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반에 공개돼 자주 회자된 <드림스>는 감독의 전작 <메모리>에 싹튼 미세한 온기마저 가차 없이 짓밟는다. 멕시코인 발레리노와 미국인 여성 사업가가 국경을 횡단하며 거칠게 사랑하는 동안, <드림스>는 이들의 관계가 정열로 불타올랐다가 마침내 차디찬 폭력으로 돌변하는 양태를 잠자코 바라본다. 무서우리만치 건조히 관음하는 미셸 프랑코의 카메라는 돌아온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내건 반이민자 정책의 핏빛 그림자까지 (의도치 않게) 시의적으로 흡수했다. “‘멕시코는 신과는 멀고 국가와는 가깝다’는 말처럼 미국과의 긴밀한 긴장 관계는 그저 일상이다.” 현재 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하위텍스트가 선명한 우화인 동시에 <드림스>는 부유한 특권층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친밀한 관계 내에 잠재한 모든 종류의 힘의 불균형이 지닌 독성”에 관한 이야기다. 자선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재단 운영자인 제니퍼(제시카 채스테인)는 이민자인 페르난도(이삭 에르난데스)의 고통과 대비되는 특권층의 삶을 산다. 여름밤 대형 트럭에 갇힌 이민자들의 아우성과 탈진으로 시작한 영화가 부유한 저택에서 펼쳐지는 관능적인 섹스 신으로 나아갈 때 이러한 정체성은 보다 선명해진다. “이민자 영화에서 백만번은 본 것 같은 상황을 다른 형태로 이어 붙일 때의 충격을 제안해보고 싶었다.” 말하자면 그는 이 끔찍한 아픔이 멕시칸 발레리노의 <블랙 스완>이자, 계층 차이가 극심한 <로미오와 줄리엣> 속에 녹아 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서늘한 실체가 따로 있다고 믿는 부류의 감독이다.
신인배우 이삭 에르난데스는 샌프란시스코의 발레단 메인 댄서에서 프랑코 영화의 주연배우로 단숨에 발탁되며 미국을 대변하는 영화의 장소가 샌프란시스코가 되는 데에도 일조했다. 한편 영화제 기간 동안 표면적으로는 <메모리>에 이어 제시카 채스테인의 두 번째 협업이라는 점이 감독을 향한 주요한 질문 거리로 던져졌다. 프랑코는 하나의 인물이 보여주는 두 극단의 면모- “위험한 사랑의 격정에 휩싸인 모습과 한편으로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면모를 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매료됐다.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예술적 동반자가 할리우드 스타로서는 위험부담이 큰 역할을 감수하는 모험가라는 사실에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항상 동정받는 역할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진정 영리하고 세련됐다.” 물론 이는 더 오랜 시간 협업해온 배우 팀 로스(<썬다운> <크로닉> 등)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제시카 채스테인과는 앞으로도 최소 두편 이상의 영화를 더 만들 계획이고 팀 로스와 함께 작업할 날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