에서 오로지 자동차 추격만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죠스>의 모형 상어 지느러미가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테크닉은 이같은 훈련을 통해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한 어머니의 외도가 카메라에 포착된 순간,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인간이 이미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친구들과 만든 전쟁영화는 허구이지만 “컷!”을 외쳐도 계속 앞으로 걸어가던 친구를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감독의 손을 벗어나는 변수들이 있다. 프레임에 한정된 영화 이미지는 사실 그 자체를 전달할 수는 없지만,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진실을 폭로하기도 한다. 영화에 동원되는 속임수와 비언어적 요소가 렌즈를 투과하고 나면 이면의 맥락을 구성할 수 있다. 새미가 영화 만들기를 그만둔 것은 단지 어머니의 불륜이 준 충격 때문만은 아니다. 감독이 이미지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보기 좋게 깨졌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괴롭힌 친구를 마치 영웅처럼 미화한 해변 영화는 새미가 감정을 통제하는 한 차원 더 높은 방법을 찾은 결과다. 새미는 폭력의 가해자마저 품은 관용과 화합으로 악당이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함으로써 단순한 분노 이상의 일을 해낸다. 한때 스필버그의 영화를 두고 지나치게 ‘신파적’이라고 했던 비판은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대인을 살리던 나치 장교든,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한명의 군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던 미국의 영웅이든 그것은 결국 감독이 의도한 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스필버그가 매혹됐던 영화의 속성 그 자체다.

이토록 영화적인, 이토록 개인적인

<파벨만스>는 스필버그의 영화가 언제나 개인적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필버그의 작품에서 실제 그가 10대 시절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여야 했던 트라우마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지와의 조우>에서 외계인에 집착하는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한 가족은 결국 그의 곁을 떠나고, <E.T.>에서 외계인은 부모가 이혼한 아이에게 유사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며, 'A.I.'의 데이빗의 소원은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것이었고,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미치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의 친구와 외도한다. 스필버그 영화의 외로운 어린이들이 관계와 애정을 갈망했던 것을 떠올릴 때 그의 영화 제작은 “4천만달러짜리 치유”라고 묘사했던 <파벨만스> 이전에도 늘 결핍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

<파벨만스>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진 않지만, 스필버그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 용사였다. 스필버그는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이 전쟁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집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또한 스필버그가 어린 시절 TV에서 흡수했던 대중문화 가운데는 존 웨인의 <더 파이팅 시비즈>와 같은 전쟁영화가 있었다. <NPR>과의 인터뷰에서 스필버그는 “내가 만약 전쟁영화를 만든다면 오마하 해변을 습격하는 어린 소년들에게 그 경험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전쟁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것을 미화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이 확고했던 스필버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사지가 절단된 병사들이 뛰어다니는 ‘디데이’(D-Day) 전투 시퀀스를 만들었다.

테크니션-시네아스트

영화학교에 다니는 대신 선배 감독들의 작품을 보고 직접 아마추어 영화를 만들면서 연출을 독학한 새미는 TV 프로덕션에 입사하면서 우회적인 기회를 얻는다.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단편 <엠블린>을 보고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유니버설 TV 프로덕션에서 7년간 TV시리즈 연출 계약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당시 스필버그의 나이는 22살. 메이저 스튜디오와 계약한 최연소 감독이었다). 스필버그가 12살 때부터 만든 다양한 장르물 그리고 TV시리즈 연출 경험은 그에게 ‘현장 훈련’이었다. 에드거 라이트가 스티븐 스필버그를 인터뷰한 <엠파이어> 기사에서 스필버그는 “나는 내가 연출한 모든 TV 에피소드를 누군가가 나를 장편영화 감독으로 고용하게 만들기 위한 디딤돌로 보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2년 후 찍은 작품이 TV영화로 먼저 기획된 <대결>이다. 방송국과 스필버그가 원한 <대결>의 엔딩은 달랐다. 당시 프로듀서의 도움으로 ‘절대 을’의 위치에 있던 스필버그가 고집한 엔딩을 살릴 수 있었지만, 당시 경험을 통해 스필버그는 최종 편집권을 확보하는 것이 감독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열악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원하는 이미지를 얻어내는 기술과 협상력을 키운 스필버그의 경력은 이후 그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감독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를 같은 해에 연출하고, <레디 플레이어 원>을 작업하다 생긴 공백기에 <더 포스트>를 연출할 수 있는 역사상 유일한 감독이다.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시네아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민한 예술가 미치와 이성적인 기술자 버트의 성격을 반반씩 물려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직관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유전자만큼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 발현될 수 있는 충실한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극 중 재현된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습작이 아니었다는 것을 <파벨만스>는 넌지시 암시한다. 그렇게 영화는 스필버그가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재능을 만든 부모의 유산과 위대한 장르영화들, 실전 훈련의 중요성을 낭만적으로 회고한다. 스필버그는 관객의 감정을 능숙하게 통제하며 자신의 의도를 달성하는, 어린 시절 그가 발견했던 감독의 이상에 완벽히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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