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3부작과 <보이후드>에 이어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이번에는 브로드웨이의 시간에 영화의 그물 망을 놓는다. 뮤지컬 <오클라호마!>의 초연을 앞둔 단 하룻밤에 초점을 맞추는 신작 <블루 문>은 영광의 끝자락을 만끽 중인 브로드웨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조명하는 동시에 스크린에 실시간의 생기를 불어 넣는 링클레이터의 지혜가 집약된 수작이다. 그의 오랜 동반자인 배우 에단 호크가 <마이 퍼니 발렌타인 > <블루 문> 등을 쓰고 미국 뮤지컬의 황금기를 빛낸 작사가 로렌츠 하트의 천재성과 고독, 좌절된 사랑의 번민을 옮긴다. 하트와 함께 전설적 작사·작곡가 콤비로 이름 날린 리처드 로저스 역의 앤드루 스콧은 <블루 문>으로 올해 은곰상(조연배우상)도 수상했다. 애처로운 주인공만큼 얄미운 조연에게도 상패를 내어줄 만큼 <블루 문>의 품은 넉넉하고 따뜻했다. 올해 베를리날레에 참석한 그 누구라도 어루만져주 었을, 지극히 링클레이터다운 ‘오프닝 나이트’를 소개한다.

- <보이후드>에선 영화 밖에서 흐른 12년의 시간을 응축했고, <블루 문>에선 뮤지컬 개막 전야를 리얼 타임으로 포획했다. 긴 생애를 압축하는 작업과 한 순간을 확장하는 작업이 당신에게는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나. 이번 신작에서 접근 방식이 달랐다면 무엇일까.
= 어떤 영화는 12년에 걸쳐 있고 어떤 영화는 100분이나 90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게도 모순 같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시간을 구조하는 매체다. 문학은 읽는 도중 적절히 중단될 수 있고 그것이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의 관객은 작품을 ‘실시간’으로 본다. 영화가 다른 예술 매체와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영화를 일종의 시간 조각으로 생각한다. 다만 이번 작품은 정말 어려웠다. 작품 내적으로도 모두 실시간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장면을 재조합한다거나 통으로 잘라낸다거나 하는 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많이 편집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작동 해야만 했다. 정교한 리허설이 요구됐다. 목표는 1943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로렌츠 하트라는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 촬영 단계의 콘티뉴이티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오랜 지속 시간을 자랑한 장면은 무엇이었나.
= 아마도 마지막에 짐 보관실에서 에단 호크와 마거릿 퀄리가 나누는 대화 장면일 거다. 이 장면만 이틀에 걸쳐 촬영했다. 영화 전체 촬영에 15일 걸렸는데, 우선 맨 처음 이 장면에 이틀 정도를 온전히 쏟아붓고 나서 나머지를 전체적으로 꽤 빠르게 촬영했다. 엄청나게 많은 리허설이 필요했다.
- 오랜 시간 함께한 촬영감독 셰인 F. 켈리와 함께 뉴욕 미드타운의 레스토랑 사디스를 배경으로 단일 공간 안에서도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역동적으로 유지했다.
= 도전이었다. 프로덕션디자인, 조명, 카메라, 모든 것이 하나의 일부처럼 느껴져야 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인위적이지 않게, 그저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카메라나 연출에 결코 주의를 끌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일을 제대로 했다면 사람들은 연기나 대사, 즉 대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실제로 기자회 견에서는 로버트 캐플로의 유려한 각본과의 협업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편집자) 어쩌면 나는 고전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194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처럼, 감독이 중간자로서 이야기를 전하고 그것이 온전히 작동하도록 하는 데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 외국인 기자로서 질문하자면, 미국인들에게 로렌츠 하트(에단 호크)와 리처드 로저스(앤드루 스콧) 콤비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 또는 위치가 궁금하다.
= 시간이 흐른 뒤 많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처하는 운명처럼 99%의 미국인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모를 것같다. 물론 브로드웨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뮤지컬 인간들은 그들의 존재를 매우 잘 알 것 같다. 작곡·작사 콤비인 ‘로저스와 하트’로서 함께한 약 24년의 경력이 있었고, 로렌츠 하트의 알코올중독이 악화된 후리처드 로저스는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와 함께한 1943년(영화의 배경)부터 1960년대까지의 두 번째 경력이 있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후자쪽이다. 미국인들이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인생의 사운드트랙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텍사스 시골 출신인 나도 자라면서 늘 접했다. 하지만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로저스와 하트쪽이다. 그들 노래의 장인정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좋아한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내면적으로 갈등에 시달리던 하트의 정서가 녹아 있어서다.
- <블루 문> 속 로렌츠 하트는 리처드 로저스와 결별하면서 그의 성공을 지켜보는 순간에 있다. 동료를 향한 질투와 애정이 페이소스와 함께 묻어난다.
= 사랑과 절대적인 짜증이 공존하는 순간이다. (웃음) 에단과 앤드루가 장기간의 연애에서나 느껴질 법한 감정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4년이나 함께했잖나! 예를 들면 ‘네가 매번 이런 방식을 쓰는 게 정말 싫어’ 같은 감정. 특히 로저스에겐 명분이 있다. 늘 취해서 제자리에 없고, 자신은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로렌츠가 발목을 잡았으니까. 그리고 로렌츠는 바로 그런 말을 들을 때 좌절감을 느낀다. 여기엔 매우 긴 역사가 숨어 있다. <블루 문>은 이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비유하자면 나는 이혼 후에 재혼을 앞둔 파트너의 파티에 초대된 사람의 입장 같은 것이 재미있다. “요새 어떻게 지내?”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난 아주 괜찮아”라고 말할 수 밖엔 없는 그런. (웃음)
- 모든 예술적 파트너십엔 수명이 있을까? 로저스와 하트는 그렇다치고, 링클레이터와 호크의 오랜 관계는 어떠한가.
= 자랑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관계는 굉장히 일관적이다. 로저스 & 하트와는 달리 한번도 ‘화가 나서 3년 동안 한마디도 말을 안 한 적’은 없다. 30년 동안의 우정이 어떻게 이어져 올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 자면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사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개인적 일상에서 서로를 방해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온갖 여지를 부여할 수 있다. “자, 이틀 동안 이 작업에 집중해보자”라고 이틀간 치열하게 붙어 있다가 헤어진다. 이번에도 베를린에 도착하기 전 호텔방에서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 같이 앉아서 스크립트 작업 하나를 끝냈다.
- <블루 문>은 다량의 대사를 롱테이크에서 소화하는 에단 호크의 특징적 재능을 극대화한 영화다. <비포 선라이즈>부터 그를 지켜봐온 감독으로서 느낄 특별한 보람도 있을 것 같은데.
= 에단은 이런 작업을 소화할 수 있는 소수의 배우 그룹에 속하는 게 분명하다. 어떤 배우들은 그냥 더 빠르다. 마치 어떤 기타 연주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것처럼. 에단은 대사를 매우 빠르게 전달하면서도 편안해 보일 수 있다. 태생적으로 템포가 느린 배우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더 시간을 누려야 하고 생각해야만 하는데 에단은 그렇지가 않다. 30년 전 <비포 선라이즈>에서 내가 에단에게 끌렸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많은 대화를 쏟아내면서도 신뢰감이 가는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껏 지켜봐오기로는 에단에게 이런 작업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웃음) 다만 <블루 문>에는 로렌츠 하트의 작은 키로 인한 눈높이의 변화, 그 밖에 구현해야 할 외모적인 부분 등 다른 복잡한 요소들이 많았다. 하루는 에단이 이렇게 말했다. “내 재능의 한계에 부딪치고 있는 것 같아.” 나로서도 이렇게 응답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그런데 어떡하지?” 우리는 서로를 정말 최대한으로 밀어붙였다.
2040년에 다시 만나자
- 영화 전반에 걸쳐 하트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대사 “당신만큼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은 없어”(No one ever loved me that much)를 “누구도 나를 그렇게 많이 사랑한 적 없어”로 바꾸어 언급한다. 현대에 이르러 게이로 알려진 그의 성적 정체성이 이 영화 전반에 걸쳐 어떻게 작동하길 바랐나.
= 불쌍한 래리(영화 속 애칭)…. 그의 인생을 살펴볼수록 시대적 검열로 인해 그가 상호 로맨틱한 관계를 가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성애자 중심의 세계에서 게이 언더그라운드로 잠시 사라졌다가 하루 만에 돌아오곤 했다. 물론 게이 바 같은 곳에 갔지만 지속적인 파트너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게이로 살기엔 끔찍한 시대였다. 그것만으로 사람을 체포하고 감옥에 보내고 괴롭힐 수 있었으니까. 래리가 <카사블랑카>의 대사를 현실에서 인용하는 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노래 가사에서 그런 말을 쓸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그의 노래가 오히려 더 절절한 이유이다. 넘쳐 흐르는 로맨스를 품은 사람이었는데 한번도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나 노래에선 그걸 점잖게 드러낼 뿐이었다. 게이이자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서 그는 기발하고 재치 있고 약간은 어두운 노래를 썼는데, 자주 비교되곤 하는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콤비 노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미국의 모든 산을 오르라는 고양된 가사를 썼다. (웃음) 어쨌든 로렌츠 하트는 개인적인 삶의 비극을 직업적 세계의 성공과 적절히 주고받은 삶을 살았다. 로저스와 24년 동안 쉬지 않고 1천여곡을 작업했고 그중 많은 곡이 훌륭했다. 연극, 뮤지컬이 포화처럼 쏟아지는 시대였기에 가능했다. 오늘날에는 그런 식으로 작사가를 지원해줄 세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빼앗기도 하지만 주기도 하는 것이다.
- 하트는 뮤지컬 <오클라호마!>가 전쟁 중에 지나치게 이상화된 미국을 그리는 것을 비판하면서 당대 업계가 더이상 복잡한 예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개탄한다. 구체성만 다를 뿐 문화적, 정치적 전환의 순간에 신음하는 예술가들의 모습은 언제나 현재와 공명하는 것 같다. 당신은 어떤 평행선을 보고 있나.
= 예술의 영원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중매체에서는 언제나 관객이 방정식의 일부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것은 매혹적이다. 어떤 예술가는 그가 관심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이어서 인기를 누린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드는 영화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한다. 앨프 리드 히치콕도 그랬다. 보통은 몇년 후에나 알게 되긴 하지만 모든 문화에는 대체로 타고나길 성공적인 예술가들이 있기 마련이다. 반면 누군가에겐 대중이 “이건 좀 소름끼쳐. 별로야”라거나 또는 “그렇게 흥미롭지 않군”이라고 반응한다. 그 예술가는 아마도 자신이 얼마나 더 현실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 사람들을 이끄는 방식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것이다. 더 슬픈 경우도 있는데, 한동안은 재능이 있어서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겨낭하지만 그다음엔 아무리 노력해도 더이상 받아들 여지지 않는 운명일 때도 있다. 언제나 다른 것이 나타나고 당신은 유행에서 벗어난다. 팝 음악이 주로 이런 식으로 잔인하다. 그러니까 나는 하트가 특별히 냉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느끼는 안테나를 소유한 인간이었다. 브로드웨이가 변하고 있고 사람들이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일 뿐이다. 자,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한데 평생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아닌지 알 것 같은 느낌’을 한번도 받지 못한 것 같다.
- 영화 제작이야말로 예술적 진정성과 상업적 압력 사이를 헤쳐나가는 작업 아닌가. 당신은 그동안 어떻게 자리를 지켜왔는지 더 자세히 묻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 운이 좋았다. 항상 예산을 충분한 수준으로 낮게 유지해서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있었다. 그다지 돈에 신경 쓰면서 살지 않았고 그래서 많은 타협을 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항상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결국 즐거운 창의적 경험을 방해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스튜디오 사람들은 항상 아이디어와 여러가지를 요구하지만 나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것이 영화 만들기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 말하자면 나는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잘한다. 자기 보존의 달인이다. (웃음)
- <블루 문>으로 브로드웨이의 과거를 탐험한 후, 앞으로 20년 이상 걸쳐 촬영하게 될 장기 프로젝트로 스티븐 손드하임의 희곡을 각색한 <메릴리 위 롤 어롱>을 작업 중이다.
= 지금까지 약 3분의 1 정도 진행했다. 손드하임의 <메릴리 위 롤 어롱>은 40여년 전에 등장해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작품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작품에는 어딘가 끼어들고 싶게 하는 힘이 있다. 내게도 정말 재밌는 도전이다. 2039년, 2040년쯤 완성될 것 같은데 또 만나서 이야기하자! (악수를 청하며) 아마 당신은 그때도 여기 베를리날레에 있을 거다, 젊으니까. 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노력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